소소하게 놀이터와 시장에서

20.10.10(토)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놀이터 타령을 시작했다. 어제 잠깐 들렀던 건 유효하지 않았나 보다. 어디 놀러 가면 소윤이 손잡고 아침 댓바람부터 산책 나가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는데, 왜 놀이터는 그렇지 못할까. 밍기적 밍기적 하다가 오후나 되어서 겨우 놀이터에 나갔다.


그렇다고 나가기 전까지 한가로이 보낸 건 아니다. 특별히 기록으로 남길 만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변함없이 좋은 날씨에, 오늘도 어디 바람을 쐬러 갈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어제 조금 멀리 다녀와서 그런지 좀 귀찮고 피곤했다. 오늘은 어디 멀리 안 가기로 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가 꽤 많았다.


“소윤아, 시윤아. 사람이 너무 많다. 일단은 여기서 자전거랑 킥보드 타”


코로나 시대를 산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6살, 4살짜리도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코앞에 놀이터가 있는데 ‘사람이 많으니 지금은 피하자’는 아빠의 말에 조금도 떼를 쓰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자전거와 킥보드를 조금 타다가 사람이 없는, 대신 놀이 기구도 적고 난이도도 낮아서 덜 재밌는 놀이터로 옮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놀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의 80% 이상은 그네를 탄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그네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일이었다.


집 정리를 마저 하고 ‘10분 안에’ 나오겠다던 아내는 웬일로(?) 정말 금방 나왔다. 서윤이는 아침부터 기분이 계속 좋았다. 어제도 한 번 밖에 안 깼다. 얘도 조금이나마 잠을 더 푹 자서 좀 나은 건가. 놀이터에서 언니와 오빠가 놀 때도 너무 오래 유모차에 방치되었을 때만 빼고는 많이 울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때 조금만 같이 있어 주고, 놀아주면 금방 괜찮아진다. 홀로 남겨지는 게 뭔지, 아무도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 게 뭔지 알고 우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은 애들 좀 일찍 재우고 빨리 퇴근하고 싶다”

“그치? 그러자”


아내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아내의 마음이었다. 저녁에 마땅히 먹을 게 없었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분식류를 먹고 싶어 했다. 구경도 하고 저녁거리도 살 겸, 시장에 가기로 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원당 시장 갈까?”

“왜여?”

“구경도 하고 먹을 것도 사고”

“아빠아. 시당이 어딘데여어?”

“시장? 기억 안 나? 이것저것 물건 팔고 먹을 것도 파는 곳”


이제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까 봐 걱정하며 간다. 다행히(?)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구경을 했다. 중간에 호떡을 사 먹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나씩, 아내와 나는 한 개로 나눠서 먹었다.


“아저씨. 호떡 세 개 주세요”

“네, 무슨 호떡 드릴까요?”

“이 녹색은 뭐에요?”

“아, 쑥 호떡입니다”

“아, 그럼 그냥 호떡으로 세 개 주세요”

“아 쑥 호떡은 안 하세요?”

“아, 네”

“아…그럼 좀 기다리셔야 되는데. 지금 2개밖에 없어서”


아저씨의 장사 편의를 위해 그냥 호떡 두 개와 쑥 호떡 한 개를 사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금세 먹었다. 아내는 조금 먹고는 나에게 넘겨줬다. 뜨거운 걸 잘 못 먹는 아내는, 뜨겁지만 호떡의 핵심인 ‘속’이 있는 부분은 못 먹고 자꾸 가장 자리만 베어 먹었다. 더군다나 쑥과 호떡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동차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음식 퓨전의 끝도 순정이라.


아내와 내가 먹을 떡볶이,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순대와 튀김, 녹두전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순대도 잘 먹었고, 허파와 간, 염통 따위의 부속물도 잘 먹었다.


“여보. 좋겠네. 애들이 여보랑 음식 취향이 맞아서”


배불리 먹었더니 만사가 귀찮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샤워를 해 주려고 했는데, 내일로 미뤘다. 하루 종일 즐겁게 잘 놀았는데, 자기 전에 소윤이를 훈육해야 할 일이 생겼다(훈육이야 일상이지만, 조금 더 강한 훈육을). 소윤이는 자기 전에 눈물을 쏟았고, 자려고 누워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윤이 수유 시간이 애매해서 아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게 또 속상하다고 울고. 잠시 후 서윤이 수유를 하러 들어갔다가 아내가 나오려고 하니, 그것도 속상하다고 울고.


한 2시간쯤 지나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울며 잠든 게 속상하다는 생각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잘못했다고 속상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정당한 훈육이었어도, 우는 자녀를 보면 속상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사실 매 순간, 더 너그럽지 못하고 더 받아주지 못했다는 작은 죄책감은 늘 존재하니까.


아내랑 오늘도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를 보고 자러 들어가서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웠다.


“여보. 나 오늘 소윤이 옆에서 잘게”


살짝 잠에서 깬 소윤이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내 손을 꽉 잡았다. 잠결이었다. 한 손으로만 휴대폰을 들고 보면 힘들어서, 소윤이가 잡고 있던 손을 빼서 손을 바꾸려고 했다. 손을 빼려고 하자 소윤이가 더 꽉 잡았다.


소윤이가 막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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