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주일)
아내도 나도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진작부터 일어난 듯했고,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애들 데리고 거실로 나가야겠다’라고 생각은 계속했는데 몸은 그대로였다. 겨우 일어나서 애들을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아빠. 배고파여”
“어, 조금만 기다려”
배가 많이 고팠을 거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밥을 차려 주려고 했는데, 밥도 없었고 반찬도 없었다. 이럴 때는 계란밥이 딱인데, 계란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막막했다. 계란이 이토록 든든한 식재료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도무지 밥을 대체할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서둘러 밥을 해서 어제 먹다 남은 녹두전과 튀김, 순대와 함께 볶아줬다.
“아빠. 이건 무슨 볶음밥이에여?”
“볶음밥? 글쎄. 음 그냥 순대랑 녹두전 넣은 거야”
차마 볶음밥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미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정도면 평소에 부족함 없이 잘 먹는 편이기 때문에 (실제로 매 끼니 먹지 못해 굶주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웬만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어제 먹다 남은 걸 먹인 것도 미안했고, 게으름(과연 게으름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피우다 배고프게 한 것도 미안했고, 영양의 균형이라고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때우기 식 식사인 것도 미안했고. 늦게 차려 주고 ‘예배드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부지런히 먹으라’고 채근한 것도 미안했고.
아내는 많이 피곤했는지 아주 늦게까지 잤다. 밥 다 먹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방에 들어가서 깨울 때까지 잤다. 서윤이는 울지 않고 잘 놀았다. 그러다 아내가 나왔을 때쯤 조금씩 칭얼댔다. 아내는 바로 수유를 해서 재웠다. 애 셋을 키우는 지금이 둘을 키울 때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서윤이가 자거나 울지 않고 평화롭게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부실한 아침 식사를 준 게 미안해서, 점심은 정성껏 차려주고 싶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잠시 자연드림에 갔다. 다 함께. 시급한 건 계란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매장 안에 있는 LCD 화면에서 나오는 여러 제품의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재밌게 봤다. 아내 말로는 여기 올 때마다 그런다고 했다. ‘평소에 영상을 접하지 않으니, 그런(?) 영상이라도 재밌게 보나 보네’라고 생각하며, 나도 옆에 서서 봤는데 생각 보다 재밌었다.
집에 와서 호박에 계란물을 입혀서 부쳐 주고, 야채 동그랑땡에 계란물을 입혀서 부쳐 줬다. 계란은 정말 소중하고 마법 같은 음식이다. 별거 아니었지만 한 개, 한 개 정성을 담아 뒤집었다. 아침의 죄책감을 씻어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점심을 차려줬다.
오후에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축구장에 갔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파주(처가댁)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내의 파주 방문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 아마 미리 얘기했어도 나를 따라서 축구장에 갔겠지만, 고민은 했을 거다. 아내가 나와 소윤이, 시윤이를 축구장에 내려주고 떠났다. 지난주보다는 날씨가 훨씬 덜 추워서 다행이었다.
첫 경기를 뛰고 두 번째 경기도 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안 된다며 소리쳤다. 급기야는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다. 나가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나를 잡아끌었다. 결국 끌려 나갔다. 뭐 나랑 놀고 싶으니 그러는 건 이해가 됐지만, 경기장 안까지 들어와 그러는 건 우리 사이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그러는 경우도 없고. 소윤이에게 싫은 소리를 좀 했다.
“이럴 거면 다음 주부터는 아빠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어”
소윤이는 울었다. 공범이었던 시윤이는 눈치를 살살 보며
“누나아. 아빠 뚝구 하시면 우이끼리 놀다아”
라며 발을 뺐다. 하아, 둘째의 이 타고난 눈치.
훈육이라기보다는 서운한 감정의 토로였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나니 오히려 소윤이한테 미안했다. 아빠랑 놀고 싶어서 따라 나왔는데 아빠 없이 자기들끼리 놀아야 하니 소윤이도 섭섭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나란히 무릎에 앉히고 사과와 당부의 마음을 동시에 전했다. 착한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의 마음을 잘 받아줬다. 하필 오늘따라 사람이 없어서 그 뒤로도 쉬기가 어려웠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사람이 없어서 아빠가 계속 뛰어야겠네. 미안하네. 대신 이따 끝나고 엄마 오실 때까지 좀 실컷 놀자. 알았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기들끼리도 잘 논다. 다만, 아빠가 함께 놀면 더 좋을 뿐이다.
아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게 오라고 말을 해놨다. 덕분에 끝나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욕구를 해갈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골반 밑쪽으로 성한 데가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을 갚기 위해 또 뛰었다. 무궁화 꽃도 피우고, 얼음을 땡으로 깨기도 하고.
아내가 다시 왔고, 시간은 많이 늦었다. 김밥과 만두를 사고, 집에 가서 먹이기로 했다. 시윤이는 그럴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소윤이까지 졸았다. 의외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둘 다 쉽게 깨지 못했다.
“너무 졸리면 저녁 안 먹고 그냥 잘래?”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씻기려고 옷을 벗기려는데 갑자기 소윤이가 울었다. 아내와 나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짐작 가는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소윤아. 갑자기 왜 울어?”
소윤이는 계속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윤아. 말 안 해 주면 엄마, 아빠가 왜 그러는지 몰라”
조금 더 침묵하던 소윤이는 입을 열었다.
“속이 울렁거려여. 토할 거 같아여”
차 안에서 멀미를 좀 한 듯했다. 평소랑 다르게 졸았던 것도, 사실은 울렁거려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정작 토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고, 토하지도 않았다. 누나가 그렇게 요란을 떠는 사이, 시윤이는 잠이 좀 깼는지 만두를 먹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만두 한 판을 거의 다 먹었다. 소윤이는 딱 한 개 먹었다.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왠지 스스로 토하는 게 걱정이 돼서 자제하는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는데 갑자기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 하나 즐겁자고 온 가족이 고생하는 느낌이었다. 피곤함에 허덕이는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하루 종일 미안하다 끝나겠네.
다행히 소윤이의 증상(?)은 일시적인 멀미였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아무렇지 않았고 잠도 잘 잤다.
연휴 내내 잘 놀고, 잘 지냈는데 마무리가 영 개운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