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의 10월 단상

20.10.12(월)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요즘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서도 자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꼭 아내가 안아주지 않더라도 본인의 신체 한 곳이 아내의 몸에 닿아 있기만 하면 괜찮다. 발이 아내의 팔에 살짝 닿아 있다던가, 팔이 아내의 다리에 닿아 있다던가. 일종의 도킹 시스템이다. 엄마가 자기 곁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괜찮나 보다. 혼자 옹알옹알 대며 논다. 안 자고 논다. 기분이 괜찮아 보여서 슬그머니 나오려고 하면 바로 울고.


시윤이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서윤이가 그저 눕고 뒤집기만 할 때는 한없이 너그러웠는데 상황이 좀 바뀌었다. 서윤이가 가까운 거리는 이동이 가능해졌고, 서윤이 나름대로 제일 좋아하는 게 블럭이다. 블럭을 한참 동안 손에 쥐고 빨며 가지고 논다. 시윤이가 공들여 만든 자동차(?)를 서윤이가 잡으려고 하자 서윤이가 낚아채며 치웠다. 시윤이도 안다. 우리 집에서 아랫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건, 타인을 향한 폭력만큼이나 무겁게 다뤄진다는걸. 그러니 대놓고는 표현을 못 해도, 티는 난다. 시윤이도 아직 어린 네 살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서윤이가 자꾸 달려드니(?) 곤란하기 짝이 없는 거다. 시윤이는 서윤이가 아직 침범하지 못하는 소파 위로 자기 작품을 치웠다. 이제 시윤이도 시작이다. 소윤이가 겪었던 것처럼.


자, 그럼 소윤이는 어느 정도냐. 시윤이가 서윤이의 난입을 피해 이리저리 블럭을 치우는 걸 보며 한마디 했다고 했다.


“서윤아. 자, 이거(블럭) 줄 테니까 그냥 이거나 가지고 놀아”


소윤이는 서윤이가 너무 시끄럽게 울 때 빼고는, 항상 너그럽다. 시윤이게는 그렇지 않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실 한가운데 접히는 책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게 집이라고 했다. 퇴근해서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아빠. 아빠도 이리 와서 우리랑 같이 놀자여”


라며 날 끌어들였다. 어제의 미안함이 남아서 마음으로는 굉장히 기쁘고 즐겁게, 바로바로 호응하고 싶었지만 몸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굉장히 노력을 해야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서로 부부 사이였고 난 소윤이의 오빠가 되었다. 소윤이는 나를 ‘오빠’라고, 시윤이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상황극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퇴근하자마자 손만 씻고 바로 투입되었다. 상황극에 몰입할 감성을 찾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딱 하나 좋은 건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낮과 밤이 반복되었는데, 밤이 되면 누워서 눈을 감아야 했다. 잠시나마 너무 좋았다. 밤이 한 15초 만에 끝났다는 것 말고는.


아내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벌써 잘 준비를 한 게 아니라 어제 잘 때 입고 잔 옷을 채 갈아입지도 못한 거였다. 사실 갈아입을 명분(?)도 없었다. 집 밖으로 한 번도 못 나갔다는 얘기다. 아내도 나도 퇴근하고 만났을 때, 애들 재우고 만났을 때’ 여보. 오늘도 고생했어’라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매일 건네는 인사지만, 서로에게 진심이다. 잠옷을 입고 불 앞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서로 바빴다. 아내는 저녁 준비로, 나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놀이에 투입될 준비로.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는, 지난 생일에 내가 준 돈으로 코트를 샀다. 아내는 뭔가 옷을 조금 더 신경 써서 골라야 할 때, ‘입을 옷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실제로 그러니까. 입을 옷이 없기도 하지만, 입을만한 일이 별로 없으니 입을 옷을 못 아니 안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맨날 애 셋이랑 전쟁처럼 뒹구는데 갖춰 입을 일이 얼마나 있겠으며, 또 그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가능한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튼 아내는 코트를 샀다. 여러 상황에 두루두루 걸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선택은 아무래도 외투다. 아내에게는. 어쨌든 난 좋다. 아내가 옷을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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