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화)
새벽에는 도킹 시스템이 해제되어서 그런가 서윤이가 너무 자주 깬다. 잠깐 깨는 횟수가 줄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자도 잔 거 같지가 않은 하루하루다.
알람을 듣고 깨서 거실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소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마 소윤이도 잠을 설쳤을 거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 들어가서 다시 자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소윤아. 왜 벌써 깼어? 이리 와. 아빠 기도하는 동안 안고 있자”
소윤이를 안고 기도했다. 따뜻했다. 소윤이도 가만히 있었다. 기도를 다하고 나서도 소파에 앉아서 소윤이를 안고 있었다. 소윤이는 생각보다 오래 안겨 있는 편이 아닌데, 오늘은 내 마음을 느꼈는지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되어서 나갈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30분을 소윤이를 안았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기분이 좋은 출근이었다.
아내는 지인의 집에 방문하기로 해서 아침부터 바빴다. 그 바쁜 와중에 애들 샤워를 시켰다는 게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싶기도 했고.
아내는 아침 일찍 가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있었다. 내가 먼저 집에 도착했다. 특별히 힘든 일이나 마음을 잃을 만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 셋과 함께 남의 집에서 지내는 건, 만만치 않은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나보다 늦게 도착했으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자기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저녁으로 무엇을 사 먹을지, 아니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서 결정해달라고 했다. 본인은 도저히 그럴 정신이 없다면서.
뭘 사서 들어갈까 고민했는데 확 당기는 게 없었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구는 거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육아를 마치고 퇴근에 이르는 게 아내와 나의 바람이었다. 그렇다고 집에도 뭔가 ‘이거다’ 싶은 게 있지는 않았다. 고민에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하다, 문득 누룽지가 생각났다.
‘그래, 누룽지를 끓여야겠다’
간단하면서도 식사로 손색이 없고, 무엇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먹고. 마침 냉동실에 만두와 순살 치킨도 있었다. 주일날 만두를 먹지 못한 소윤이는 오늘 꼭 만두를 사 오라고 했었다. 산 건 아니었지만 만두를 잘 구워줬다. 여러가지 밑반찬도 꺼냈고. 아내와 아이들이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멋진 남편이 되고 싶어서도, 멋진 아빠가 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작은 바람은 그저, 조금이라도 빠르게 남은 과정을 마치고 행복하게 하루를 닫는 것, 그것이었다.
아내가 주차장으로 내려와 달라고 했다. 시윤이는 오는 길에 잠이 들어서 정신이 없었다. 자다 깼을 때의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고, 소윤이는 친구와 함께 와서 그런지(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을 같이 태우고 왔다) 기준치 이상의 흥분 상태였다. 일부러 소리 지르고 방방 뛰고.
빠른 퇴근을 위해 부지런히 준비한 저녁 식탁이었지만, 막상 아내와 아이들이 잘 먹으니 좋았다. (난 거의 모든 식사를 맛있게 하지만) 아내가 내가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게 이런 느낌인가.
소윤이는 집에 오면서 밤산책을 가면 안 되냐고 계속 물어봤다고 했다. 이럴 때 아내와 나의 마음은 비슷하다. ‘얼마나 나가고 싶으면 그럴까’ 싶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고되다. 당장 피곤한 건 둘째 치더라도 나갔다 오면 최소 1시간 이상 퇴근이 늦어지는 게 제일 문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만 퇴근하고 싶었지만 야멸차게 거절하는 게 미안해서 확답을 주지 못하고 고민했다. 이때 소윤이 특유의 집요함(무례한 고집?)이 발현됐고 밤산책은커녕 꾸중만 듣고 상황이 종료됐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너무 피곤해서 다소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기도 하다. 많이는 아니고. 그래도 그 이후부터 자기 전까지는 기분 좋게 웃고 떠들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먹을 걸 찾아 헤맸다.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온 산멧돼지처럼(오해하면 안 된다. 아내의 모습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가 그랬다는 거니까).
“아, 뭐 먹을 거 없나? 배가 고프네”
그러면서 냉장고 한 번, 찬장 한 번, 또 냉장고 한 번, 찬장 한 번.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러다 견과류도 꺼내서 먹고 요거트도 꺼내서 먹고 우유에 타 먹는 과자도 먹고. 이해한다. 아내의 헛헛함을. 하루 종일 먹이는 삶을 사느라 정작 자기 속은 비었을 아내의 삶을. 아내는 견과류와 요거트로 배를 채우는 게 아니다. 마음을 채우는 거다. (여보, 나 포장 잘 했지?)
아내는 울산의 친구와 신나게 통화하며 배 아니 마음을 채웠다. 그때 갑자기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 시간쯤 깨는 게 일상이 되었고, 쭉 자는 게 일탈이 되었다. 내가 들어가서 안고 나왔다. 서윤이는 아내가 있는 쪽을 향해 상체를 뻗으며 울었다. 아내에게 넘겨 주니 바로 울음을 그쳤다. 나를 보며 생긋생긋 웃기도 했고. 나 싫다고 떠난 여자가 뭐가 좋다고, 나도 마주 보며 헤죽거렸다. 그렇게 좀 웃더니 금세 눈을 느리게 꿈뻑거렸다. 잠시 후 아내의 어깨에 기대 그대로 잠들었다. 깨지 않고 계속. 아내는 서윤이를 방에 눕히고 나와서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깼는데 수유를 하지 않고 다시 잠든 건, 거의 처음인 듯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내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아, 저러고 또 언제 깰까. 밤이 두렵다. 좀 잘 잤으면 좋겠다”
매일 일기에 쓰니까 별거 아닌 일 같지만 아내는 매일 밤, 새벽에 정말 고생하고 있다. 아니 고문 당하고 있다. 서윤아, 언니랑 오빠는 안 그랬다. 밤잠 퇴행은 니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