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서 마라토너로

20.10.14(수)

by 어깨아빠

오늘은 서윤이가 나왔다. 뭐 서윤이는 지난밤에도, 역시나 아내와 나의 잠을 방해했다. 그러더니 아침 일찍부터 깼다. 하긴 서윤이한테는 일찍의 개념이 아니겠구나. 그냥 자기 주기대로 2-3시간이 지났으니 깬 거겠지. 아내는 다 죽어가는 힘든 모습으로, 서윤이는 아주 기분 좋게 나왔다. 덕분에 나는 좋았다. 아침부터 기분 좋아서 방긋방긋 웃는 서윤이랑 놀았다. 서윤이가 나랑 놀아줬다.


아내는 오늘도 파주에 갔다. 중고로 자전거를 샀는데 그걸 받을 곳이 파주였고, 나는 퇴근하고 집에 없을 거였기 때문에 겸사겸사. 아내는 ‘일찍 저녁 먹여서 오는 것’이 오늘의 목표라고 했다. 친정이라 편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잠은 집에 와서 잘 거니까 너무 늦어지면 힘들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뭔가 더 늘어지게 되기도 하고, 애들은 한없이 더 있으려 하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튼 목표 시간에 출발한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새로 산 중고 자전거는 분홍색이었다. 소윤이는 작년 생일에 할머니에게 받은 자전거가 있다. 누나가 자전거를 탈 때 시윤이는 킥보드를 탔는데, 요즘 부쩍 자기도 자전거 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게다가 가끔 소윤이 자전거를 태워 보면 생각 보다 잘 탔다. 한 2-3주 전에 중고로 자전거를 하나 샀는데, 너무 작았다. 바퀴가 작은 거야 상관없는데 핸들 높이가 안 맞았다. 영 불편해 보였다. 엄청 헐값에 산 거라 많이 아깝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로 오늘 산 분홍 자전거를 탐냈다. 정확히 하자면 소윤이가 탐을 냈다. 분홍색이라서. 멀쩡히, 그것도 시윤이가 킥보드를 탈 때 홀로 만끽하며 즐기던 자전거가 있는 소윤이가 그러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분홍 자전거의 권리 행사는 시윤이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소윤이는 이제 이런 걸로는 떼를 쓰고 그러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언변과 기교로 시윤이를 설득하기를 멈추지 않을 뿐. 누나였으니까 그 정도지, 형이었으면 가관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나를 떠올려 보면. 참고로 난 여동생이 있다.)


아내는 6시 40분쯤 카톡을 보냈다. 저녁 먹고 있는 소윤이, 시윤이 사진과 함께.


“얼른 먹이고 씻고 10분 놀고 출발하기로 함”


엄청 빠른 전개였다. 예상 밖이었다.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역시나 훨씬 늦어졌다고 했다 (난 아내보다 늦게 집에 왔다). 사실 가능했는데, 출발하기 직전 장인어른이 30분 있으면 도착한다는 걸 알게 됐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아버지 얼굴도 보고 싶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바람도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웠고, 손주를 보고 싶어서 부지런히 오고 계실 아빠의 마음도 외면하기 어려웠던 아내는, 결국 귀가를 늦췄다.


아내와 나는 11시가 넘어서 다시 만났다. 역시나 친정 다녀온 것치고는 꽤 힘들어 보였다. 아니지. 친정 찬스의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누리는 건, 아이가 하나일 때인 듯하다. 적어도 애가 셋이 되면 걔네 데리고 어디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큰 체력의 소모가 생긴다.


“여보. 소윤이랑 시윤이가 내일 밤에 자전거 타도 되냐고 물어보던데. 그래서 아빠한테 여쭤본다고 했지”

“하긴 얼마나 타고 싶겠어”


(육아) 퇴근 후에는 예수님이 된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그깟 밤 시간쯤 못 내겠나 싶다. 오늘처럼 오래 못 본 날은 더더욱. (회사) 퇴근 후에는, 막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톤 선수가 되는 게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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