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땅 이야기의 비극

20.10.17(토)

by 어깨아빠


애들을 대동하고 거실에 나오기는 했는데, 아내에게 그리 많은 늦잠 시간을 주지는 못했다. 서윤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울기 시작했고, 안아주거나 놀아준다고 달래지지 않았다. 손을 놨다. 안아주기는 했지만 울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내가 나와야만 끝날 상황이었다. 점점 거세지는 서윤이의 울음소리에 아내는 문을 열고 나왔다. 서윤이는 아내에게 안기자마자 울음을 그치고, 나를 향해 눈웃음을 건넸다.


아침부터 바빴다. 오전에는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선생님 집에 가서 회의를 했다. 어른들에게는 회의지만, 애들한테는 그냥 만나서 노는 거고. 서윤이는 낯가림이 심하지 않았다(아내나 나한테만 안겨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보고 울지는 않았다). 점심도 같이 먹었다. 애들은 죽을 줬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몇 번이나 더 떠 줬다. 약간 흥분한 상태였고, 여러 명이 같이 먹으니 괜히 더 그러는 것 같았다. 문제가 될 정도로 많이 먹은 건 아니라 달라는 대로 다 주긴 했다.


함께 텃밭에도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떠서 카페에 들렀다. 카페도 텃밭도 다 근처였다. 카페에 마침 야외 자리가 있었고, 우리 밖에 없어서 잠시였지만 아주 편하게 있다 왔다. 날씨가 조금 쌀쌀한 감은 없지 않았지만, 애들은 열심히 뛰어 노느라 추운 줄 몰랐을 거다. 서윤이는 평범한 수준으로 멀쩡하다 울다를 반복했다. 다만, 울 때 나에게는 전혀 오지 않았다. 아니지. 강제로 안기기는 했지만, 계속 엄마 품을 갈망하며 더 크게 울었다.


텃밭에서는 크게 한 건 없었다. 크게 자란 배춧잎을 떼어 내고, 너무 다닥다닥 붙은 열무를 뽑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슴 장화까지 신고 갔는데, 하는 일은 참 미미했다. 복장은 밭이라도 갈아엎어야 할 판이었는데. 텃밭에 가면 소윤이는 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뭔가 환경과 여건이 여의치는 않다. 아무래도 공동으로 관리하는 텃밭이다 보니. 시윤이는 아직 크게 의지가 없다. 소윤이는 조금은 ‘노동’으로서의 텃밭의 의미를 이해하는 느낌이고, 시윤이는 그저 ‘놀이’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다 끝내고 장화 세척하는 게, 텃밭 일보다 더 번거로운 듯하다. 물론 장화 닦는 건 나의 몫.


텃밭 활동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거의 5시였다. 엄청 피곤했다. 힘들 일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내 집이 아닌 남의 집, 바깥에서 보내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아이 셋을 끊임없이 돌본다면 더더욱. 소윤이와 시윤이도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아주 짧은 시간에도 졸려 했다.


아내와 나는 부대찌개를 포장해 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있는 걸로 차려줬다. 약간 그런 쾌감이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지 못하는 빨갛고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나눠 주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막 먹어도 될 때 느껴지는 홀가분한 기분. 부대찌개의 매콤하고 기름진 맛을 마음껏 음미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나니, 잠시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으어. 잘 먹었다”


잘 먹었으니 잘 재워야 한다. 항상 이때가 참 힘들다. 축구에서도 전, 후반 끝나기 5분 전이 가장 위험한 것처럼. 지칠 대로 지친 양육자와 아직 끝을 모르는 피양육자 사이의 괴리를 잘 다스려야 한다. 물론 다스리는 건 양육자의 역할이고. 오늘은 큰 파열음이 없었다(오늘만 그런 건 아니고, 항상 그런 편이지만).


고된 하루를 마친 아내와 나는 잠시 각자 할 일을 좀 하다가 또 영화를 봤다. 오늘의 영화는 ‘라라랜드’였다. 최근에 영화를 꽤 자주 봐서 그런가,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 볼 게 없어서 고른 영화였다. 영화 평점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평도 그렇고 볼 게 없을 때 마지못해 골라 보는 수준의 영화는 아닌 듯했지만. 이미 한참 전에 화제가 되었지만 아내와 나는 보지 않은 영화였다. 사실 난 뮤지컬 영화(이게 뮤지컬 영화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를 좋아하지 않는다. ‘드림걸즈’, ‘레미제라블’ 정도가 기억에 남는 뮤지컬 영화다. 워낙 호평받는 영화라 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초반부에는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재밌었다. 빠져들었다.


그때 소윤이가 깨서 나왔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고, 볼 일을 마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엄마는 언제 들어올 거에여?”

“엄마? 엄마는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갈 거야. 소윤이는 먼저 자고 있어. 기다리지 말고”


소윤이를 친히 배웅(?)하러 방으로 들어간 아내에게 소윤이가 물어봤고, 아내는 금방 들어오지는 않을 거니 먼저 자라고 했다. 불길하긴 했다. 왠지 안 자고 기다릴 거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방 안에서 코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우는 건 아니고, 코 막혀서). 어쩌다 보니 아내와 나는 소윤이 기침 소리, 코 훌쩍이는 소리만 들어도 그게 자다가 내는 소리인지 아니면 깨서 내는 소리인지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소윤이는 안 자고 있었다.


“여보. 여보가 들어가서 얼른 자라고 얘기 좀 하고 와”


아내가 다시 방에 들어가서 소윤이에게 잘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다시 나성땅(라라랜드)의 이야기에 몰입했는데, 잠시 후 또 소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 목 말라여”


폭발해 버렸다. 소윤이의 목 마름이 진짜였을지도 모르지만, 난 가짜라고 생각했다. 정황이 충분했다. 소윤이를 기르는 아내와 나만 느끼는 소윤이 특유의 고집과 집요한 구석이 있는데, 이것도 같은 류의 행동이었다. 특히 자는 것 가지고 이럴 때가 많다. 아내와 나의 신경을 살살 긁는다. 안 긁히면 되는데 오늘은 긁혀버렸다. 물도 주지 않았고, 다시 들어가서 눕게 했다. 무서운 말들과 함께.


소윤이는 울며 누웠고, 나성땅 이야기의 결말이 어찌 되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나도 기분을 잡쳐서 더 이상 영화 볼 기분이 아니었다. 난 아내를 사절단으로 들여보냈다.


“여보. 여보 먼저 들어가”


조금 미안하니까, 아내라도 들어가라고. 소윤이는 아내가 들어가기만 해도 조금 괜찮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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