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9(월)
휴가를 냈다. 갑자기 낸 건 아니고, 지난 금요일에. 이번에는 아내한테는 얘기하고, 애들한테만 비밀로 했다. 달콤한 아침잠을 자는데 소윤이가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아빠. 왜 회사 안 가여?”
“어, 갈 거야. 조금만 더 자고”
“오늘은 좀 늦게 갈려구여?”
“응”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거실에 나가고 혼자 방에 남아서 조금 더 잤다. 뒤늦게 거실에 나갔을 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당연히 회사에 갈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빠. 왜 안 가여?”
“아빠 오늘 휴가 냈는데?”
시윤이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엄청 좋아했고, 소윤이는 어리둥절이 조금 더 오래갔다.
“소윤이는 안 좋은가 본데?”
“아닌데? 엄청 좋은데여”
그렇게 시작된 아빠와 함께하는 월요일. 아내는 오전에 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등에 통증이 생긴지 꽤 됐는데 나아지지 않아서 물리 치료라도 받고 오겠다고 했다. 원인은 뻔할 거다. 하루에 많게는 7-8번씩 무거운 아기를 안고 수유를 하는데 성할 리가 없다. 물리 치료도 한 번 받는다고 무슨 효과가 있으랴. 그냥 좀 쉬다 왔으면 했다.
“서윤이 괜찮을까?”
“뭐 수유하고 나가면 되겠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걸 알자마자, 놀이터에 가자고 했다. 역시나 확답을 주지 않고 대답을 미뤘다. 고민했다. 수유를 끝낸 서윤이를 방에 눕혀서 재울 것인지 그냥 데리고 나가면서 유모차에 눕혀서 재울 것인지. 각각의 상황을 머리에 떠올려 봤다. 아무래도 나가는 편이 나아 보였다. 자면 좋고, 안 자도 수유는 했으니 기분이 엄청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놀이터 욕구도 해결하고.
“소윤아, 시윤아. 대신 아빠가 너희랑 막 놀아주기는 힘들지도 몰라”
“왜여?”
“서윤이가 자면 괜찮은데 안 자면 아빠가 서윤이를 봐야 하니까”
“알았어여. 괜찮아여. 우리끼리 놀면 되져”
다 함께 나가서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줬다.
“여보. 옆으로 샐 틈이 없네?”
“아, 그런가? 우리가 피해줬어야 하나? 여보, 이따 마중 나올게. 다른 데 갈 생각 하지 마”
농담을 주고받으며 아내와 헤어졌다. 곧장 놀이터로 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말 소윤이와 시윤이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다행스럽게도 서윤이는 잠들지는 않았지만 울지도 않았다. 유모차에 앉아 조용히 손을 빨며 꼼지락거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놀이터에서 놀고, 나는 서윤이가 탄 유모차를 계속 밀며 뱅뱅 돌았다. 한 20분 그렇게 끌었더니 결국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잘 놀았다. 둘이 노는 걸 보는데 기분이 참 뿌듯했다. 서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까 궁금했다. ‘누나’가 닳도록 누나를 불러대며 쫓아다니면서도 은근히 누나 말 안 듣고 뺀질 거리고.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한숨 푹 내쉬며 푸념하면서도 동생이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혼자 나왔으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딱 한 명, 누나와 동생 한 명 더 있는 건데 지루함을 모르고 깔깔거리며 놀았다. (요즘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감상에 빠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얘기한다. “여보. 진짜 그런 거 같아? 낮에도 그럴 거 같아?”)
잠시 평상에 앉아 소윤이와 시윤이 노는 걸 보고 있었는데, 유모차가 흔들렸다. 급히 일어나 유모차를 밀며 몰래 덮개를 들춰 보니 서윤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 울지는 않았고.
‘아, 이건 서윤이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유모차를 밀며 다시 빙빙 돌았다. 서윤이는 금세 잠들었고, 그 뒤로 나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움직였다. 깨는 건 상관없지만 울기라도 하면,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참 곤란한 일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로 다투지도 않고, 정말 잘 놀았다. 이 기분 좋은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뿌듯함은 뭔가 좀 부족한데. 흐뭇함? 든든함? 둘을 나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서윤이까지 어울리면 또 마찬가지겠지? 셋 키우면 뭐가 좋냐는 질문에 이런 ‘순간’을 설명해야 하는데, 생각도 안 나고 전해주기도 어렵다.
아내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상가 광장 쪽으로 옮겼다. 서윤이는 이미 깨서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울지 않고, 오히려 생글생글 웃어줬다. 아기띠에 안겨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 얼굴을 확인할 때마다, 소윤이 그맘때가 떠올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광장에서도 한참 놀았다. 둘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한참, 광장에서도 한참을 놀았는데 아내에게 소식이 없었다. 사람이 많아서 많이 기다려야 할 거라고는 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평일 낮에 애 셋을 거느리고, 아내의 자유로운 병원 방문을 도와서 뿌듯했다. 오랜 치료(?)를 마치고 등장한 아내를, 아이들이 반겼다. 나와라, 이 녀석들아. 아빠가 제일 반갑다. 그나마 서윤이가 단 한 번도 울지 않아서 가능한 버티기였다.
점심을 거하게 먹기에는 시간이 늦었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애들이 너무 배가 고플 거 같았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은 아내와 나도 배가 고팠고. 간단히 떡볶이와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사실 오늘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일정은 따로 있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기. 아내가 거기 파스타를 좋아한다.
잠시 집에 들러서 아내가 중간 정리(?)를 하는 동안, 난 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는 무척 졸렸다. 처음에는 안 잔다고 했는데, 순순히 뜻을 접고 들어갔다. 사실 나도 엄청 졸렸다. 시윤이 재우면서, 나도 잠들면 굳이 깨지 않고 한숨 잘 생각이었다. 노동 강도로만 따지면 출근해서 일하는 것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시윤이보다 내가 먼저 잠들었다. 아주 살짝. 시윤이는 일어나서 앉아 있었다.
“시윤아. 왜? 왜 안 누워?”
“아빠아. 안 다고 디퍼여어”
“에이, 아빠가 설명해 줬잖아. 지금 자야 이따가 저녁도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먹는다고. 잠깐이라도 자. 아빠도 안 나가고 옆에서 잘 거야”
“왜여어?”
“그냥. 아빠도 졸려서”
시윤이랑 나는 한 시간 정도 달콤한 낮잠을 잤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집에서 아주 가까웠다. 차로 10분 정도. 애가 셋에 유모차도 놓아야 한다고 하니 아예 단체석으로 안내받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내는 수유를 하고 왔다. 기분 좋고 편안한 위한 식사를 위한 초석이다.
초석이 깨졌다. 배를 채운 서윤이를 유모차에 눕혔는데 뭐가 못마땅한지 계속 울었다. 뭐가 못마땅하긴, 엄마 품이 아닌 게 못마땅하겠지. 결국 아내가 다시 안았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은 채 식사를 이어갔다. 나도 정신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잘라줘야 했다. 커다란 등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서 먹기 좋게 잘라 주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많이 먹기도 했고, 빨리 먹기도 했다. 그 속도와 기세를 보고 직감했다.
‘난 좀 더디 해야겠구나’
살을 발라주고 남은 뼈다귀에 붙은 살을 핥아 아니 발라 먹었다. 원래 뼈에 붙은 살이 제일 맛있는 거다. 덕분에 건강하게 먹었다. 끝까지 채우지 않고 약간 모자란 듯.
그 와중에 소윤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아빠. 똥 마려워여”
“아빠아. 저두 쉬 마려어여어”
큰 위기였다. 밥이고 뭐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오늘 하루의 노고는 내가 지켜야 한다. 사람의 뇌는 신비롭다. 즐겁고 기쁜 척하면 진짜 그런 줄 알고, 관련된 호르몬을 막 분비한다. 무사히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서윤이는 여전히 아내 품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잘 먹어서 채워 주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바로 집으로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뭔가 아쉽기도 했다. 평소에 자주 가는 카페들은 제법 멀었고. 월요일 저녁이니 오히려 쇼핑몰에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 안에 있는, 예전에 종종 가던 꽃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커피 마시고, 애들은 과자 먹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그러고 집에 왔더니 거의 9시였다.
“여보. 출근이 나은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빡세긴 빡세네”
그대로 뻗어버렸다. 아내는 자기가 애들을 씻길 테니, ‘여보는 서윤이 좀 봐’라고 했지만 서윤이가 날 봤다.
“아빠아. 내일도 회자 가디 마여어”
“가야지. 안 가면 안 돼”
“아니에여어. 죽으 때까디 가디 마여어”
이제 진짜 끝. 내일은 깜짝 휴가 없으니 엄마 말 잘 듣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