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화)
10년 넘게 직장인으로 살다 보니 긴 연휴를 보내고도 기계처럼 출근하는 능력이 미미하게나마 상승했다. 물론 버겁긴 해도, 몸이 반응해서 움직인다. 오히려 애들 보고 싶은 게 더 참기 어렵다.
아내는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는지 연락이 없길래, 내가 먼저 카톡을 보냈다.
“여보. 잘 일어났나요?”
아내는 아침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진을 보내줬다. 막 밥 먹으려고 앉았다고 하면서. 고작 한 장의 사진이었지만 ‘애들이 보고 싶다’, ‘반찬이 참 럭셔리하다’, ‘애들 귀엽다’ 등의 감상을 쏟아냈다. 아내는 그리워서 애가 닳은 나하고는 조금 달랐다.
“시윤이가 양배추는 뭐랑 싸 먹냐며 징징거려서 아침부터 확 열받네”
“고기가 없다는 말이야?”
“몰라 뭔 말인지도 모르겠음. 그전에도 이미 사소한 걸로 몇 번 했음”
“왜 그럴까. 휴일에만 천사네”
“배 포장을 왜 버렸냐며 울고”
언젠가 아내가 했던 명언이 떠오른다.
“여보. 나도 애들 보고 싶어 봤으면 좋겠다”
어제 아내가 물리 치료 받는 그 잠깐 동안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무리 못해도 10시간 이상을 붙어 있는 아내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아내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보고싶음.
아내는 역시나 잠옷을 입고, 서윤이를 등에 업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가 왜 그렇게 바쁘고 지쳤는지 몸소 보여주듯, 온 집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서윤이는 아내 등에 업혀 있다가 내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뒤로 확 젖혀서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강서윤. 잘 있었어?”
그럼 또 한 번 웃고. 인사는 길게 나누지 못한다. 더 팔딱거리는 1호, 2호가 있어서.
“아빠. 이리 와여. 얼른 같이 놀자여”
같이 놀자면서 눕히고, 매달리고.
오늘은 유난히 저녁 반찬이 많았다. 불고기, 오징어, 계란말이, 그 외 밑반찬.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진수성찬이 되었다고 했다. 풍성한 식탁 앞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식사 기도를 드릴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굶지 않는 것도, 굶지 않는 건 물론이고 둘러앉아 웃으며 먹는 것도.
“소윤아”
“네?”
“오늘 아빠가 점심에 계란말이를 먹었거든? 그런데 진짜로, 거기서 먹은 것보다 엄마가 해 준 게 백 배, 천 배는 맛있어”
“맞아여. 저도 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어여”
일부러 귀에 좋은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진짜였다. 맛도 맛이었지만, 집 밥 특유의 순수한 맛이 좋다. 이익을 남겨야 하는 의도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늘은 그걸 좀 알았나? 부지런히 먹으라고 채근하지도 않았는데 금방 식판을 싹싹 비웠다.
“여보. 오늘 나갔다 와”
싱크대 앞에서 그릇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슬쩍 얘기했다.
“갑자기? 왜?”
“그냥. 연휴 끝나고 첫날이니까”
말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은 있었다. 지난번, 아내가 외출했을 때, 갑자기 깨서 무섭게 울어 젖히던 서윤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재우고 나온 아내가 얘기했다.
“서윤이 깨면 어떻게 하려고”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그때, 갑자기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잠든 지 10분도 안 되어서. 아내와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 쳐다봤다.
“어떻게 하지?”
“그러게. 서윤이 너무하네”
“그냥 여보가 빵이나 사다 줄래?”
“진짜? 안 나가고?”
“서윤이 저렇게 계속 울면 어떻게 나가”
“아니면 지금 얼른 들어가서 재워 볼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아주 조금씩 약해졌다. 울음과 울음 공백도 점점 길어졌고.
“혹시 다시 자려나?”
“설마. 진짜 그럴까?”
놀랍게도 서윤이는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아내는 부지런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집이 아닌 어디든, 아내의 목적지였으리라.
“여보. 서윤이 깨면 무조건 전화해. 저번처럼 계속 안고 있지 말고.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알았지? 꼭 전화해”
물론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알았다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엄청 쫄았다.
‘또 저번처럼 깨서 울면 어떻게 하지?’
‘하아. 안 깼으면 좋겠는데’
‘제발 그냥 쭉 자라’
아빠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 걸까. 서윤이는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서윤이가 태어난 지 200일이 된 날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100일도 되기 전에 통잠을 잤고, 그 이후로 역주행 한 적은 없다. 서윤이는 200일이 되도록 밤에 두 번씩 깨고 있고. 울기도 엄청 울고. 아내와 나의 공통된 의견(?)은
“서윤이가 제일 까다로운 거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아먹는다. 아직 200일밖에 안 됐지만 아내랑 이런 얘기도 자주 한다.
“여보. 서윤이 너무 많이 컸다. 언제 이렇게 컸지. 너무 아쉽네”
200일이나 살았으니 밤이 어떤지는 그만 궁금해하고 좀 쭉 자는 게 어떻겠니? 막내딸, 서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