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크고 있는데 슬프다

10.21(수)

by 어깨아빠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생겼다. 이 녀석이 신통방통 한 것이, 혼자 거실에서 장난감을 물고 장난치다가도 내가 퇴근하면 눈을 빤히 맞추고 웃으며 반긴다. 밥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식탁 밑으로 쫄래쫄래 와서는, 온 식구의 발을 만지작거린다. 밥 먹다가 밑에 있는 녀석한테 장난을 치거나 눈을 맞추면 또 환하게 웃고. 그렇게 세상 근심 없는 웃음을 짓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짜증을 내거나 울기도 하고. 진짜 강아지는 아니고, 우리 집 막내 얘기다. 퇴근하면 보게 되는 서윤이의 요즘 모습. 강아지는 한 번도 키워 보지 않았지만, 왠지 이럴 거 같다. 기어 다니니까 더 강아지 같다.


저녁 먹고 서윤이 이유식도 먹였는데 엄청 잘 먹었다. 아직 삼키는 걸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입에 넣으면 줄줄 새어 나오기도 하지만 아내가 1회 식사용으로 소분해 놓은 건 거의 다 먹었다. 그렇게 오물오물 잘 받아먹는 서윤이를 보니, 소윤이 이유식 먹을 때가 떠올랐다. 서윤이에 앞서 두 번의 이유식 시기를 거쳤지만 소윤이 때만 떠올랐다. 시윤이는 어땠었지 생각하며 떠올려 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떠올리지 못했다. 소윤이 때는 썰기부터 젓기까지 정성스럽게 이유식을 만든 기억도 생생하다. 시윤이도 없지는 않을 거다. 횟수가 적기는 했어도 분명 같은 마음, 정성으로 했을 텐데, 기억이 없다.


아마 시윤이 때는 이맘때까지가 가장 힘들어서 그랬을 거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난 뒤에는 시윤이를 보며 큰 위로를 받았던 때도 많았다. 소윤이와 씨름하고 시윤이를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 때가 분명히 있다. 그건 생생하다. 그때 썼던 일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시윤아, 원래 끼인 자의 삶이 그런 거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 우리 집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아.


서윤이 이유식을 먹이고 나니, 온 천지에 이유식이 묻었다. 옷이야 갈아입히면 되니 간단히 얼굴과 목만 닦아주려고 했는데 목덜미 사이에 낀 이유식의 잔해가 잘 안 빠졌다. 안은 채로 옷을 벗기고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일종의 약식 목욕이었다. 별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꽤 힘들었다. 서윤이의 몸이 너무 컸다. 세면대 안에 쏙 들어가서 찰방찰방대는 걸 상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면대가 부족했다. 자꾸 뜨거운 물을 틀려고 하는 걸 막아가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몸 잡아가면서 씻기려니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서윤이가 물을 좋아해서 짜증은 안 내니 다행이었다. 가끔 밤에 자는 거 보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생각했는데, 진짜 이렇게 크다니.


소윤이도 많이 컸다. 얼마 전부터 딱딱한 걸 씹으면 아랫니가 아프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 살살 흔들어 봤더니 흔들렸다. 소윤이랑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앞니가 빠졌다는 소식을 최근 들어 자주 들었는데 소윤이도 곧 그 대열에 합류한다니. 슬펐다. 소윤이가 벌써 그렇게 컸다는 게. 큰 탈 없이 잘 자란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슬펐다.


“여보. 나 소윤이 앞니 빠지면 울 거 같은데?”


라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울 것까지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늦게 빠졌으면 좋겠다.


아내는 애들 재우러 들어가서 함께 잠들었다가, 한참 뒤에 나왔다.


“아, 커피라도 사 올까 했는데”

“아, 진짜? 지금이라도 사 와”

“모든 의욕을 잃었어”


아내는 냉장고에 있던 (편의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기운을 조금 되찾았지만, 쓸 데가 없었다. 이미 너무 늦어서. 잠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나와 함께 다시 자러 들어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