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4(토)
어제 바닥에서(애들 사이에서) 잤다. 애들 손잡고 자는 게 좋아서 그랬는데, 새벽에는 소윤이가 자꾸 내 손을 자기 쪽으로 당기고, 이상한 자세에서도 잡으려고 해서 잠결에 짜증을 좀 냈다. 그러게 매트리스 위에서 자면 될 것을, 자기가 내려와 놓고는(자기=나).
대신 아침에 일어나면 서윤이 자리와 소윤이, 시윤이 자리 사이에 놓인 울타리(?)를 통해, 서윤이가 보인다. 먼저 깨서 혼자 놀고 있거나 언니, 오빠와 놀고 있다가 그 틈으로 눈을 마주치면 엄청 잘 웃어준다. 바닥에서 자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서도 잘 논다. 둘이 끊임없이 상황극을 한다. 집에 장난감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주로 아내의 육아 용품을 소품으로 활용하며 각종 상황극을 한다. 한곳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온 집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정신이 사납기는 하다. 그래도 기특하다. 영상과 각종 대유행 장난감의 도움 없이 자생하며 노는 게.
서윤이는 주로 바닥에 널린 인형이나 블록을 빨며 지낸다. 언니와 오빠가 노는 걸 재밌게 보기도 하고, 나랑 눈 맞으면 웃기도 하고, 그러다 흥미로운 물체가 보이면 기어가기도 하고. 언니, 오빠가 너무 오랫동안 안 보이면 막 운다. 남들이 들으면 우는 거지만 아내와 내가 듣기에는 부르는 거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이가 너무 심심한가 봐. 언니, 오빠가 안 보이니까 우네. 와서 좀 놀아줘”
착한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던 상황극을 멈추고 (혹은 이어가면서) 서윤이한테 달려온다. 동생의 기분이 다시 좋아질 때까지 좀 놀아주고, 또 자기들의 상황극을 하러 떠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먼저 자기 가족 특히 형제,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거 같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서윤이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최근에 가만히 지켜보니 서윤이는 엄마가 안 보이면 당연히 울지만 내가 안 보인다고 울지는 않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안 보이면 운다. 서윤이에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런 존재다.
어디를 갈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또 파주로 정했다. 주말이니 사람이 많을 만한 곳은 피하고, 너무 멀지 않은 곳은 피하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무엇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파주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피곤했는지 가는 길에 잠들었다. 소윤이가 차에서 잠드는 건 언제나 이례적이다. 서윤이도 잤고. 옛날 생각이 났다(그렇게 옛날도 아니지만). 소윤이 때는 차에서 잠들면 카시트를 통째로 떼어서 카페에 들고 들어가는 열정을 발휘했다. 그것도 엄청 자주. 시윤이 때도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많지는 않았다. 둘이 동시에 잠드는 일이 그만큼 흔치 않았으니까.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기면 길가, 강변, 주차장 같은 곳에 차 세워 두고 차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것도 그렇게 행복했다. 서윤이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다. 일단 셋 다 자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예전 같은 기대나 흥도 아내나 나에게 없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가 참 대단하다. 카시트까지 떼어서 옮기는 열정이라니. 물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테지만.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파주에 안 계셨다. 바람 쐴 겸 드라이브를 가셨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이 소식을 들으면 슬퍼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손주들이 왔다는 소식에 저녁은 같이 먹자며 돌아오고 계셨고.
날이 너무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서윤이는 자고 일어나더니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계속 울어서 아내가 계속 아기띠로 안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 자전거 노래를 부르더니 정작 자전거는 얼마 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자전거를 조금 더 재밌게 탈 수 있게 할까 고민도 해 봤지만, 딱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냅다 밟는 게 제일 재밌지 뭐.
자전거는 아주 잠깐 타고 내내 놀이터에서 놀았다. 아파트 놀이터와는 차원이 다른 재미있고 독특한 놀이터였다. 내가 보기에도 엄청 재밌어 보였다. 이럴 거면 자전거는 그냥 차에 두고 오지 그랬나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뭐 어찌 됐든 재밌게 놀았으니까.
저녁 먹고 잠시 파주 집에도 들렀다. 다행히 서윤이는 밖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낯가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처럼 혼자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여기저기 웃음을 잘 나눠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소윤이는 평소 같았으면, 갈 시간을 미리 얘기해 주면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놀기 바빴을 텐데 오늘은 시간이 남았는데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소윤아, 어디 아파?”
“아니여. 그냥 졸려여”
“아까 잤잖아”
“그래도 졸려여”
혹시 어디 아플까 봐 걱정이 됐는데, 아내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에 와서 옷만 갈아입으면 될 정도까지, 잘 준비를 마치고 파주에서 출발했다. 엄청 피곤했다. 파주에 있을 때 아내가 장인어른에게 한 말이 정확했다.
“아빠. 지금 서윤이 빼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피곤한 거 같아요”
아내도 엄청 피곤해 보였고.
“아, 뭘 했다고 피곤하지”
“뭘 하긴. 추운 날 애들 자전거 들고 따라다니는 게 힘들지”
“그런가”
꽤 많이 피곤했나. 집에 도착해서 옷 갈아입고 잘 채비를 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조금만 꾸물거려도 짜증이 났다. 아, 이 짜증만 없애도 한결 나은 아빠가 될 텐데. 모두 들어가고 거실에 혼자 남으니 또 후회가 밀려왔다. 그거 조금 꾸물거린 게 뭐 그리 잘못했다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막 울거나 슬퍼한 건 아니었지만, 나 혼자 마음이 쓰였다.
‘오늘도 애들 옆에서 자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다. 애들이 모르더라도 마음의 사과도 건넬 생각으로. 일종의 반성 의식이랄까. 혼자 거실에 남아 시간을 보내다가 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서윤이가 깨서 수유를 하고 있었다. 바닥에 눕는 날 보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그러다 새벽에 또 짜증 내려고?”
아내는 아무런 악의 없이, 어떠한 의도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굉장히 거슬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이겠지.
시윤이의 두툼한 손과 소윤이의 얄쌍한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얘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