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3(금)
아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푹 자 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일찍 깨도 좋으니 밤새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날이 언제나 올는지. 신혼 때 더 많이 잤어야 하는데. 아니 그때까지 갈 것도 없다. 서윤이가 태어나기 전에 더 감사히 잤어야 했는데.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내가 일어나기 전부터 깨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깼다는 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일어나서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둘 다 따라 나와서 오줌을 쌌다.
“소윤아, 시윤아. 들어가서 조금 더 누워 있어. 조용히 하고. 서윤이랑 엄마 깨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면. 가만히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게, 누군가(그게 나야)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하려면. 아내는 이런 카톡을 보냈다.
“여보. 아침에 가위눌리는 기분이야. 서윤이 옆에서 자고 있으면 둘 다 저기로 들어와서 세 아이가 나를 압박해서 움직이지도 못함”
아내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는 것도 모자라, 그나마 잘 때도 서윤이 자리에 구겨져서 잔다. 여러 이유가 있다. 수유를 했는데도 서윤이가 안 자면 옆에서 토닥거리거나 신체의 일부를 서윤이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다 그대로 잠드는 때가 있다. 또 하도 자주 깨니까 그냥 거기서 자는 거다. 어차피 또 금방 깰 테니. 체구가 작은 아내가 누워도 비좁은 서윤이의 공간에, 날이 밝으면(종종 날이 밝기도 전부터) 소윤이와 시윤이까지 들어간다. 주말에는 감히 아내 근처를 탐하지 못하도록 내가 엄호할 때도 많아서 좀 나은데, 평일에는 그저 사바나 초원의 여린 초식 동물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난 신생아도 아닌데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는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아내가 늦은 오후에 카톡을 보냈다.
“여보. 난 윌에 옴”
우리가 굉장히 좋아하는 카페지만, 아내 혼자 애들을 데리고 가는 곳은 아니다. 교회가 아니면 우리 생활권과 겹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겸사겸사 갈 만한 명분이 잘 안 나오는 곳이다.
“아, 우리 동네에 윌 같은 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아쉬움을 자아내는 곳이지. 나중에 들어 보니 아내 친구(윌의 사장님의 부인)가 카페에 나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갑작스럽게 결정한 외출이었다. 즐겁고 호기로웠던 외출은 금세 얼굴을 바꿨다. 원래 아내 친구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같이 놀 계획이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윤이는 서럽게 울고. 서윤이는 그 소식과 상관없이 이미 울고 있었고. 시윤이는 누나와 동생의 울음과 상관없이 밤 파먹기에 열중했고. 그 와중에 아내는, 요즘 가장 좋아하는 빵인 크로플을 먹어야 했고. 또 먹여야 했고.
자, 차분히 상상해 보라. 아기띠에 매달린 막내는 계속 울고 칭얼댄다. 의자에 앉은 첫째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구슬피 운다. 유일하게 울지 않는 존재인 둘째는 밤을 파먹으며 빠른 속도로 자기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탁자 위에는 정말 맛있는 빵과 커피가 놓여 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해도 그걸 그대로 두고 떠날 수는 없다. 오금을 굽혀가며 와플을 떠서 자기 입에 한 번, 애들 입에 한 번씩 넣어 주고. 먹는 동안에는 칭얼대는 막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몸을 흔들어 주고.
“여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정말 너무 힘들었어”
집에 돌아와서야 평화를 되찾았다고 했다.
오늘은 교회에 가야 했다. 어제처럼 부지런히 밥을 먹고 애들을 씻겨 주려고 했는데, 시윤이만 씻겼다. 교회에 가지 말라고 장난과 진심을 섞어서 붙잡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떼어 내고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아마 엄마가 제일 붙잡고 싶었을걸.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거실의 풍경이 나가기 전과 비슷했다. 다시 말해, 아직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은 모습이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아내는 안 보였다(안방에 있었다). 과연 아내가 재우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나오지 못한 건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았는데 식탁 위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봉지 입구가 뜯어진, 떡볶이 과자였다. 중요한 단서였다.
‘아, 나와서 과자 먹다가 다시 끌려 들어갔구나’
아내가 먹던 떡볶이 과자를 나도 좀 집어먹고 주방 수납장에 넣었다. 아내는 오늘도 늦은 시간에 다시 깨서 나왔다.
“여보”
“어, 여보. 서윤이 깨서 들어간 거야?”
“어”
“떡볶이 과자 보고 알았지”
“아, 그랬어? 과자는? 다 먹었어?”
“아니, 저기 밑에 넣어놨어”
아내는 곧장 떡볶이 과자를 꺼내서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잠시 앉아서 카톡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보고, 나랑 얘기도 좀 하다가 다시 먼저 자러 들어갔다. 아내는 잠들기 전부터 걱정이 한 바가지였다.
“아, 서윤이 왜 이렇게 깨지. 또 깨겠지? 안 깼으면 좋겠다”
“그러게. 좀 푹 자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깨는 거야. 좀 푹 자지”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서윤이의 깊은 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