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이 넘었는데 아직 수면 전쟁이라니

20.10.26(월)

by 어깨아빠

서윤이가 정말. 정말. 해도 해도 정말. 정말. 너무한 밤이었다. 잔 시간이 더 짧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막 깼다.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깨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내는 요즘 등 통증이 심하다. 너무 잦은 수유와 안아주기로 몸이 망가진 데다가, 잠도 못 자니 피곤은 쌓일 대로 쌓이는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근육통은 며칠 아프다가 잠잠해지는데 아내는 벌써 한참 되었다.


낮에 문득 겁이 났다.


‘이러다 아내가 갑자기 아프거나 쓰러지거나, 너무 힘들어서 정신적으로 아프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잠을 못 자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 안쓰러운 건 둘째 치고, 만약에 진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큰일 정도가 아니지. 생각만 해도, 아니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


아내는 그 와중에 소윤이, 시윤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 셋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잠깐 나갔다 온 것도 아니고 오후 내내 밖에 있었다. 머리 아프다고 두통약까지 먹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아내의 수고를 새끼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덜어줄까 고민했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시국이 이렇다 보니 어디 좋은 사우나에 가서 몸 좀 담그고 푹 쉬다 오라고 하지도 못하고. 밤새 서윤이는 내가 책임질 테니 오늘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라고 하지도 못하고.


기껏 생각해 낸 게, ‘저녁 준비라도 못 하게 하자’ 였다.


“여보. 우리 오늘 외식할까? 서윤이 데리고 밖에서 먹는 건 힘드니 내가 가면서 뭐 사 가지고 갈게”


퇴근하는 길에 떡볶이를 사 가지고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기서 파는 주먹밥과 튀김. 바로 식탁에 앉아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서윤이는 약간 애매했다. 막 우는 건 아니었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일단 안아주고 달래다가 기분이 좋아졌다 싶으면 바닥에 내려놓고, 서둘러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다 또 혼자 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서윤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가서 바로 안아주고. 물론 결국에는 무릎에 앉혀 놓고 먹었다. 마지막에는 아내 무릎에 앉아 있었고.


예전에는 무릎에 앉혀 놔도 아무것도 몰라서 괜찮았는데, 이제 자기 빼고 온 가족이 먹는 무언가를, 자기도 먹고 싶어 한다. 먹고 싶다고 운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느꼈다.


“얘 먹고 싶어 하네”


어제 자기가 먹지도 않고 뱉은 이유식에, 고가의 한우가 들어간 걸 알까 모르겠네.


시윤이가 밥 먹다 말고 얘기했다.


“아, 어지럽다”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주였나, 똑같이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같은 소리를 했었다.


“시윤아, 어지러워?”

“네”

“그래? 어떤 느낌이야?”

“음, 어디러운 느낌”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는


“아, 춥다”

“춥다고?”

“네, 몸이 막 떨려여어”


이러고, 조금 더 있다가는


“아, 의자가 막 빙빙 돌고 흔들리는 거 같다아”


이러고.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어지러운 느낌을 너무 정확히 표현했다. 시윤이는 코피도 자주 흘린다. 걱정이 됐다. 어지러운데 코피 흘리고. 어딘가 기분 나쁜 증상의 조합이다. 아내가 그나마 가장 다행스러운(?) 추측을 내놨다.


“빈혈인가?”ㅇ

“아, 그런가?”

“하긴. 요즘 고기를 안 먹긴 했지”


생각해 보면, 고기를 안 먹은 건 아니다. 탕수육도 먹고, 불고기도 먹고, 닭고기도 먹고. 불에 구운 고기를 안 먹었을 뿐, 먹을 건 다 먹었다. 그래도 빈혈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일단 소아과에 가서 물어보고 필요하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아야 하나.


이 모든 일(아내의 피로와 통증, 시윤이의 증상, 소윤이의 피곤 등)에 서윤이의 지분이 적지 않다. 온 가족이 잠고문을 당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여러 방법(주로 자는 위치, 공간의 변경과 관련한)이 나왔지만, 아내는 너무 갑작스럽게 바꾸는 게 내키지 않았는지, 일단 원래대로 하자고 했다. 아내가 서윤이와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말도 안 되게 일찍, 다시 깼다.


“여보. 그냥 거실로 데리고 나와”

“그럴까?”


거실에 나온 서윤이는 아내 품에 안겨 있다가 다시 잠들었다.


“여보. 그냥 거실에 눕혀. 방에 눕히지 말고. 어차피 또 금방 깰 텐데 뭐”


아내는 서윤이를 그대로 거실에 눕혔다. 아내와 나는 서윤이가 없었을 때처럼 하던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목소리는 조금 줄이고 행동도 조심하긴 했다.


“여보. 자는 걸 보고 있어서 그런가 왜 더 잘 자는 거 같지?”

“그러니까. 엄청 잘 자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손도 넣었다가 뺐다가 그러면서 자는, 서윤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서윤이 배를 보기만 해도,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방에서 재웠을 때랑 비교하면 결코 더 짧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길게 잤다(물론 그래 봐야 2시간 정도지만). 다시 깼을 때도 아내가 바로 옆에 누워서 토닥였다. 수유를 하지 않고 재우는 시도를 해 본 거다. 성공하긴 했는데 엄청 짧게 자고 깼다.


“여보. 오늘은 일단 들어가서 재워야겠다”

“그래”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낮에 보내준 칼럼(?)의 주된 내용은 이거였다.


‘애들이 자다 깨서 운다고 무조건 수유를 하면 안 된다. 배고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빨고 싶어서 우는 건지 구분하고 충분히 울 시간을 줘야 한다. 그게 오히려 애들 정서에도 좋다. 운다고 무조건 먹이면 애도 힘들고 엄마는 더 힘들다’


모르는 바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너무 어려울 뿐이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아내가 걱정된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할 수 있는, 아내의 몫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이미 우리 집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로, 엄마로. 아빠 대신 엄마는 괜찮지만, 엄마 대신 아빠는 안 된다.


서윤아, 니가 제일 피해를 많이 볼 거야. 니 엄마 잘못되면. 그러니 적당히 좀 깨라, 적당히. 누가 아예 깨지 말라고 하던?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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