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7(화)
아내는 간만에 길고 긴 외출을 했다. 점심때쯤 아는 동생 집에 놀러 간다고 했다. 엄청 멀지는 않았지만 서울 시내에 있는 곳이라, 뭔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지도 모르는 외출이었다. 애 셋을 혼자 데리고 나가는 건, 난 아직도 해 보지 못한 일이다. 아내는 밥 먹듯이 하는 일이고. 이게 아내와 나의 체급 차이다.
중간쯤 전화했을 때는 아내 목소리에서 힘든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오랜만에 먼 곳에 나가서 친한 동생을 만나서 신난 듯했다. 애들도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아내의 아는 동생은 아기가 하나 있는, 서윤이랑 비슷한 개월 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수준에 맞는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뭐가 그리 재밌을까 싶었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 어디야?”
“어, 여보 퇴근하는 중? 우리는 아직 출발 안 했어”
“아 그래?”
“어, 저녁도 먹고 가려고. 여보는 햄버거라도 사 먹어. 집에 밥이 없어”
집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나서도 한참 뒤에 아내와 아이들이 왔다. 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내에게 들어 보니, 소윤이는 이모 집에 놀러 와서 너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내 생각에, 소윤이는 자기 말과 행동에 잘 반응해 주는 사람한테 마음을 더 확 연다.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소윤이는 유독 그런 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걸 막 대놓고 표현하는 건 또 아닌데, 아내나 나한테는 티를 내기도 하고, 티가 나기도 한다.
다 아기 장난감이긴 했어도 처음 보는 게 많아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도 많았다고 했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거의 모든 장난감과 교구를 꺼내서 ‘이건 뭐에여?’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소윤이가 어떻게 했을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는 동생)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집에서 놀다가 늦은 오후에 경의선 숲길에 산책을 나갈 때, 소윤이는 몇 번이고 아내에게 확인했다고 했다.
“엄마. 나갔다가 이모 집에 다시 오는 거져?”
경의선 숲길 산책은 녹록한 시간이 아니었다고 했다. 막내 두 명은 어쩔 수 없이 내내 몸에 붙이고 있어야 하지, 킥보드 타는 소윤이와 시윤이도 신경 써야 하지. 이럴 때는 트렁크에서 킥보드 꺼내고 넣는 것도 엄청 번거롭고 힘든 일이다. 문 열고 착착 넣고, 슥슥 꺼내는 게 불가능하다. 꾸역꾸역 자리 만들어서 넣어야 하고, 낑낑대며 꺼내야 하고. 아내도 경의선 숲길의 행복했지만 고된 여정을 자세히 얘기해 줬다. 너무 좋았는데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아내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등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엄청 힘들었을 거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둘이 툭닥거리거나, 슬금슬금 아내 말을 듣지 않거나, 피곤에 절어 짜증 내고 징징대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6살도 아기고, 4살도 아기지만, 1살은 진짜 아기니까. 6살과 4살이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 소윤이, 시윤이 정도면 뭐 칭찬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내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엄청 짧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자러 들어갔다. 서윤이도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아내는 애들 재우고 나와서 같이 보낼 시간이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자세를 바꾸거나 움직일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내가 너무 안쓰럽다. 아니, 뭐가 더 정확한 표현일까. 갸륵하다? 애틋하다? 아무튼 등이 아파서 수시로 곡소리를 내고,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동작이 느려지는 아내를 볼 때마다 그렇다. 아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만성 질병(?)이 아니고, 그야말로 육아로 얻은 새로운 통증이라 더 그렇나 보다. 여느 때와 다르게 금방 사라지지도 않고. 연애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세 번이나 경험한 출산의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소윤이나 시윤이가 아플 때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조금 더 튼튼한 (내실은 어떤지 모르지만 겉보기에는 그런) 내가, 차라리 대신 아팠으면 좋겠고. 어떤 때는 (요즘처럼 애 키우느라 몸 상하는 게 눈에 띌 때 특히) 애 셋 데리고 투박하고 큰 차 끌고 다니는 것도 안 돼 보인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내가 23살 때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11년을 같이 보냈고 그중 6년은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살았다. 내가 죄지은 건 아닌데,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의 몸이 급격히 상하는 게 느껴져서 더 그런가 보다. 그렇다고 뭔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고.
아내는 오늘도 자다 깨서 우는 서윤이를 재우러 먼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