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9(수)
오늘은 낮에 잠깐 손님이 온다고 했다. 덕분에 아내는 또 바쁘게 집 정리를 했다. 늘 말하지만 아내가 조금 신경을 덜 써도, 집의 정리 및 청결 상태는 평균 이상이다(작은방만 빼고). 누군가 오면 아내는 A급 상태를 만들기 위해 더 애쓰는 거다. 손님이긴 했지만, 평소에 자주 보는 사이라 극도의 청결함과 깔끔함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퇴근했는데 아내가 잠옷을 입고 있었다.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낮에 손님이 왔다고 했는데,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건. 차려 입고 만날 사이는 아니긴 해도, 잠옷을 입은 채로 맞이하지는 않는다. 아내가 얼마나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지 말해 주는 대목이었다.
“아, 여보. 나 잠옷도 못 갈아입었잖아”
“그러게”
낮에 두어 번 통화를 했는데, 그때마다 시윤이가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아서 냉전 기류가 흘렀다. 아내가 서윤이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걸 알고, 더 뺀질거리며 말을 듣지 않거나. 별것도 아닌 일로 자꾸 징징대며 아내의 신경을 긁거나. 소윤이는 이제 그런 게 별로 없는데, 시윤이는 차이가 많이 난다. 평일과 주말, 그러니까 아빠의 유무에 따른 편차가.
역시나 내가 퇴근했을 때는 둘 다 엄청 기분이 좋았고, 잘 놀고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라면, 시윤이가 하루 종일 그런 상태였을 거라고 착각했을 만큼.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시윤이는 요즘도 그 시간이면 굉장히 졸려 하지만, 그걸 핑계 삼아 막 짜증 내고 그러는 건 거의 없다. 서윤이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게 아쉽지만.
서윤이는 딱 경계선이었다. 안아주면 기분이 좋았고, 은근슬쩍 내려놓으면 잘 놀다가, 바닥이라는 걸 깨달으면 다시 울고. 다시 안아주면 또 괜찮아지고. 저녁 식탁이 차려지고 식사를 시작할 때쯤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 혼자 바닥에 널린 이것저것을 탐닉하다가, 자기 빼고 온 식구가 식탁에 앉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빛의 속도로 기어 왔다. 식탁 밑으로 들어가서 내 발을 막 만지며 칭얼댔다. 덕분에 반려인 체험 중이다.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혀 놓으니 칭얼대는 걸 바로 멈추고, 웃었다. 요즘은 웃겨서 웃는 거 말고, 관심을 끌기 위한 웃음을 많이 보여 준다. 에헤 에헤 에헤헤. 말을 못 하니 웃음으로 부르는 느낌이랄까. 앞에 앉아 밥 먹는 언니와 오빠를 그렇게 불러댔다. 꽤 한참 내 무릎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에는 엄마 품을 찾으며 다시 우는소리를 냈다.
“소윤아, 시윤아. 밥 부지런히 먹어”
부지런히 먹이고, 빠르게 씻겼다. 서윤이 옷 갈아입히고, 소윤이와 시윤이 씻기고, 옷도 갈아입히고. 치실질도 해 주고. 잠자리에 눕혀 놓는 것까지 했다.
“얘들아, 잘 자. 여보, 갈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늘은 ‘진짜’ 축구 안 가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어차피 내가 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수유 대체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지만, 엄마 껌딱지만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텐데. 지금은 그것도 안 되니. 물론 서윤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집안은 넓고 할 일은 언제나 많다. 어차피 있어도 도움이 안 되니 마음 편히 나가서 놀아도 되겠다는 궤변에 빠지면 안 된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윤이가 깼다. 아내가 양치를 하고 씻는 동안 잠시 내가 안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계속 바둥대며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우는소리를 냈다. 우는 건 말 그대로 우는 거고, 우는소리를 내는 건 우는 척 혹은 부르는 거다. 기분이 좋을 때는 웃음으로 부르고, 나쁠 때는 울음으로 부르고. 그러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우는소리가 격렬한 울음으로 바뀐다. 아무리 토닥이고 좋은 말을 속삭여도 소용이 없다. 어떤 방법도. 해결책은 오직 하나다.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뚝. 나의 팔과 허리를 내어주며 헌신한 그간의 시간이 떠오르며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보다 몇 배는 더 내어준 사람이 아내니까.
“여보. 먼저 들어갈게. 여보도 금방 잘 거지?”
“어, 그래야지”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째 비슷한 결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