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화)
아주 오랜만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다시 시작됐다. 아내는 어제,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고 했다. 설레는 두근거림은 아니었고, 너무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애 셋을 데리고 아침 일찍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하는 것도,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내에게는 모두 부담이 됐나 보다. 더군다나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라서 더욱. 아내는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같이 일어났다. 그렇게 일찍 일어났어도 상황에 따라서는 시간이 부족할지도 몰랐다.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애들 입을 옷을 미리 다 골라 놓고 준비물도 어느 정도 챙겨 놨다. 그래도 바빴을 거다. 밥도 해야 하고 도시락도 싸야 하고. 내 한 몸 일으켜서 출근하는 것도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나로서는, 아내가 대단할 따름이다.
아내가 중간중간 사진을 보내줬다. 거의 1년 만에 북적북적 모인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모이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니.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애들은 잘 지냈냐는 질문에
“서윤이가 엄청 도와줬지. 잘 울지도 않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뭐 비슷했어. 소윤이는 많이 울기도 했고. 시윤이는 말 안 듣기도 했고”
라고 말했다. 역시나 열쇠는 서윤이가 쥐고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선사하는 난관은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하고 수위가 정해져 있지만, 서윤이가 울거나 기분이 안 좋기 시작하면 빠르게 힘들어진다. 아내는 서윤이의 협조적인 태도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칭찬했다. 또 오랜만에, 더 많아진 아이들과 함께 모인 소회도 전해줬고. 모이니까 좋기는 한데 너무 힘들기도 하고, 그렇지만 또 모이고 싶고. 다함께 모이는 건 일주일에 한 번인데, 아내는 한 번이라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다른 엄마 선생님들의 생각도 비슷했다면서.
아내는 저녁으로 제육볶음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아내 입에서 먼저 고기를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오다니. 다른 엄마 선생님 한 명이 집에 가는 길에 제육볶음을 사서 저녁에 먹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자기도 먹고 싶어졌다고 했다. 퇴근길에 들러서 제육볶음 2인분을 샀다.
냉장고에 고수가 있었는데,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소윤이에게도 조금 떼어서 먹어 보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사실 이게 뭐냐고 하면서 뱉을 줄 알았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거부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맵지 않은 불고기가 반찬이었는데, 소윤이는 매번 고수를 곁들여 먹었다. 시윤이도 제법 잘 먹었다. 누나를 따라 호기를 부린다고 하기에는 꽤 많이 먹었다. 소윤이는 고수의 맛에 이미 매료되었고.
“아빠. 우리 다음에 고수 또 먹자여”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고수를 먹을 줄이야.
서윤이는 혼자 바닥에서 이것저것 빨며 놀았다. 그러다 엎드렸을 때 자기 머리보다 조금 위에 있는 스케치북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몇 번이고 꺼내려다가 안 되니까 우는소리를 내며 자기의 원하는 바를 알렸다. 나는 잘 몰랐는데, 소윤이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스케치북이었나 보다. 서윤이가 그걸 막 꺼내려고 하자 소윤이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저건 절대 안 돼여’ 라며 나에게 대신 치워줄 것을 요청했다. 서윤이에게는 웬만하면 모든 걸 허용하는 소윤이에게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소윤이도 애다. 조금 더 어른스러울 뿐.
셋 다 빨리 잠들었다. 아내도 일찌감치 나왔다가 일찍 들어갔다. 엄청 피곤했을 거다. 상상이 잘 안되지만,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아침 일찍부터 애 셋을 데리고 가서, 우리 애들은 물론이고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했으니.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피곤해 했다. 자야겠다고 들어간 아내가, 자지 않고 있다는 건 마켓컬리가 알려줬다.
“고객님의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고객님의 주문이 환불 완료되었습니다”
나도 일찍 들어갔다. 오랜만에(?) 아내 옆자리를 아무도 침범하지 않아서 아내 옆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