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수)
낮에는 오랜만에 장모님이 집에 오셨다. 요즘 낯가림이 훨씬 옅어진 서윤이는, 장모님을 보고 또 거세게 울었다고 했다. 폭풍같이 울음을 쏟아내고는 금방 진정됐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잘 안 하는 낯가림을 꼭 장모님만 만나면 하는지. 파주의 벽지가 정말 무서웠던 걸까. 금방 괜찮아져서 다행이었다.
(내)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어렸을 때 동생과 내가 찍은 사진, 동생 혼자 찍은 사진. 이렇게 두 장의 사진을 보내셨다. 동생이 엄마한테 보낸걸, 나에게도 보낸 것이었다. 사진 속 동생은, 지금 소윤이 나이 정도 돼 보였다. 엄마는 동글동글한 게 아주 귀엽지 않냐며, 사진 속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나도 소윤이 어릴 때를 그냥 떠올리려고 하면 가물가물해도 사진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떤 사진은 그 순간 아내랑 무슨 내용의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기억이 나기도 한다. 오늘 이 순간도 그럴 거다. 요즘 소윤이를 보면 자꾸 ‘언제 이렇게 컸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10년 뒤, 20년 뒤에 오늘의 사진을 보면, 얼마나 그립고 먹먹할까. 정말 행복하고 복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삼 실감이 난다.
(내) 엄마는 “이제 같이 늙어간다 그치”라고 보냈다. 소윤이 처음 태어났을 때만 해도 ‘젊은 할머니’ 소리가 어울렸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할머니고. 나도 “네? 애가 있다구요?”라는 놀라움 섞인 질문을 종종 받곤 했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애 아빠인 아저씨가 됐다.
세월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고 있는데 아내가 소윤이 사진을 보냈다. 왼쪽 광대뼈 부근이 어둡고 붉게 물든 모습이었다. 투명한 밴드도 붙였고. 놀이터에 나가서 놀다가 혼자 넘어졌는데 바닥에 얼굴을 그대로 부딪힌 모양이었다. 상처가 엄청 크고 깊지는 않았는데, 엄청 아플 것 같았다. 추운 날씨에 살갗이 사악 쓸렸으니 얼마나 쓰라렸을까. 넘어져서 생기는 찰과상이나 멍 정도의 상처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너무 속이 상했다. 집에 가서 직접 보니 더 안쓰러웠다.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흉터가 생길 만큼 깊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걱정은 됐다.
퇴근했을 때도 장모님이 집에 계셨다. 애들 먹일 고기를 굽고 계셨다. 내가 먹을 고기도 구우려고 하시길래, 시간이 없어서 못 먹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장모님이 애들 먹이려고 구운 고기라도 같이 나눠 먹고 가라고 하셨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으면 5분 안에 동이 날만한 양이었다.
“엄마. 그거 애들이 먹기에도 부족할걸요”
장모님은 애들이 먹을 상추도 엄청 잘게 잘라 주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에, 반 정도 자른 크기로 먹는다.
“엄마. 얘네 이거 그냥 싸 먹어도 돼요”
요즘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고기랑 친하지 않으신 데다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고기 먹성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제대로 본 적이 없으셔서 그러셨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생각보다 고기를 잘 먹고, 생각보다 쌈도 충실하게 싸 먹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막 저녁을 먹기 시작했을 때, 집에서 나왔다.
“여보. 나 오늘 장모님 계셔서 일찍 가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엄마 있어서 일찍 가는 거고 만약에 아니었으면 더 있다 갔을 거라는 말이야?”
“그렇지. 장모님 계시니까 마음 편히 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애들 밥 먹이고 그러고 갔지”
진짜다. 장모님 안 계셨으면 애들 밥도 다 안 먹었는데 튀어나가는 미친 아니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내는 장인어른이 오시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장인어른이 오시면 인사만 나누고 바로 재울 계획이라고 했다. 자주 들었던 계획이다. 계획대로 된 적이 거의 없기도 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축구를 마치고 와서 아내에게 들어 보니,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서윤이까지 협조를 안 해서, 결국 아내는 거의 밤 10시까지 속박되어 있었다. 내가 축구를 마치고 집에 온 시간과, 아내가 자유를 얻어 거실로 나온 시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매일매일 치열하다.
어제 요즘 흐름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잠자리가 개운했다. 잘 깨지도 않았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아내랑 얘기하다 보니, 아주 유력한 걸 찾아냈다. 어젯밤 혹은 새벽에는 아내가 수유를 하고 나서 다시 매트리스 위로 올라왔다. 평소에는 수유하고 나서 바로 그 자리(서윤이 자리)에 끼여 눕기도 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다시 자기 자리, 다시 말해 내 옆자리로 돌아온 거다. 그래서 내가 잠을 잘 잤다. 아내도 동의했다.
얘들아, 너네만 그런 게 아니라, 아빠도 엄마 옆이 좋아. 그리고 아빠가 원 소유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