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5(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파주에 갔다. 일종의 정기 방문이었다. 오늘은 정말로 일찍 갔다가 일찍 오겠노라며 굳은 다짐을 했다. 오늘은 가능성을 높게 봤다. 진짜 일찍 출발했으니까.
아내가 서윤이 사진을 보내줬다. 서윤이는 커다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끔 옷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씌울 때가 있다. 패션의 완성도보다는 성별의 선명성을 위한 선택이랄까. 아내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열에 여덟 아홉은
“아..아들? 아니 딸?”
이렇게 물어보고 한 명 정도는
“아우 아들이 아주 잘 생겼네”
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하고, 나머지 한 명 정도는
“딸인가 봐. 옷 보니까 딸이네”
라고 얘기한다. 소윤이 때도 그랬지만, 머리 짧은 아니 거의 빡빡이에 가까운 딸을 키우다 보면 괜히 그런 욕구가 생긴다. 내 딸의 성별을 맞추는 이들의 정답률을 높여 주고 싶은 그런 욕구가.
아내는 정말 빨리 돌아왔다. 어제처럼 나의 퇴근과 비슷하게 도착했고, 오늘도 주차장에서 만났다. 시윤이는 시무룩했다. 돌아오는 길에 푹 잤다고 했는데,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뭔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는지 입이 댓 발은 나와 가지고 넣을 생각이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난을 치며 웃음을 유발했지만, 시윤이는 의지를 가지고 웃음을 참았다. 무슨 심정인지 아주 잘 안다. 너무 멀리 간 거다. 적당히 하고 못 이기는 척 복귀했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친 거다. 민망하지 않게 돌아오도록 판을 잘 깔아주면 된다.
“어? 아빠가 너네 줄 선물 있는데”
“뭐여?”
“짜잔. 텐텐”
시윤이는 텐텐을 꺼내고 나서 1분 정도 뒤에
“아하하하. 내가 우즘을 땀을려고 했는데에”
라고 너스레를 떨며 정상의 범주로 복귀했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밥과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서윤이는 이유식을 먹였는데,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버림받은 이유식이었다. 오늘은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장난을 많이 쳤다. 한 숟가락 먹고 손 빨고, 그러고 나서는 아기 의자 등받이 빨고. 이게 한 호흡이다. 안 먹겠다는 건 아니었다. 먹긴 먹되 놀면서 먹겠다는 거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저녁 다 먹고 씻을 때까지, 서윤이는 이유식을 먹었다. 한번 먹을 때마다 너무 호흡이 길어서 그만 먹일까 싶기도 했는데, 그러기에는 한 입 받아먹을 때마다 보여주는 그 쩝쩝거림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서윤이의 이유식도 다 먹였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다 씻었고. 애들을 눕혀 놓고 잠깐 나갔다 왔다. 잠깐이라고 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기도 했는데, 아내는 시윤이 때문에 ‘대노’했다고 했다. 낮잠, 아니지. 이른 밤잠에 가까운 숙면을 취한 시윤이는 당연히 쉽게 잠들지 못했고, 한참을 종알댔다고 했다. 서윤이를 재운 아내는 먼저 나왔는데, 아마 그 뒤로도 계속 안 잤을 거다. 그러다 갑자기 안방 문을 팍, 거칠게 열고 나오는 바람에 서윤이가 깼다. 육아인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만행이다.
아내는 애들 재우느라 거의 3시간을 썼다. 오랜만에 아내의 정신이 흔들렸다. 그 우울감은 당장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약이다. 그 시간을 좀 단축시키기 위해서 어제 아내가 먹다 남은 카카오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아내에게 먹였다.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아내는 이런 얘기를 했다.
“여보. 우리 진짜 대단하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지?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렇지. 가끔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나 싶어”
어떤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현재 우리 집의 상황과 우리 모습에 대한 자가 경탄이랄까. 이렇게 쪼개서 자고, 수시로 깨는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각자 열심히 사는 게 대단하다는, 칭찬의 말이었다.
“우리 언젠가는 많이 잘 수 있겠지?”
“그럼. 언젠가는 끝나겠지”
정말 다행이다. 시윤이가 이런 아이였으면 우리 집에 사달이 났을지도 모른다. 서윤아, 니가 막내여서 참 좋아.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