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횡포

20.12.01(화)

by 어깨아빠

홀로 거실에 나와 출근 준비를 하는데 방 안에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내 잠잠해진 걸 보면 아내가 또 어떤 조치(먹이거나 안거나)를 취한 듯했다. 일상이 되어 무뎌졌지만, 아내도 정말 고생이다.


오늘은 퇴근할 때까지 거의 연락을 못했다. 아내도 바쁘고, 나도 바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찰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찰흙이라니. 더군다나 강아지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무엇이든 입으로 넣고 보는 서윤이가 기어 다니는데. 아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넉넉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나의 아름다운 해석과는 다르게 ‘하도 징징대서 그냥 하라고 줘 버렸다’가 현실일지도 모르지만.


항상 문을 열기 전에는 ‘오늘은 서윤이 안아주지 말아야지’ 내지는 ‘서윤이 안고 너무 즐거워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를 보고 눈이 사라지도록 찡그리며 웃는 서윤이를 보면 스르르 무너지는 게 문제다. 그나마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찰흙에 열중하고 있어서, 신경이 덜 쓰였다.


“자, 저녁 준비 다 됐다. 이제 정리하고 앉자”


아내의 신호가 들리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던 걸 멈추고 정리한다. 식탁에 밥과 반찬이 놓이고, 각자 자리를 찾아 앉고. 나도 안고 있던 서윤이를 슬쩍 내려놓고, 시선을 끌만한 장난감 하나를 안겨준 뒤 의자에 앉는다.


서윤이는 금세 식탁 밑으로 기어 왔다. 오늘은 내 다리를 붙잡고 일어서며 매달렸다. 이런 게 진짜 바디 랭귀지다. 누가 봐도 안아달라는 몸짓이었다.


“그래, 서윤아. 혼자 거기 있으니까 심심하지”


서윤이를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 숟가락을 줬다. 숟가락을 빨면서 잘 앉아 있었다. 아내에게 가겠다고 울지도 않고, 밥 먹는 내내 그렇게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어른 숟가락이었는데 중간에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숟가락이 너무 커서 입 안쪽 어딘가에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서윤이가 쓰는 이유식 숟가락으로 바꿔 주려고 가지고 갔더니, 왜 빼앗아 가냐며 쨍한 소리와 함께 울었다. 다시 숟가락을 주니 바로 그치고. 이런 것도 너무 신기하다. 주제에 뭘 안다고.


밥 먹고 나서도 소파에 한참 앉아 있었다. 서윤이는 내 무릎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앞에서 둘이 놀기도 하고, 나한테 장난을 치기도 하고. 내 다리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아내가 아이들에게 씻으라고 채근하지 않길래 나도 그대로 뒀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기분이 좋았고, 많이 웃었다. 그 웃음이 보기 좋았다.


아무리 웃음이 좋아도, 우리의 밤이 영원할 수는 없다. 때가 차면, 씻어야 하고, 씻으면 자야 한다. 마침 서윤이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엄마를 찾으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씻을 때도, 방에서 아내와 서윤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도 계속 웃었다. 나도 그 웃음이 식지 않도록 계속 장난을 쳤다. 잠시라도 이렇게 아이들 웃는 걸 볼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그게 너무 짧아서 영 성에 안 차기도 하고, 그렇다.


아내는 저녁 먹기 전에 쿠팡 이츠에서 커피를 배달시켰다. 커피를 배달 주문한 건 처음이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가 냉장고에서 커피를 꺼내 식탁에 놓자마자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재우고 나온 거 아니야?”

“아, 소윤이가 안 잤어”

“아, 그래?”


그래도 너무했다, 서윤아.


아내는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들어갔다. 다행히 다시 나오기는 했다. 아내는 커피와 함께 주문한 케이크를 먹으며 부모 훈련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또 들렸다. 공포의 서윤이 울음소리.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잘 준비를 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깬 서윤이는 보통 아내가 보여도, 나에게 안겨 있으면 운다. 화장실에 간 아내는 문을 완전히 닫지도 못하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나에게 안겨 언제든 울 표정을 하는 서윤이를 안심시켰다. 양치하는 동안에는 아예 화장실 문을 열고 그 앞에서 대기했다. 그래서인지 울지는 않았다. 사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니 좀 울려도 되지만, 울리기가 싫어서 그런다. 서윤이 울음소리에 벌벌 떠는 나를 보며, ‘내가 이렇게 나약했나’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지 뭐. 막내딸인데.


아내는 또 들어갔다.


“아, 나오고 싶은데”

“이 시간에? 힘들어 보이는데”

“그래도”


역시. 아내는 못 나오고 있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는 게 더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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