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수)
오랜만에 잠결에 소윤이 목소리를 들었다. 아내도 함께 깨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한참 걸리는 걸로 봐서는 그저 오줌만 싸는 건 아닌 듯했다. 그 시간에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라면 보통 바지에 오줌을 싸는 건데, 소윤이에게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깬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알람이 울릴 때까지, 나중에 보니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다시 깊이 잠들지 못했다. 아내는 소윤이를 처리하고도(바지에 오줌을 싼 게 맞았다. 아주 조금) 눕지 못하고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소윤이가 다시 잠들지 않는 소리도 들렸고(참 신기한 게, 소윤이가 코 훌쩍이는 소리, 몸 뒤척이는 소리만 들어도 자는 건지 아닌지 가늠이 된다). 거기에 ‘아, 얼른 다시 자야 되는데’의 강박이 더해져, 잠을 설쳤다. 생각보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짧고 굵게 잘 잤나 보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아무 데도 나가지 못했다. 출근길의 차고 쓴 공기가 뭐가 좋다고 부러워하냐며 목소리를 높일 남편도 많겠지만, 하루 종일 바깥공기 한 번 못 쐬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수고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집안일이 힘들다, 애 보는 게 힘들다, 바깥일이 힘들다 이런 걸로 싸우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 다 힘들다. 누가 더 편한가를 찾아서 그 얼마 없는 ‘편함’을 없애려 들지 말고, 누가 더 힘든가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서 그 좁은 틈에 어떻게든 ‘편함’을 밀어 주면서 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내와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셋째를 낳고 아내와 더 끈끈해지고 깊어졌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겠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2시간이나 공부를 했다고 했다. 얘기를 하는 느낌이 억지로 앉아 있었던 건 아니고, 둘 다 나름의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소윤이는 밑그림을 따라 정자로 쓴 필사 책을, 시윤이는 ㄱ과 2를 연습한 한글책과 수학 책을 보여줬다.
“우와, 소윤이도 엄청 노력한 게 느껴지네. 배운 대로 쓰려고”
“오, 시윤이도 엄청 열심히 썼네. 우와 대단하네.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칭찬하는 게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양과 속도가 아닌 노력을 칭찬하기 위해 애썼다.
한껏 자신들의 학습 무용담을 늘어놓고 나서는 나를 바닥에 눕히더니 올라타고 누르고 그랬다. 하필 오늘 유난히 지쳐서 신나게 받아주지 못했다. 간신히 ‘하지 말라’는 말과 ‘힘드니까 그만해’라는 말만 참아냈다. 가만히 누워서 웃지 못하는 표정으로 겨우겨우. 밥 다 됐으니 식탁에 앉으라는 아내의 외침이 어찌나 반갑던지.
신나게 못 놀아준 대신 식탁에 앉아 하루의 일을 쏟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호응했다.
서윤이가 한두 번 덜 깬다고 신났던 게 지난주였나, 그전 주였나. 아무튼 요즘은 또 어마어마하게 자주 깨는 서윤이와 살고 있다. 오히려 새벽에는 비슷한 느낌인데, 재우고 나왔다가 우리(아내와 나)도 자러 들어가기 전까지 엄청 깬다. 오늘도 아내는 거의 3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재우는 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덕분에 얻은 것도 있었다. 아내는 오랜 시간 서윤이를 재우며, 유익한 부모 훈련 강의를 여러 개 들었다.
꿈보다 해몽을 위해 이렇게 쓰긴 하지만, 정말 징글맞게 깼다.
겪은 고난에 비해 아내의 정신이 온전하다고 느낄 때쯤, 그러니까 자기 직전에 갑자기 아내는 우울감을 호소했다. 아내의 성에 차지 않는 집안 꼴을 보면서. 이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면 하루가 꼬인다고 하면서. 그럼 아이들한테 넉넉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면서.
여보, 우리 이 시기를 꼭 기억하자. 언젠가 잘 자는 서윤이랑 살게 되는 날, 많이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