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 반숙, 성숙

20.12.09(수)

by 어깨아빠

시윤이는 요즘 학구열이 불타오르고 있다. ‘ㄱ’과 ‘1’, ‘2’를 배우고 열심히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자기가 썼던 무수한 ㄱ과 1, 2를 보여주며 자랑하기 바쁘다.


“아빠. 오늘 제가, 어, 어, 뭐였더라. 누나? 아, 맞다. ㄱ 하고 1 을 이만큼 썼더여어”

“오, 그랬어? 열심히 썼어? 최선을 다해서?”

“네”

“이만큼 쓴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썼는지가 더 중요한데. 시윤이 어떻게 썼어?”

“어, 힘을 다해저”

“오, 그랬어? 그럼 됐지. 하이파이브”


소윤이는 알파벳을 복습하는 것 같다. 새로 들인 교재에 A E I O U 가 첫 내용인가 보다. A 와 a 를 쓰고, a 발음이 나는 단어를 찾는 연습을 한 흔적이 남은 책을 보여줬다.


“오, 소윤이도 열심히 한 거 같은데? 엄마가 서윤이 보느라 제대로 못 봐 줬을 텐데. 최고”


적어도 자녀 양육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닌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고. ‘찔러서 쓰러뜨리고 살아남아야만 이기는 전쟁 같은 경쟁터에 내몰고 싶지 않다’는 게 내 마음의 작은 불씨였다. 거기에 신앙의 연료가 부어져 활활 타오르니 이렇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다시 그 구조 안에 들어가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싶었다. 찌르지 말고, 찔려서 쓰러진 친구를 부축하는 인생을 살도록.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방향성을 가졌(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불안할 때도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가?’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의, 어떤 본능이 유발하는 불안이랄까. 이런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부지런히 뭔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윤이가 점점 보육이 아닌 학습이 필요한 나이가 되니 더 잦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노력이고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어디까지가 선의의 경쟁이고 어디까지가 악의의 경쟁인지.


‘경쟁하지 않을 거니 공부는 필요 없다’는 말이 잘못된 건 분명히 알겠는데, 그 경계가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다.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니 욕심이 고개를 든다. 든 고개로 자꾸 주변을 살핀다.


‘자, 다른 사람은 어디쯤인가 볼까’


인간이 연약한 건가, 부모가 연약한 건가. 성실을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가 ‘공부’라는 것도 확실히 알겠는데. 정작 내가 공부로는 성실을 쌓아본 경험이 없어서 더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맞다. 난 이기기 위한 공부만 해 봤지(그것도 잠깐), 스스로의 성실과 노력을 위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르나 보다.


분명한 건, 경쟁의 연료는 비교다. 내 아이들만 봐야 한다. 내 아이가 어제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 아이가 어제보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 아이의 꿈이 어제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래야 애들도 다른 사람을 안 볼 테니. 비교할 때 보지 말고, 손 뻗을 때 보라고 가르치고 싶은데, 어렵다. 나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라.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건네는 ‘노력을 향한 칭찬’이 거짓과 연기가 되지 않으려면, 나도 애들 만큼이나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거 같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와 엄마는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너희를 키우고 있단다. 그러니 나중에 커서 ‘아빠(엄마)가 해준 게 뭐가 있냐’는 말은 하지 마.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아빠가 일기 쓰는 것도 다 그런 이유야. 증거를 남기려고. 앞으로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부디 같이 사는 동안에는 잘 성숙했으면 좋겠다. 너희도, 나도.


서툰 글씨로 삐뚤빼뚤 열심히 적은 너희의 알파벳과 숫자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드네. 아빠의 일기가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퇴고가 없어서 횡설수설이지만.


(서윤아. 넌 비교 안 하고 있어. 다른 집 애들이 얼마나 오래, 많이 자는지. 이런 거 따위. 평소보다 1시간 더 자는 너에게 엄마와 아빠는 오늘도 작은 행복을 누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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