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가니 또 편하네?

20.12.12(토)

by 어깨아빠

신림동에 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 가는 건 추석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젯밤에 아내가 (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성사시킨 약속이었다. 막상 날이 바뀌고 가려고 하니 귀찮았다. 이건 단순히 나가기 귀찮은 게 아니었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하루를 자고 와야 한다는, 불편함과 거추장스러움이랄까.


“여보. 막상 가려니까 좀 귀찮네”

“그치? 내가 파주에 갈 때 어떤 심정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이제 간다고 막 편한 것도 아니고”

“물론 편하겠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맡겨 놓고 자유로워지기도 어렵고. 셋이나 되다 보니 이제 아무리 부모님 집이어도 옛날처럼 편하지는 않다. 아내 말처럼 물론 편한 게 많다. 밥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애들도 덜 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 극적인 기쁨은 없다.


거기에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괜히 꺼림직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지 않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기에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이 너무 들떴다. 이미 점퍼까지 다 입고 준비를 마친 뒤였다. 어떤 이유를 대든 이제 와서 신림동에 못 간다고 얘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애들한테는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주방에서 서윤이를 안고 뭔가를 하면서 혼잣말처럼


“아이고, 우리 서윤이. 오늘도 할…”


까지만 말하고 멈춘걸, 소윤이가 들었다. 소윤이는 단박에 눈치를 챘다.


“오늘 할머니 집에 가려구요? 신림동 할머니 집에?”


라고 물어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어제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들을 때부터 ‘혹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고 하는데, 소윤이 앞에서는 컵도 함부로 못 만진다.


출발하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할머니 집에 가더라도 너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을 한 번 더 전했다. 집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하라는 건 아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알고 나도 아는 어떤 ‘선’을 너무 밥 먹듯이 넘지는 말라는 의미였다. 4살, 6살 남매가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출발하기 전의 귀찮았던 마음이 무색하게, 생각보다 편했다. 의외의 이유 때문에. 서윤이가 거의 울거나 칭얼거리지 않았다. 막내의 특성인지 서윤이의 특성인지는 모르겠는데, 집에서도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때 운다. 신림동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많은 시선이 자기에게 꽂히니 그랬던 것 같다. 소외당할 틈이 없으니 기분이 나쁘지도 않나 보다. 오해받기 딱 좋다. 이런 애기면 열 명도 더 키우겠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집 특수를 이용해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누웠을 뿐 아니라, 자는 것도 아예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잤다. 재워주는 것도 할머니가 했고, 누워서도 거의 1시간을 키득거렸다. 소윤이는 할머니(내 엄마)에게 ‘내일 아침에 6시에 일어나야 한다’라며, 알람 맞춘 걸 눈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1분 1초가 아깝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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