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도 모자라

20.12.13(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이가 강제한 알람은 6시였지만, (내) 엄마는 당연히 알람을 지웠다. 소윤이는 한 수 앞서갔다. 5시도 안 된 시간에 일어나서 할머니를 깨우고, 나가서 놀자고 했다. (내)엄마는 그 새벽에 6살 손녀에게 ‘왜 더 자야 하는지’를 한참 설명했다. 소윤이는 30여 분 시간을 끌고는 겨우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 7시 30분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할머니. 7시 30분이잖아여. 왜 알람 안 맞췄어여?”


라며 화들짝 놀라서 엄마를 깨웠고. 정말 대단하다 소윤이. 너의 그 잠을 향한 무욕구를 잘 이용할 일이 뭐가 있을까. 정말 대단해.


언니와 오빠를 모두 떠나보낸 서윤이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기야 뭐 아침뿐만 아니라 밤새도록 주기적으로 일어나니까 ‘아침 일찍’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구나. 아무튼 이른 아침에도 일어났는데, 기분이 좋았나 보다. 나의 얼굴에 침 범벅을 하며 쥐어뜯고 난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하나도 귀찮거나 성가시거나 나쁘지 않았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침으로 적셔질수록 행복했다.


잠을 완전히 깨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잠결에 서윤이랑 놀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서윤이가 없었다. 아마 (내) 엄마가 데리고 거실로 나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어제도 서윤이와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지만, 철통같이 통제하는 소윤이 덕분에 그러지 못했다. 겨우 사정해서 5분의 면회를 허용 받는 식이었다.


서윤이는 어제와 비슷했다. 관심을 좋아하는 아이다. 다 함께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도 바닥에 앉아서 잘 놀았다. 모두 자기 주변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나 보다. 하루 온종일 붙어 지내는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에 비하면 현저히 보는 시간이 적은 내가 보기에도, 평소의 서윤이랑 좀 달랐다.


‘아니, 얘가 이렇게 안 울고 잘 지낸다고? 이렇게 오랜 시간?’


점심 먹고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저녁 먹고 오게 됐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수지맞았다. 놀고먹고 놀고먹고 놀고먹고. 할머니, 할아버지에 고모, 고모부까지. 얼마나 잘 놀았으면 소윤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벌써 깜깜해졌네여? 이게 내 소원이었는데”

“뭐가? 할머니 집에서 자고 깜깜해질 때까지 놀고 가는 거?”

“네”


난 낮에 너무 졸려서 낮잠을 한숨 잤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좀 아팠다. 거기에 서윤이 똥 닦아주느라 요상한 자세로 서윤이를 안았더니 허리도 뻐근했다. 머리와 허리 모두 확 아픈 것도 아니고 살살, 기분 나쁘게.


그렇게 원 없이 놀았는데도 아쉬웠나 보다. 마지막에는 서윤이가 졸리고 배고파서 안아줘도 달래지지 않는 상태까지 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10분만 더’를 외쳤다. 머리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 나와 자기 유연성이 얼마큼인지 확인하려는 듯 몸을 젖혀대는 서윤이를 안은 아내 모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래, 놀아라 놀아’라며 10분을 허락했다. 이럴 때일수록 적당히가 없는 소윤이는 ‘마지막 놀이’로 윷놀이를 골랐다. 지난 추석 때 처음 접하고는 많이 재미있었나 보다. 어제, 오늘 많이 했는데 결국 마지막도 그거였다. 아내와 나는 깊은 한숨을 들이켰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고모부와 쌓은 이틀간의 행복한 기억을 잘 지켜주기 위해 아내와 나도 부단히 노력했다. 재촉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제법 깔끔하게 헤어졌다.


“할머니이, 할아버지이. 안녀엉. 사랑해여어어어”


시윤이는 바로 잠들었다. 소윤이는 잠들지는 않았고 조용했다. 아내가 보고는 졸려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아내가 다시 뒤를 돌아봤는데 그냥 졸린 게 아니었다. 소윤이는 훌쩍이고 있었다.


“소윤아. 왜? 왜 울어? 할머니랑 헤어진 게 아쉬워서?”

“(끄덕끄덕)”


그야말로 이별의 아쉬움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었다. 많이 못 놀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못 한 게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실컷 논만큼 커지는 이별의 슬픔이랄까. 그래도 기특하게, 할머니랑 통화 한 번 하더니 또 금방 괜찮아졌다. 그러더니 집에 도착해서 자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내가 할머니한테 나중에 일 안 가실 때 우리 집에 와서 3박 4일 주무시고 가라고 했어여”

“아, 그랬어? 그러면 소윤이 엄청 좋겠네”


소윤아,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힘들겠지만, 혹시나 가능하더라도 그건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너희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란다.


“여보. 나 내일 휴가야”


아내는 나의 휴가를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다가 새삼 깨닫고는 기뻐했다. 아직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르고. 뭐라도 해야 했는데 지끈지끈 아픈 머리가 금방 나아지지는 않았다. 약도 먹고 단 것도 먹고 따뜻한 것도 먹고 억지로 막 주물렀더니 조금 나아졌다.


그때쯤 서윤이가 깼다. 물론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일도 휴일이니까 아내와 나는 얼마든지 더 놀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현실 세계는 냉혹했다.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가는 아내가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나 다시 나올게. 기다려”


아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예고하듯, 아내의 눈꺼풀이 유독 무거워 보였다. 아내는 밤마다 허언증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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