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로운 마지막 연차

20.12.14(월)

by 어깨아빠

기쁘다 연차 오신 월요일이다. 요즘 조금 잘 자나 싶었던 서윤이가 오늘 새벽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했나 보다. 잠결에 서윤이 우는소리가 많이 들리기도 했고, 아내가 거실로 나가는 것도 자주 느꼈다. 요즘 서윤이는 "엄머어, 음므아, 엄므아"라고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좋은 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아니 아예 없다. 언제나 슬플 때, 울 때 부른다.


"엄므아아아아아아"


아침에 완전히 눈을 떴을 때도 아내와 서윤이는 거실에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거실에 있었다. 아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시윤이를 부르며, 방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이 오늘의 첫 장면이었다.


시윤이와의 시간을 마치고 나온 아내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예민함이 느껴졌다.


“여보. 들어가서 좀 더 자”

“아니야, 괜찮아”

“뭘 괜찮아. 얼른 들어가서 좀 자”

“그럼 여보가 애들 아침만 좀 해 줘”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자”


아내는 콩나물국을 끓이기 위해 육수를 내고 콩나물을 씻던 중이었다. 삶은 감자를 으깨 놓은 것도 보였다. 감자 샐러드도 만들고 있었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고 내가 이어서 아침 준비를 했다. 콩나물국은 육수에 콩나물이랑 파 넣고 끓이라고 하길래 그대로 했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긴 했는데 뭔가 아쉬운 맛이었다. 냄비에 삶은 달걀도 담겨 있었다. 삶은 달걀을 넣은 콩나물국을 먹어본 적은 없으니, 감자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걀을 넣고 감자와 함께 사정없이 으깼다. 뭔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소금만 더 쳐서 마무리했다.


애들 아침을 차려 주고 나니 나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어제부터 이어진 두통의 여파인지 엄청 피곤했다. 만약에 연차가 아니고 이 상태로 출근했으면 어떻게 일했을까 싶을 정도로, 눈이 안 떠졌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바닥에 내려와서 자기랑 놀면 안 울고,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다른 걸 하면 울었다. 자기랑 놀던가 자기에게 관심을 주라는 뜻이었다. 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누웠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뇌가 그렇게 시켰다.


“아빠. 휴지 좀 주세여”

“아빠. 목 말라여”

“아빠. 이것 좀 닦아주세여”

“아빠. 서윤이 어떡해여. 서윤이 좀 데려가 주세여”


어느 것 하나 부당한 요구가 아니었지만, 굉장히 힘들었다. 누우면 일으키고, 누우면 일으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놀았다. 서윤이가 울면 막 가서 달래주기도 하고. 서윤이의 방해를 피해 식탁으로 피신을 한 상황에서도, 내가 가서 서윤이 좀 놀아주라고 하면 기꺼이 내려갔다. 서윤이는 아빠가 놀아주면 울었지만, 언니와 오빠가 놀아주면 뚝 그쳤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의 구원이었기에, 자꾸 소윤이와 시윤이를 찾았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이 좀”


무한정 그럴 수는 없으니 결국 서윤이는 나에게 안기기도 했다가 다시 바닥에 내려가기도 했다가 언니, 오빠가 앉은 의자에 매달려 울기도 했다가 그랬다. 난 여전히 두통과 극도의 졸음에 시달렸고. 연차라고 신난 게 민망하게, 지치고 예민해졌다.


밤새 잠을 설친 아내는 꽤 한참 자고 나왔다. 나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아내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을 걸었지만 본의 아니게 퉁명스러운 반응이 튀어나갔다. 아내를 향한 악심은 조금도 없었다. 그냥 내 상태가 그랬던 건데, 충분히 오해를 살 만도 했다. 기분이 상한 듯 보인 아내는 싱크대에 서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집에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그 기운의 90% 이상은 내가 만들어 냈다. 두통, 졸림, 예민을 재료로. 그래도 나름 할 일(이를테면 점심 준비, 설거지 등)은 하려고 했다.


밤 사이 눈이 좀 내렸다. 전혀 쌓이지는 않았고 미처 덜 녹은 눈이 군데군데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지만, 그 정도로 쌓인 건 아니었다. 해도 쨍쩅했고. 날씨는 엄청 추웠다. 코로나의 기세는 날로 커지고.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한 10시간 동안 히터를 켜 놓은 사무실처럼, 갑갑한 공기와 함께.


오후에는 아예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기대고 좀 눈을 붙였다. 같은 시각, 아내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그 시간 이후로 무거운 공기를 조금씩 걷어냈다. 정신을 차릴수록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연차라고 집에 들어앉아가지고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던 게.


“이따 장이라도 보러 갔다 올까?”

“그럴까?”


추운 줄은 알았지만,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추웠다. 눈이 잔뜩 쌓였어도 못 나왔을 날씨였다. 그래도 상쾌하긴 했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얼음 같은 공기의 온도가 반가웠다. 똑같이 차가운 공기였는데 그전까지 내가 집에서 발산하던 것하고는 질이 달랐다.


자연드림에 가서 장을 보고 커피를 한 잔씩 사서 마셨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쁨을 위한 웨하스도 하나 사고. 저녁은 깜빠쓰와 파스타였다. 역시, 내가 만들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한 팩 가득 담긴 새우의 등과 배에 숨어있는 내장을 일일이 이쑤시개로 따면서.


“여보. 이 작업이 맛에 큰 영향을 주는 거 맞지?”

“그렇지. 그거 안 하면, 뭐랄까 약간 흙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다행이었다. 세상 무의미한 것 같은 이쑤시개질이 식감의 진일보를 유도한다니. 그 덕분이었을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


“아빠. 너무 맛있어여.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을 지경이에여”

“아빠아. 딘따 맛있더여어”

“여보. 진짜 맛있네”


일명 ‘사죄의 깜빠스’, ‘사죄의 파스타’라고.


애들을 다 재우고 거실에서 아내와 만나니 허무했다. 정말 ‘한 것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올해의 마지막 연차였는데. 다소 후회롭게 끝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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