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매의 12월 현황

20.12.15(화)

by 어깨아빠

하루가 지나니 더 미안했다. 쉬는 날 온 가족을 무거운 분위기에서 지내도록 한 게. 출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역시, 사람은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시윤이는 요즘 새로운 장기 하나를 발견했다. 다리 찢기. 어쩌다 발견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무튼 엄청 유연하다. 앉아서 일자로 다리를 찢는 건 물론이고 그 상태에서 상체를 바닥에 딱 붙이는 것도 된다. 어리면 다 되나 싶어서 소윤이한테 시켜봤는데, 소윤이는 안 된다. 시윤이의 타고난 유연함이다. 온 가족의 시선과 박수를 받은 시윤이는 신나서 더 많이 찢었다.


소윤이는 매일 편지를 써 준다. 내가 퇴근하기 전에 내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직접 갖다 준다. 원래 아내에게는 엄청 자주 썼고, 나에게는 짜장면에 단무지 느낌으로 써 주다가 요 며칠 조금 더 마음을 내서 써 준다. 별 내용은 없다. ‘아빠 사랑해여. 고마워요’ 거기에 그림 조금. 옆집 아저씨가 받으면 큰 내용 없는 편지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선물이다. ‘이야. 이때 아빠가 소윤이 너를 이렇게 키웠네’라고 거들먹거릴 때, ‘아빠. 그때 나도 아빠한테 이렇게 힘을 줬다구요. 이 편지들 좀 봐요’라면서 받아칠 가치가 충분한 편지다. 차곡차곡 잘 모아두고 있다.


서윤이는 ‘엄머어’에 이어 ‘아빠바바바’도 내뱉었다. 엄마는 진짜 찾으며 부르는 느낌이고, 아빠는 어쩌다 입술이 그렇게 움직인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나에게 안겨 있는 자세가 훨씬 ‘아빠친화적’인 느낌이다. 물론 졸리고 배고플 때는 여전히 한쪽 팔로 나의 쇄골을 밀며 엄마가 있는 쪽으로 몸을 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가끔은 기분이 안 좋을 때라도 나에게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것 또한 큰 기쁨이다. 서윤이가 막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소윤이 때도 비슷했다. 시윤이 때도 비슷했겠지만 그때는 오히려 그게 고마웠…


오늘도 저녁 먹을 때 서윤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먼저 먹고 일어나서 안았다가 애들 씻을 때까지 계속 안아줬다. 너무 신기하게도 서윤이는 시윤이와 비슷하게 머리카락 애착이 있는 듯하다. 아내에게 안겨 있으면 무조건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그냥 잡히니까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애써 머리카락에 손을 뻗는다. 나에게 안겨 있어도 마찬가지다. 아내처럼 머리가 길지 않으니 잡아당기지는 못하는데, 그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면서 머리카락의 감촉을 느낀다. 시윤이도 그랬다. 어쩌면 그 덕분에 나에게 안겨 있는 시간이 길어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얻는 게 있다. 서윤이한테 딱 붙어서 목덜미에서 풍기는 서윤이의 냄새를 맡으며 안을 수 있다.


다 잘 크고 있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능력껏 엄마와 아빠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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