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4(목)
누구나 느끼겠지만, 살면서 이렇게 성탄 분위기가 안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는 처음이다. 매년 이런 느낌이긴 했지만, 올해는 가히 압도적으로 그렇다. 장모님이 주신 아주 간단한 성탄 장식과 언젠가 쓰고 아무렇게나 넣어 놨던 싸구려 전구 장식, 일부러 트는 성탄 찬양이 그나마 분위기를 냈다.
교회에도 가지 못하니 소윤이와 시윤이의 부서 선생님과 목사님이 성탄 선물을 주고 가셨다. 과자 꾸러미와 스티커북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기가 받은 선물을 보여 주려고 난리가 났다. 둘 다 똑같은 걸 받았지만, 나중에 자랑한 이의 것을 봤을 때도 처음 본 것처럼 반응했다. 그래야 한다.
목사님이 산타 분장을 하고 오셨는데, 두 분이 가시고 나서 시윤이는 아내에게
“엄마! 저 짠타 할아버지 진따로 있는지 몰랐더여어”
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소윤이는 진짜가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동심이 동심을 파괴하는 현장이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 거 다 가짜라고 애써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선행 마일리지를 쌓아야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선전 활동도 하지 않았다. 소윤이의 동심이 사라졌다기보다 산타의 환상을 가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내와 나의 의도대로.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스타필드에 가도 될까’라고 물어보더니 오늘도 물어봤다. 어제 이유를 물어봤을 때는 ‘쇼핑이 하고 싶다’라고 했다. 아무래도 시국이 흉흉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니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오늘 또 말하길래, 이유를 다시 물어봤더니 역시나 목적이 따로 있었다. 아내는 서윤이 모자를 사 주고 싶었고, 원하는 브랜드도 따로 있었고, 스타필드에 그 매장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성탄 선물도 약소하게나마 주려고 했기 때문에, 그 선물도 사기는 해야 했다. 물론 아내는 서윤이 모자 파는 매장만 가면 된다고 했다.
만약 가게 되면 모두의 마스크를 전부 새 걸로 교체하고 가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역이었다. 아내는 낮에 혼자 애들을 데리고 다녀오거나 내가 퇴근하고 함께 가는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결국 후자로 결정했고, 아내와 아이들하고 스타필드에서 만났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었다. 간 김에 간단하게 장을 보고 바로 서윤이 모자를 사러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옷도 많이 산 곳이었다. 사 주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시윤이에게 잘 어울리는 코트, 소윤이에게 잘 어울리는 원피스, 아기빨(?)로 뭐든 어울릴 것 같은 서윤이의 옷. 다 사 주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열심히 대 보기만 했다. 그래도 하나씩은 사 줬다. 성탄 선물로.
일을 마쳤으니 부지런히 돌아와야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아쉬워했다. 1층 로비에 마련된 레고 전시장에 가서 잠깐(한 3분) 구경하고, 지하에 있는 어묵 매장에 가서 어묵을 샀다.
“소윤아, 시윤아. 먹는 건 차에 가서 먹자. 알았지?”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니 막막했다. 스타필드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먹고 가려고 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귀찮고 번거로웠다. 주차하고, 애들 내려야 하고, 또다시 타야 하고. 무엇보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게 영 찜찜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샀다. 차가 두 대였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집에 들어가고, 내가 식당에 들러서 찾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그 짧은 틈에 애들을 씻겼다.
“여보. 애들은 이제 밥 먹고 양치만 하고 자면 돼요”
어찌나 반가운 소식이던지.
애들 재우고 애들 선물 포장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애들하고 같이 잠들었다. 한참 있다가 잠깐 깨기는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때 뭘 하기에는 무리였다. 선물 포장은커녕 설거지 거리, 널브러진 옷도 그대로였다.
괜찮다. 내일은 성탄이니까. 설령 아내가 그 모든 일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있으니까 괜찮다. 성탄을 기념하는 축하나 선물 증정도 모두 내일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