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금)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 거다. 내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성탄절에 교회를 가지 않았던 적은 없을 거다. 굉장히 어색했다. 성탄절에 교회를 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니. 그래도 이것도 나름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소윤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스스로 성경책을 펼쳤고, 시윤이를 옆에 앉혔다. 소윤이가 한 구절 한 구절 읽어주면 시윤이가 따라 읽었다. 둘 다 얼마나 자기 의지가 반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아직은 엄마, 아빠의 가르침에 ‘억지로’ 따르는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래도 기특했다. 시윤이를 옆에 앉혀서 나름 열심히 먼저 난 자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소윤이도, 누나 옆에 앉아서 고분고분 따라 읽는 시윤이도.
성경을 다 읽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오늘 목사님께서 해 주실 말씀의 본문을 미리 읽어주고, 간단히 내용을 요약해서 말해줬다. 비록 집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더 집중하고 마음을 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갈 준비하느라 바쁘게 시간에 쫓길 때는 가지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시윤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실망했다. 요즘 소윤이가 편지를 참 많이 써 주는데 엊그저께는 아내가 소윤이에게 정성스럽게 답장을 써 줬다. 물론 아내와 나는 예상을 했다. 시윤이가 서운해할 거라는걸. 아내는 시윤이에게도 답장을 쓰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저께도 못 썼고 어제도 못 썼다. 물론 아내도 서윤이 재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시윤이가 그런 속 사정까지 헤아리는 건 어려웠다. 다행히 시윤이는
“괜찮아여. 그 정도로 속상하지는 않아여”
라고 얘기하기는 했다. 실제로도 그래 보였고. 그래도 미안한 일이었다. 아내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써 놓고 자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주일 예배는 이제 조금 익숙해졌는데, 역시나 성탄 예배를 집에서 드리는 건 뭔가 어색하긴 했다. 어찌 됐든 성탄 예배를 잘 드리고 나서 잠시 다 함께 밖에 나갔다 왔다. 잠시라고 하기에는 꽤 오랜 시간을 밖에 있었구나.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기분 좋게 잘 하고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해 줬다. 나름 뿌듯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먹고 싶은 거 없어? 저녁에?”
“어, 없어여”
“그래?”
“아, 생각 났어여. 있어여”
“뭐?”
“월남쌈이여. 월남쌈”
원래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회를 먹고, 애들은 회를 못 먹으니 다른 걸 사 주려고 했던 건데 소윤이가 월남쌈을 말하는 바람에 모두 월남쌈을 먹게 됐다. 아내 생일에 갔던 식당에 전화를 해서 포장 주문을 했다. 여러 가지 쌈 재료에 야채, 고기, 쌀국수까지. 풍성하게 한 상을 차렸는데 뭔가 허전했다.
“어? 여보? 라이스페이퍼를 빠뜨리셨나 본데?”
“아 진짜?”
난감했다. 고작 그거 하나 받으러 가기도 그렇고. 그래도 알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로 말씀드렸더니 그것만 갖다 준다고 하셨다. 그건 또 너무 미안한 일이니 그냥 집에 남아 있던 라이스페이퍼로 먹겠다고 했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게 있기는 했다. 엄청 조금도 아니고 아주 많이도 아닌, 아주 애매한 양이었다. 일단 내가 싸 먹기 시작하면 모자라는 건 분명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월남쌈, 난 월남그릇을 먹었다. 쌈 싸 먹을 재료를 그릇에 담아 놓고 라이스페이퍼 없이 와구와구 먹었다. 그래도 바빴다.
“아빠. 저 그거 주세여”
“어, 그래그래. 알았어, 잠깐만”
“아빠아. 더두여어”
“어, 알았어. 잠깐만”
“여보. 나도 라이스페이퍼 좀 주세요”
“어, 알았어. 줄게”
아내는 서윤이를 챙겼고, 난 아내와 소윤이와 시윤이를 챙겼다. 지난번에 식당에 가서 먹었을 때도 거의 전쟁처럼 먹었는데,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그래서 월남쌈이구나. 월남 전쟁통에서 먹는 것처럼 먹으라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엄청 잘 먹었다. 사실 고기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싸 먹을 게 야채류 뿐이었는데도 어찌나 야무지게 싸서 맛있게 먹는지.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알차게 끝까지 먹었다.
다소 정신은 없었지만 맛있게 식사를 마쳤고, 케이크에 촛불도 켜고 성탄 축하 노래도 불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성탄 선물도 줬다.
“성탄절 좋다? 그치?”
소윤이와 시윤이는 잔뜩 신나서 잠들었다. 시윤이는 자려고 누워서 아내에게
“엄마아. 내일은 편지 꼭 써두세여어”
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내색은 안 해도 얼마나 서운했을까. 아내는 혹시라도 자기가 잊으면 꼭 얘기해 주라고 나에게 당부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오자마자 시윤이에게 편지를 썼다. 예쁜 무지개도 그려서 꾸며 주고. 아직 까막눈(?)인 시윤이는 직접 읽지 못하고, 누나에게 부탁해야 하겠지만.
편지를 다 쓰고 나서는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봤다. 요즘 서윤이는 수면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얼마 전 열감기를 앓고 난 뒤부터 바뀌었다. 일단 첫 잠에 들고난 뒤, 처음 깰 때까지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전에는 8시에서 9시 사이에 잠들면, 12시에서 1시가 될 때까지 거의 2시간에 한 번씩 깼고, 심할 때는 1시간에 한 번씩 깼다. 요즘은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가도 깨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아침(5시에서 6시 사이)까지 딱 한 번 깨는 날도 있다. 많은 임상 자료가 쌓인 건 아니지만 흐름이 바뀐 건 분명하다.
또 하나의 변화는 자기 전에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누워있는 아내를 타고 오르고, 자려고 누운 언니, 오빠에게 가서 장난을 친다. 덕분에 첫 밤잠 재우는 시간이 다소 길어졌다. 그래도 이게 낫다. 어쨌든 덜 깨고 오래 자는 게 더 좋으니.
오늘도 서윤이는
“쟤 뭐지? 오늘도 안 깨나?”
소리가 나올 정도로 깊이, 오래 잤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아이들 없이, 성탄의 밤을 만끽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