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지만 그리운

20.12.27(주일)

by 어깨아빠

나만 늦게 일어났다. 실컷 자고 일어나 보니 방에 나 혼자였다. 시간은 9시 50분이었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헐레벌떡 거실로 뛰어나갔다(세 발이면 도달하는 거리지만, 마음이 그랬다는 얘기다). 아내는 거실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다. 애들 성화에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어떻게든 수면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미안하지만 오늘은 밥을 진짜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시간이 없어. 오늘은 엄마, 아빠가 늦게 일어나서 그래. 미안”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불평과 불만 없이, 맛있고 빠르게 아침을 먹어줬다. 아침 먹자마자 곧바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이제 서윤이는 웬만한 의자 정도 높이에 있는 건 손이 닿는다. 잡고 서는 게 가능해지면서 손의 사정거리가 대폭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탁 의자에 노트북을 놓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 그게 불가능해졌다. 서윤이의 사정거리 안이다. 식탁 위로 노트북의 위치를 바꿨다.


코로나는 많은 걸 바꿔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라인 성탄 예배를 드린 것처럼. 다음 주 송구영신 예배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드리게 될 거다. 원래 성탄절에는 애들을 위한 초콜렛과 사탕 꾸러미, 송구영신 예배 때는 달력과 말씀 카드 같은 걸 받는다. 올해는 그게 불가능하니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이른바 ‘드라이브 스루’.


온라인 예배를 드린 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갔다. 교회 정문에 차를 대고 창문만 내려서 목사님과 장로님이 건네주시는 성탄 선물과 달력, 말씀 카드, 여러 책자를 받았다.


“소윤아, 시윤아. 너희도 인사드려야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뒷좌석에 앉은 채로, 창 너머의 목사님과 장로님, 사모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정말 기억에 남을 2020년이다. 기억에 남을 해가 되어야 한다. 고작 시작인, 아무것도 아니었던 해가 되면 안 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께서


“사탕과 초콜렛도 나눠 줄 거에요”


라고 말씀하신 것에 기대감이 잔뜩이었다. 조그마한 종이 가방 안에 젤리와 사탕, 초콜렛 등이 담겨 있었다. 애석하게도 21세기에 걸맞은 구성은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 먹어 봤던 설탕 가루가 묻어 있고 이에 잘 붙는 과일 맛 젤리, 문방구에서 뽑기 해서 꽝을 뽑으면 받았던 것 같은 사탕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초콜렛이 가장 현대적이었는데, 몇 개 없었다. 하긴 뭐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기분만 내면 될 일이었다.


“엄마아 아빠아. 또 여기 근쩌에 있는 까뻬 갈 꺼져어어”


시윤이의 장난기 가득한 외침처럼,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샀다. 커피가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졌음에도 무척 피곤했다. 집에 오니 나른한 오후였고, 피곤은 농익었다. 잠깐씩 앉아서, 누워서 졸기도 했다. 자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내도 방에 들어가서 한숨 자라고 했지만 사양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이미 아주 살짝 두통이 느껴지기도 했고. 애써 자지 않고 버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레고도 하면서 놀았다. 드문드문 나에게 책도 읽어 달라고 했고. 평일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몸으로 놀아 달라고 막 매달리는데 오히려 주말은 덜하다. 덕분에 서윤이를 실컷 봤다. 서윤이는 오늘 거의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다. 배고프고 졸려서 자기 의사 표현을 할 때 말고는, 우는소리를 못 들었다. 유독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한 명은 자기를 향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소외될 틈이 없었다. 내일 출근하면 느껴질 ‘그리움과 보고 싶음’이 벌써 걱정이 될 정도로, 나를 녹였다.


밤에는 잠깐 나갔다 왔다. 내가 너무 답답해서. 애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생각보다 날도 따뜻했다. 아무런 목적은 없었고 그저 바람 쐬며 걷기 위해서, 잠시라도 집에서 나가기 위해서.


“아빠. 킥보드 타고 가도 돼여?”

“어, 그래”


킥보드도 얼마 만에 타는 건지. 마침 서윤이는 졸렸는지 아기띠로 안고 나갈 준비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잠들었다. 그대로 유모차에 눕혔다. 서윤이도 얼마 만에 유모차를 타는 건지.


정말 정처 없이 슬렁슬렁 걸었다. 새로 생긴 수산물 가게에 들러 저녁에 먹을 오징어도 사고, 아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아내가 저녁에 먹, 아니 오징어 샀는데. 아무튼 언제 먹을지 모르지만 아내가 먹을 샌드위치도 사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랜만의 킥보드에 잔뜩 신이 났다. 인도에서 타는 거고 차도를 건너야 할 때도 많아서 마음껏 달라지는 못했지만, 탄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했다.


그러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상가 앞 넓은 광장에 진입할 때였다. 약간의 경사가 있어서 아이들의 속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구간이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아유 위험하다 쟤네”

“그러게. 신났네”


아내와 내가 그 대화를 나누는 순간, 저 멀리서 시윤이가 꼬꾸라졌다. 엄청 과격하게 넘어지지는 않았는데, 뭔가 몸이 활처럼 유연하게 휘어지면서 넘어졌다. 난 서윤이를 안고 있어서 아내가 급히 뛰어갔다. 시윤이는 매우 크게 울었다. 나도 뒤늦게 가서 보니 이마에 아주 크게 혹이 부풀어 올랐다. 혹이라는 게 대부분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걱정이 될 만큼 갑자기, 크게 부었다. 대신 가라앉는 것도 빨랐다. 잘 때쯤 되니 살짝 부은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서 데친 오징어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연휴가 길고 어디 나가지를 못하니 밥 먹이는 게 보통 머리를 써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뭐 엄청 신경 써서 잘 먹이는 것도 아닌데.


저녁도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 샤워도 하고, 자기 전에 책도 읽었다. 평소보다 하루 더 길었던 주말이었지만, 무척 긴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애들 얼굴이 아른거린다. 아른거릴 틈이 없는 나의 동반자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피곤하긴 엄청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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