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8(월)
아내가 지난 성탄절 일기의 일부분을 캡처해서 보냈다. 이 부분이었다.
[소윤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스스로 성경책을 펼쳤고, 시윤이를 옆에 앉혔다. 소윤이가 한 구절 한 구절 읽어주면 시윤이가 따라 읽었다. 둘 다 얼마나 자기 의지가 반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아직은 엄마, 아빠의 가르침에 ‘억지로’ 따르는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래도 기특했다. 시윤이를 옆에 앉혀서 나름 열심히 먼저 난 자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소윤이도, 누나 옆에 앉아서 고분고분 따라 읽는 시윤이도.]
이어서 이런 카톡을 보냈다.
“너무 현실과 다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전쟁이네. 정말 그냥 시윤이는 읽지 말라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
일기가 현실과 다르게 포장됐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내의 오늘, 현실이 그날과 너무 다르다는 뜻이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애들은, 내가 함께 있을 때 말을 더 잘 듣는다고 했다. 내가 더 무서운가 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육아는 멀리서 보면 전문가 가까이서 보면 일반인이다. 다른 이의 육아에 관해 위로하고 조언할 때는 물론이고, 내 배우자의 육아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제3자가 되면 오은영 박사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객관적이며 이성적이지만,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감정의 노예가 되어 화르르 타오른다. 그러니 섣부른 조언과 판단은 금물이고. 나라고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1시간쯤 뒤에는 서윤이 사진이 도착했다. 빨대컵을 쪽쪽 빨고 있는 사진이었다. 며칠 전부터 빨대컵을 줬는데 잘 못 빨다가 오늘 처음으로 빨았나 보다. 곧바로 동영상도 왔다. 서윤이의 새로운 개인기(?)를 몇 번이나 돌려 봤다.
또 잠시 후에는 점심 먹는 애들 사진. 토마토와 시금치를 넣은 ‘홈메이드 건강 파스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토마토도 시금치도 잘 먹는 건강한 입맛이다.
쉴 틈 없이 애들 밥 챙기고 집안일하며 간간이 소식도 전해주는 아내는 정작 잘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늘 답은 비슷했다.
“그냥 뭐. 잘 지내”
아내는 지난 연휴 기간이 마치 꿈을 꾼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만난 아내는 역시나 매우 지쳐 있었다. 버거운 팔놀림으로 볶음밥을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서윤이는 아내 뒤에서 싱크대 서랍을 잡고 서서 놀고 있었고.
“서윤아. 아빠. 이리 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팔을 뻗어 보지만 한 번도 없었다. 서윤이가 나에게 와서 완전히 안긴 적은. 맙소사. 오늘은 이게 웬 횡재인지. 한 팔을 떼서 내 쪽으로 뻗길래 겨드랑이를 받쳐 주니 나머지 한쪽 팔도 떼어서 완전히 내게 방향을 틀었다. 269일 만에 서윤이가 나에게 왔다. 서윤이는 저녁 시간 내내 나에게 착 붙어 있었다. 물론 중요한 순간이나 엄마의 부재 시에는 엄마를 찾았지만, 그래도 한결 나를 더 친밀하게 받아주는 느낌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내내 무엇을 했는지, 뭘 배우고 뭘 썼고 뭘 만들었는지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애들 말만 들었으면, 따뜻하게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 앉아 평화롭게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했을 거다. 엄마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뜨겁게 반응했다. 감탄사를 마구마구 섞어가며. 퇴근한 아빠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역할까지 하는 건, 부작용이 더 많다.
애들을 재운 아내는 사진을 정리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외장 하드에 옮기는 작업이었는데, 아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차분히 중복된 사진이 있는지 확인까지 해가며 날짜별로 정리했다. 난 못할, 아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옛날 고리짝 사진이 막 나왔다. 다 그리웠지만 아내와 내가 연애하던 시절, 신혼시절의 사진들이 유독 재밌었다. 얼굴뼈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이던 시절의 나, 지금처럼 예뻤던 사시사철 변함없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데, ‘시간이 참 빠르구나’하는 아저씨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소윤이 때는 처음이라 몰랐고, 시윤이 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는데 서윤이는 너무 아깝다. 크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