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9(화)
“예나 지금이나 사랑스러운 가영, 잘 지내고 있나요?”
“고군분투중이요”
“오늘도 분노유발인가요?”
“아침에 기도를 많이 하고 시작해서 그런지 아직 참을 만하네. 서윤이의 인내심이 굉장히 짦음”
아내의 고군분투기는 사진을 통해 수시로 확인했다. 밥 먹는 사진, 아내에게 업혀 있는 서윤이 사진, 그림 그리는 사진. 아내는 ‘힘겹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하루를 갈음했다. 그래도 아내의 의지가 느껴졌다. 힘들지만 소중한 순간을 잘 살아내고, 기억하려는 의지가.
퇴근하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종일 그리고 쓴 편지를 잔뜩 보여준다. 매일 조금씩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 그림과 편지에 담긴 각자 나름의 생각과 구상도 참 소중하고. 자랑하듯 내미는 그림과 편지를 본 나의 반응은, 가짜가 아니다. 진심이다. 오히려 그 순간의 느낌을 온전히 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매일 엄마, 아빠, 두 동생에게 사랑의 편지와 그림을 띄우는 소윤이. 조금씩 그릴 줄 아는 게 생기고 있는 시윤이. 아내와 나는 두 녀석을 재우고 나서도 둘의 작품을 다시 살펴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서툰 솜씨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금방 사라질 서툶이라는 걸 아니까 애틋하기도 하고. 차곡차곡 잘 모아두고 있다. 내가 남기는 일기만큼이나 소중한 재산이다.
서윤이는 오늘도 나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퇴근했을 때는 아내에게 업혀서 자고 있었다. 저녁 먹을 때도 아내가 업고 있다가, 깨우려고 일부러 내렸다. 아내 무릎에 앉아서 잠시 기분을 추스를 시간을 줬다. 앞에서 재롱을 떨었더니 웃길래 두 팔을 뻗으며 얘기했다.
“서윤아. 아빠한테 올래? 안아줄까?”
놀랍게도 서윤이가 웃으면서 자기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이것 또한 처음이었다. 아내에게 안겨 있던 서윤이가 나에게 오다니. 아내를 버리고 나를 선택하다니. 물론 안긴 지 1분 만에 다시 아내를 갈구하며 칭얼대긴 했다. 그래도. 감지덕지다. 바닥에 내려가서 놀다가도 갑자기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더니 내 허벅지 위에 얼굴을 파묻고 비볐다.
아빠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 막내 서윤이는, 오늘도 마지막 수유 후에 자지 않았다. 자꾸 웃으면서 장난치고 언니, 오빠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아내는 서윤이를 두고 방에서 나오는 전략을 쓴다. 너무 오른 서윤이의 흥을 강제로 낮추기 위한 방편이랄까.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10분 정도 지나면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때 들어가서 눕히고 토닥이면 그제서야 잠이 든다.
소윤이도 딱 이맘때 그랬다. 일부러 울려서 재우고. 난 거실에서 아내 기다리다가 잠들고. 시윤이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막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안 자는 거야 왜’ 이러면서 몰래(누구 몰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엉덩이도 팡팡 때렸다. 서윤이는 여러모로 수혜자다. 같은 상황인데 제일 넉넉한 엄마, 아빠를 만났으니까.
아무튼 바쁘다. 아내는 애 셋과 하루 종일 치열하게 사느라, 나는 때가 지나면 보지 못할 지금의 모습을, 빠르게 크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