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0(수)
지난 주일, 킥보드 타다 바닥에 꼬꾸라져서 부어오른 시윤이의 이마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멍이 들었다. 처음에는 부어오른 부위가 시퍼렇더니 그 멍이 점점 내려와서, 이제 코와 눈 사이가 파래졌다.
아내는 여느 날처럼 하루의 여정을 사진을 통해 알렸다. 서윤이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자지 않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첫 낮잠을 잤다. 그 틈을 이용해 소윤이와 시윤이는 점심으로 계란 카레를 먹었다. 늦은 오후에는 단호박찜(사진으로는 뭐가 들어갔는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치즈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들어갔을 거다.)을 간식으로 먹었다. 책 읽는 오빠(까막눈이지만 내용은 대충 아니까) 옆에 서서 참견하는 서윤이 사진, 성탄절에 받은 트리 그림에 스티커 붙이는 오빠 옆에 서서 참견하는 서윤이 사진도 받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물감을 가지고 데칼코마니 한 사진도 있었고. 애들 옆에 가만히 앉아서 그저 시선을 거두지 않고 '보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많은 걸 해 먹이고, 해 주려면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참 신기하게도 육아에 집중하고 매진할수록 집안일은 더 빠르게 쌓여가니까.
"놀고 싶다"
"여보. 나도"
"여행 가고 싶어"
"나도 여행"
애들과 함께라면 어디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고 애들을 떼어 놓을 수 있다면 아내랑 둘이 나가서 놀고 싶었다. 뭘 하든. 물론 상상 속에서, 아내와 나의 대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날씨가 무척 추웠다. 출근할 때도 느꼈고,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와, 여보 엄청 춥다. 엄청"
"그래?"
아내는 오늘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고 있었다. 순간 실수를 한 건가 싶었다. 하루 종일 바깥공기 한 번 제대로 맡아 보지 못한 아내에게 춥다고 엄살을 떠는 나의 모습이 영 보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내가 그런 내색을 한 건 전혀 아니었고, 만에 하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저녁상은 단출했지만 영양 만점이었고 맛있었다. 아내는 장을 보지 못해 먹을 게 없다며 늘 뭔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처럼 얘기하지만, 아내가 자책하는 것보다 우리의 저녁 식탁은 다채롭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만들 수밖에 없는 음식을 회사 동료들과 먹으니, 나에게 남은 건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저녁 한 끼다. 반찬이 좀 없고 조촐한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보. 커피 사다 줄까?"
어제도, 그저께도 물어봤는데 주변 카페가 다 문을 닫은 뒤에 물어봤다. 요즘은 다들 일찍 문을 닫는다. 오늘은 일부러 문 닫기 전에, 저녁을 먹으면서 물어봤다.
"커피? 좋지"
아주 맛있지만 조금 더 먼 카페와 그냥 그렇지만 가까운 카페가 있었다. 아내에게 선택권을 넘겼고 아내는 가까운 곳을 택했다. 커피도 좋지만 이른 퇴근은 더 좋으니까.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듣던 소윤이가 끼어들었다.
"아빠.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여?"
애들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으니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그래 봐야 차에만 앉아 있다 오겠지만 문 열고 밖에 나가는 느낌이라도 느끼라고.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 겉옷을 입혔다.
"여보. 그럼 라본느도 부탁해"
소윤이와 시윤이는 카페에서는 잠깐 내렸고, 빵집(라본느)에서는 내리지 않고 차에서 찬양을 들었다.
"아빠. 무슨 빵 샀어여?"
"엄마가 드실 거"
"무슨 빵이여?"
"어제 먹었던 거. 라즈베리 바게트"
"우리도 먹고 있어여"
"글쎄. 엄마가 남겨주시면 내일 먹을 수 있겠지? 이건 엄마 거야. 대신 너희는 이거 쿠키 하나씩 나눠 먹어. 내일"
시윤이 손바닥만 한 쿠키 두 개였다.
아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내는 라즈베리 바게트를 남김없이 먹었다. 소윤이가 먹고 싶어 했다는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아내가 다 먹고 나서 얘기했다.
"여보. 나 이거 다 먹었네. 대박"
"그러게. 아까 소윤이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엄마가 남겨 주시면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 미리 말하지. 미안하네"
"뭘 미안해. 그건 여보 건데. 애들은 쿠키 줘"
여보는 애들 열심히 챙겨. 난 여보 열심히 챙겨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