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1(목)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퇴근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비밀번호 여덟 자리를 누르는 동안 문 너머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가 와 있었다.
“어, 여보?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 숙모랑 노느라 큰 반응이 없었고, 아내가 가장 기뻐했다. 아, 서윤이도. 아내는 고작 2시간 빠른 만남에도 ‘너무 좋다’는 말을 연발하며 좋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숙모와 삼촌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고,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놀았다.
비록 교회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야 하니 저녁은 각자 집에서 먹을 계획이었다. 아니, 계획이 아니라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소윤이가 갑자기 (하긴 이것도 갑자기가 아니라 으레 거치는 과정이긴 하다) 숙모, 삼촌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고 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라며 큰 호응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그렇다. 서로에게 결정의 열쇠를 넘기며 ‘그래 뭐 이래도 저래도 괜찮아’의 기류가 형성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그렇게 하자고 난리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바람대로 저녁은 같이 먹기로 했다. 원래 우리 집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형님네 집(차로 10분 거리)에서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같이 저녁 먹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삼촌, 숙모 집에도 간다고 하니 아주 난리가 났다.
우리 집에서의 만남이 1차였다면 형님네 집에서의 만남이 2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오는 그 순간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을 들고 들어가는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처럼, 시간을 쫙쫙 짜서 알차게 썼다. 마른 수건도 비틀면 물이 떨어지고, 지친 삼촌과 숙모도 비틀면 놀 수 있다는 심정이었달까.
꽤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왔다. 원래 애들을 재웠다가 예배 시간에 맞춰 다시 깨우려고 했었는데, 그게 안 될 거 같았다. 소윤이는 자기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잠들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시간이었다. 교회에 가는 거였으면 가면서 강제로라도 깼을 테지만. 시윤이는 아예
“아빠아. 저는 그냥 잘래여어”
라고 했고.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니 아내와 나에게도 피곤이 몰려왔다. 아, 서윤이는 안 잤다.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서 또 기분이 좋았다. 그냥 거실에 두고 같이 놀다가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안 자길래, 아내가 아기띠를 하고 밖에 나갔다 왔다. 아, 물론 서윤이를 재우려고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아내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쌩쌩하던 서윤이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동안 잠들었다. 그대로 서윤이를 눕히고 아내와 나, 둘이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올해를 마치고, 새해를 맞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작년 마지막 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일단 작년에는 없던(뱃속에 있던) 서윤이가 등장했고, 백수였던 나도 일을 하고 있고, 모든 이가 온전하던 소윤이도 이가 하나 없고(자라고 있고), 완전한 까막눈이던 시윤이도 한글과 숫자를 알게 되었고.
유독 감사한 일이 많은 한 해였다. 이걸 우리 아이들도 알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