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18.11.17(토)

by 어깨아빠

아침부터 바빴다. 홈스쿨 부모교육을 오늘 오전에 하기로 했다. 혹시나 늦게 일어날까 봐 느지막한 시간에 알람을 두어 개 맞춰 놨는데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 진작에 일어난 소윤이, 시윤이랑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아빠. 왜 지금 알람이 울려여?"

"어. 그냥. 혹시나 해서"

"뭐라구여?"

"아니야"


아빠의 헛된 기대의 흔적이랄까.


분주하게 움직였음에도 시간이 촉박했다. 내가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나가서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주먹밥을 샀다. 아내가 준비를 마친 뒤 차를 가지고 나와서 우리를 태웠다. 시안이네 집까지는 차로 1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그 사이에 시윤이가 잠들었다. 아내는 평소에는 시안이네 집에 도착하면 거의 깬다고 얘기했다. 웬일인지 오늘은 도착해서 방에 눕혔는데도 계속 잤다. 덕분에 조금은 더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집을 벗어나면 조금 증가하는 소윤이의 뺀질거림을 자제시키느라 몇 번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무난한 수준이었다.


동영상 강의가 거의 끝날 즈음 시윤이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잠을 아주 잘 잤는지 활짝 웃으며 순순히 내 무릎에 앉아 남은 잠을 떨어냈다. 그러더니 곧바로 일어나서 활동 개시. 조금의 짜증이나 투정도 없었다. 다만 자꾸 다율이(시안이 동생)한테 호통치고 자기가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은 물건을 보면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기는 했다.


소윤이한테도 그렇고 시윤이한테도 그렇고 아무래도 남의 집이니까 훨씬 격식(?)을 갖춰서 모범적인 절차에 따라 훈육을 하게 되는데. 집에서 애들 혼낼 때도 남의 집에서 혼내듯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집에서는 감정의 고조에 따라 갑자기 떽 소리를 지르거나 원래 규범에 없는 윽박이나 협박이 등장하기도 하니 말이다. 엄마 아빠가 왜 그리도


"집에 가서 보자"


는 말을 많이 했는지 애 키워 보면 알 수 있다.


일찍 모였어도 어영부영 점심 먹고 그러니 낮 2시가 넘었다. 소윤이는 집에 가기 싫다며 잠깐 울었지만 아내의 10분 추가시간을 받아들였다. 원래 저녁 일정이 있었는데 취소했고 집에 가는 길에 미용실에 들렀다. 소윤이를 데리고 갔다. 소윤이는 내가 머리 자르는 동안 옆에 딱 서서 흥미롭게 지켜봤다. 방해는 전혀 하지 않고. 소윤이가 자꾸 TV에 나오는 화면이 무섭다면서 나에게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게 뭐가 무서워, 그냥 TV 화면인데"


라고 말하려다가 지난주 부모교육 때 배운 초감정에 대한 내용이 떠올라서


"그래? 무서웠어? 괜찮아. 아빠 있잖아"


라고 대답했다. 소윤이는 몇 번이나 TV가 무섭다고(진심으로) 나에게 들러붙으려고 했다. TV를 안 봐서 그런 건가. 머리 다 자른 나를 보고는 소윤이가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삼촌 같아"

"삼촌? 어떤 삼촌?"

"그냥 삼촌 같아"

"삼촌 같은 게 뭔데?"

"몰라. 삼촌 같아"


과연 삼촌 같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디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계속 집에 있었다. 집에서 소윤이랑 책도 읽고 종이접기, 자르기도 하고 인간 놀이기구도 되고 역할극도 하고. 그렇게 놀다 보니 시간이 또 훌쩍 지나긴 했다.


"여보. 어디 안 가고 이렇게 집에 있는 것도 좋네"

"그러니까"


매번 주일, 공휴일마다 어디 갈지 고민하고, 가서도 피곤함의 향연이고 그랬는데 집에서 노니까 편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잔소리할 일도 줄어서 매력이 있었다. 너무 외출 강박에 시달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 메뉴는 아내가 해 준 콩나물 밥이었다. 조금 이르게 저녁도 먹이고 양치를 제외한 나머지 절차까지 모두 끝내고 나서 잠깐 동네 마실을 다녀왔다.


"아빠. 왜 깜깜해졌는데 나가여?"

"어 그냥. 오늘 아까 잠깐 시안이네 갔다 온 거 말고는 나간 적 없잖아. 아빠도 같이 있고."

"그럼 어디 갈 거에여?"

"글쎄. 그냥 바람 쐬고 오려고. 갔다 오면 소윤이는 약 먹고 양치하고 바로 자는 거다?"


아내와 나는 커피앤수다에 가자고 미리 얘기를 끝내 놨지만 소윤이한테는 그냥 밖에 나가는 걸로만 얘기했다. 물론 이제 소윤이는 잘 설명해주면 떼를 쓰기보다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얘기해준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면 그걸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지며 떼를 썼던 모습이 아내와 나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지 아내와 나는 여전히 입조심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날이 많이 추워져서 애들한테 입힌 패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커피앤수다에 가서 뛰고 소리 지르고 아주 민폐가 제대로였지만, 다른 손님이 없었고 사장님이 모두 받아 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제법 편히 앉아 있다 올 수 있었다. 집에 와서는 약 먹이고 양치만 시키면 됐기 때문에 금방 끝내고 재울 수 있었다.


어제 아내의 패배로 무산된 영화 시청을 시행했다. [미션 임파서블:폴아웃]. 다행히 두 녀석 모두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깨지 않은 덕분에 흐름이 끊기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교훈은 주말이라고 너무 나돌아 다니지 말자. 집에 있다가 소윤이만 데리고 나갔다 오기도 하고 반대로 시윤이만 데리고 나갔다 와도 되고. 밤에는 다 같이 바람도 쐬고 이런 것도 좋네.


(아내는 얘기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심심한 거 못 견디는 사람이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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