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할 건데, 올래?

18.11.18(주일)

by 어깨아빠

새벽에 소윤이가 난리였다. 잠결에 들었는데 계속 짜증 내고 아내한테 뭐라 뭐라 얘기하고. 나도 잠을 설쳤는데 직격탄을 맞은 아내는 오죽했으랴. 지난밤의 횡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윤이는 오늘도 가장 먼저 일어나 모두를 깨우고 있었다. 아내와 시윤이는 진작에 눈을 뜨고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수면자인 나를 깨우기 위한 소윤이의 노력이 계속됐다.


"아빠. 이제 일어나여"

"아빠 일어났는데?"

"아니. 아빠 일어나서 앉아여"

"알았어 알았어"


"아빠. 왜 또 누웠어여"

"아 미안. 너무 졸려서"

"아빠. 일어나여. 내가 일으켜 줄게여"

"그래"


조금만 더 지나면 소윤이의 기분이 상할 것 같아서 부름에 응답해 몸을 일으켰다. 아내도 시윤이도 함께 나왔다. 아침 먹으면서 소윤이가 넌지시


"오늘은 새싹꿈나무 가기 싫은데"


라고 말을 했지만 흐지부지 넘겨 버렸다. 너무 세세히 응답해주기보다 어느 정도 무시해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말한 것과는 다르게 막상 교회에 도착해서 새싹꿈나무 예배실 앞에 가니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안녕을 고했다. 다른 날에 비해 1시간 정도 더 잔 탓인지 시윤이가 쌩쌩했다. 예배드리고 있는 아내와 나의 주변을 빙빙 돌며 놀았다. 맨 뒷자리라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예배 말미에는 좀 피곤해하는 눈치였지만 안아준다고 하면 싫다며 몸을 뺐다.


예배가 끝난 뒤 나는 시윤이를 안고 식당에 가서 줄을 섰고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러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함께 등장한 소윤이 표정이 영 뚱한 데다가 눈물 자국도 있었다.


"소윤이 울었대?"

"응. 울었대"

"왜?"

"몰라.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자기 잠바를 안 줬다나 뭐라나"


뚱한 기분의 소윤이도 아내한테 매달리고 멀쩡한 시윤이도 아내한테 매달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정신없는 식사시간이었다. 소윤이를 마주 앉혀 얘기를 들어보니 소윤이는 들어가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이미 한차례 눈물을 쏟은 것 같았다.


"왜 울었어?"

"엄마 보고 싶어서"

"계속 울었어?"

"아니. 계속은 아니고"

"그럼 나올 때는 왜 울었어?"

"아니. 내가 잠바 꺼내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내 꺼 아니고 친구 꺼라고 해서"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으나 소윤이가 말한 이유는 그랬다.


"아. 그래서 울었어? 슬펐어?"

"응"

"그래. 아마 선생님이 착각하셨나 봐"


소윤이는 금방 괜찮아졌다.


어제 장모님, 장인어른은 김장을 하셨고 우리는 오늘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 산 후 아내와 아이들을 행신역에 데려다줬다. 목장모임이 취소돼서 내가 바래다 줄 수도 있었는데 아내는 뭐하러 시간도 돈도 아깝게 그러냐며 경의선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도착해서는 장인어른께 데리러 나와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고 했다. 마침 시윤이는 잠들어서 그나마 아내의 지하철 여정이 수월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물론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행신에서 보내고 난 다시 집으로 왔다. 축구하러 갈 때까지 한두 시간이 남은 데다가 아침에 깜빡하고 안 챙긴 옷이 있어서 겸사겸사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기로 했다. 적당히 쌀쌀한 날씨 탓에 훈기가 느껴지고 베란다 창으로 햇볕이 쏟아지는 한낮의 고요한 집에 들어서니 신기하게도 낮잠 욕구가 폭발했다. 누웠다가는 축구고 뭐고 못 일어날 것 같아서 눕지는 않았지만 잤어도 굉장히 달콤했을 것 같다.


보통 4시부터 7시까지 축구를 하는데 오늘은 6시까지만 하고 나왔다. 바로 파주(처갓댁)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이고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축구하고 오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미 상은 차려져 있었고 난 손과 발만 씻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집이라 신났는지 둘 다 과흥분 상태였다.


과흥분 상태라 함은 기분이 좋긴 좋은데 너무 좋아서 훈육자의 통제에 아예 귀를 닫는다거나 너무 뛰어다니는 탓에 조만간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유발하는 상태를 말한다. 대신 잘 이용하면 밥도 술술 먹일 수 있다. 한 숟갈 먹고 놀다 오고 한 숟갈 먹고 놀다 오는 소윤이 시윤이에게 제 자리에 앉아서 밥 먹기 라는 식사 예절 훈육을 포기한 대신 밥을 아주 양껏 먹였다.


밥 먹고 나서도 두 녀석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찌나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지 굉장히 정신없었지만 그걸 보고 있으면 굉장히 흐뭇했다. 소윤이 혼자일 때 홀로 애교 떨고 재롱 피우는 걸 보는 거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셋 되면 더 하고 넷 되면 더 하겠지만 난 둘로 충분하다. 혹시 틈을 노리는 내 안의 셋째 희망자들아, 저리 가라, 안녕.


잘 시간을 넘겨도 한참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씻겨서 잘 준비를 마친 뒤 차에 태워 출발했다. 시윤이는 앉자마자 잠들었고 소윤이는 잠깐 아내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었으나


"엄마. 나 잠들면 엄마가 눕혀 줘여"

"엄마. 아기 인형 엄마가 들고 있어여"


라고 말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너도 곧 꿈나라구나'


곤히 곯아떨어진 두 녀석을 각각 들춰 메고 올라가서 방에 눕혔다. 방이 좀 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침 때문인지 소윤이가 깊이 못 자고 한 번씩 소리를 냈다. 시윤이도 덜 하긴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장모님이 싸 주신 수많은 반찬과 김치 등의 먹거리를 애들을 눕혀 놓고 다시 차에 가서 가지고 왔다.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음식이 많으니 아내가 얼른 갔다 오라는 투로 다급히 말하길래 바로 갔다 왔다. 다급했던 말투, 나의 빠릿빠릿한 행동과는 다르게 아내는 특유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몸짓을 보여주고 있었다. 열심히 정리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소파에 앉아서 바리스타 마시고. 또 분주하게 넣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파에서 웹툰 보고 있고.


결국 소윤이가 깨서 우는 소리가 들렸고 아내는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들어가야만 했다. 냉장고에 넣어야 할 건 다 넣고 자리 마련을 위해 냉장고에서 뺀 음식들이 남은 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유난히 졸리기도 하고 거실에 홀로 있어봐야


'아내의 일이 아니라 너와 아내의 일'


이라는 강박과


'그냥 쉬고 싶다'


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치우고 설거지를 할 것만 같아서 아내랑 같이 방에 들어갔다. (알아먹지 못할 괴상한 궤변을 늘어놨지만 쉽게 말하자면 [그냥 치우느니 잤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내) 엄마 아빠가 김장을 한다는데 저녁에 와서 밥 먹을 거냐고 물어보셨다. 요즘 김장철이라 지인들의 김장 호출로 인한 스트레스 에피소드를 종종 듣게 된다. 아내와 나는 스트레스는커녕 이쪽저쪽으로 노동력 제공은 1도 안 하고 얻어먹기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호사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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