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9(월)
우리 집에서 삼송역보다는 원흥역이 가깝지만 원흥역으로 가는 버스는 한 대 뿐이고 잘 오지 않는다. 나머지 버스는 대부분 삼송역에 가기 때문에 그냥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탄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 한 이후 처음으로 원흥역에 가는 버스가 눈에 보였다. 파다다다다다. 길을 건너서 급히 버스에 올라탔다.
'오예. 드디어 원흥역'
기분 좋게 주머니를 뒤지는데 지갑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가방에 넣었나 싶어 가방도 더듬었지만 마찬가지였고.
"기사님. 죄송해요. 지갑을 놓고 왔나 봐요. 그냥 내려 주세요"
약 20m 전진 후 하차해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지갑은 차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래. 언젠가는 생길 일이었어'
허망한 아침을 보내고 나니 유난히 더 피곤한 듯했다. 아내는 홈스쿨 있는 날이라 오전부터 시안이네로 갔다. 점심시간쯤 아내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소윤이, 시안이는 샤방샤방한 공주 옷을 입고 잔뜩 신난 상태였다. 시윤이도 누나들처럼 치마를 걸쳐 입고 신난다고 쫓아다니고 있었다. 둘이(소윤이, 시안이) 말씀 암송도 하고 소윤이는 [아빠, 힘내세요]를 완창 하기도 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몰라도 [아빠, 힘내세요]는 정말 명곡이다. 예전에는 유명한 후렴구 부분만 많이 들어서 몰랐는데 곡 앞부분이 백미인 것 같다.
아침에 나올 때 애들은 다 자고 아내만 깨서 애들은 내가 출근하는 걸 못 봤다. 소윤이가 오늘 아빠를 한 번도 못 봐서 보고 싶다며 퇴근길에 전화를 했다.
"아빠. 어디에여?"
"어. 지하철이야. 가고 있어"
"아빠. 지금 영상통화할 수 있어여?"
"아. 지하철에서는 좀 힘든데?"
"아빠. 그럼 이따 내려서 아파트 복도에 오면 영상통화 하자여"
"거기서는 조금만 있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아. 그래도여.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하자여"
"집에 가면 직접 보면 되잖아"
"아. 그래도여. 알았지여?"
"그래 알았어"
약속대로 버스에서 내려 영상통화를 걸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도착해서도 소윤이 말대로 끊지 않고 있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깔깔거리는지. 그와 반대로 아내는 저기압이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그냥 지쳐 보였다. 나의 퇴근 후에도 소윤이한테 쌀쌀맞았다. 그러던 와중에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 아내를 본 소윤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 어디 가여?"
"어. 엄마 운동하러"
"엄마아아아. 가지마아아아아"
아내는 낮에 소윤이에게 운동하러 가는 날이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고, 소윤이 입장에서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그것도 엄마랑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이별을 해야 하니 속상했나 보다. 서러움을 걷어내지 못하고 훌쩍이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던 소윤이에게 아내가 말을 걸었다.
"소윤아. 엄마가 할 말이 있어"
"뭔데여? 사랑해?"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가 미안해. 사실 소윤이가 잘못한 거보다 시윤이가 너무 울고 징징대서 엄마가 소윤이를 잘 못 받아줬어. 미안해"
그러게. 문제는 강시윤이었는데 피해는 소윤이가 봤네. 다소 마음이 누그러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엄마가 떠나는 게 싫은 소윤이는 아내가 나가는 순간까지 가지 말라며 울었다. 옆에서 시윤이도 덩달아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아빠 힘내세요 노래 들을 때는 분명 힘이 났는데 말이야. 그 힘이 다 어디로 갔을까.
막상 아내가 나가고 나니 오히려 둘 다 평정심을 찾았다. 시윤이는 홈스쿨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러니까 늦은 오후에 낮잠을 잤다길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소윤이는 재우고 시윤이는 다시 데리고 나올 생각도 하고 있었다. 책 두 권과 함께 금세 곯아떨어진 소윤이 옆에서 시윤이는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빨며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애매했다. 아예 활력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방 잠들 것 같은 확신이 서지도 않고. 졸려 보이기는 하는데 이 상태로 한참 버틸 것 같기도 하고. 데리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며 어영부영 한 시간 정도가 지났고 시윤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각오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금방 잠들었다.
고맙다, 시윤아.
아내는 같은 단지에 사는 언니와 함께 동대문 밤 시장에 다녀온다고 했다.
운동은? 당연히 pass
개명 절차는 물론이고 다음 달에는 그냥 헬스도 등록하지 않는 게 어떠냐고 건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