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제조 노동자

21.01.08(금)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밥 대신 옥수수를 먹었다. 과일과 함께. 어제 사다 놓은 옥수수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 외에도 팝콘도 먹고, 핫초코도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의 하루였다.


서윤이는 언니, 오빠가 먹는 옥수수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봤다. 알맹이째 주지는 못하고, 껍질 안에 있는 부드러운 부분만 줬다고 했다. 아내가 한 알, 한 알 손으로 눌러서 속에 있는 걸 짜 줘야 하는데, 그게 서윤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막 짜증을 냈다고 했다. 통째로 주니 잠잠해졌고. 이런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뭐든 자기가 손에 쥐고 직접 하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


아, 며칠 동안 아내를 괴롭게 하던 서윤이는 오늘 웬일로 새벽에 깨지 않았다. 밀고 당기기의 고수인 걸까. 아내가 ‘간만에 푹 잤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래 잤다. 이렇게 써 놓으면 뭐 한 8시, 9시까지 잔 걸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물론 아니다. 새벽 4시에 깼다. 그때 깨서 계속 안 잔 건 아니고 수유하고 또 자긴 잤다. 어쨌든 새벽 4시에 깨서 수유까지 했다. 그래도 아내에게는 며칠 만의 ‘긴’ 잠이었다. 여보, 힘내. 설마, 돌전에는 지나가겠지. 이 역주행의 터널을.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은 몸으로 놀아달라고 난리였다. 금요일이니까. 기꺼이 마음을 내어 몸으로 놀아주겠다고 했다. 막상 그러자고 했더니, 자기들도 ‘몸놀이’를 뭘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자꾸 나더러 생각하라고 했다. 그냥 뭐든 ‘힘센 아빠’만 해 줄 수 있는, 뭔가를 원했다. 한참 고민하고 고작 한다는 게, 안아주면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가 떨어지는 거였다. 막상 두어 번 반복하다 보니 ‘고작’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힘이 필요해서 나중에는 어깨 위에 앉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안아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의 ‘공부’도 열심히 자랑했다. 시윤이는 요즘 조금씩 학구열이 생기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나가 하는 걸 자기도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누나가 공부한다고 그러면 꼭 자기도 옆에 와서 앉는다고 했다.


“시윤아. 누나가 왜 이렇게 글씨를 바르게 쓰게 됐는지 알아?”

“네”

“왜?”

“어, 어, 누나가 어, 나 종도 나이일 때 글찌 쯔기 열짐히 연즙해서어”


시윤이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윤이도 아주 열심이다. 숫자와 한글을 쓴 걸 보면 대충은 짐작이 간다. 이게 성의 없이 대충 휘갈긴 건지, 잘 못 썼지만 어떻게든 노력하려고 그런 건지. 대체로 후자일 때가 많다. 기특하다.


아내는 애들 재우고 나서 자연드림에 갔다 올 거라고 했다. 장을 좀 봐야 한다고 했다. 서윤이만 아니었으면 바로 나가라고 했을 텐데, 수유 없이 자는 건 거의 불가능 아니 아예 시도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가야 했다. 걱정이 됐다. 요즘 들어가기만 하면 함께 잠드는 일이 숱한데 과연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다시 나오더라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지.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내는 엄청 빨리 나왔다. 서윤이도 바로 잤고,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이만 잠들지 않았다. 소윤이는 며칠 전에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했다. 밤에 잘 때 서윤이나 시윤이라도 깨어 있으면 괜찮은데, 보통 둘 다 먼저 자니까 혼자 깨어 있는 게 무섭다고. 소윤이가 말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대충 이해가 됐다. 소윤이는 오늘도 방에서 나가려는 아내에게 5분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 했지만, 아내는 나가야 했다.


다행히 아내는 무사히 자연드림에 다녀왔다. 원래 영화라도 한 편 보려고 했는데, 서윤이 이유식 만드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유식 제조 노동은 득과 실의 격차가 큰 일이다.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걸 잘 먹으면 그것만큼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 또 없다. 밤 늦게까지 만든 걸 몇 숟가락 먹지도 않고 본체만체하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또 없고. 그래도 만들어야 한다. 육아는 계산이 아니니까.


영화 보면서 먹으려고 사 온 과자만 먹고 금요일 밤을 놔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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