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당일치기

21.01.09(토)

by 어깨아빠

아침은 샌드위치였다. 어제 자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미리 주문했다. 상세하게. 굽지 않은 빵에 블루베리 잼을 바르고 치즈를 올리고 계란 프라이를 올린 샌드위치를.


“아빠. 일어난 거에여?”

“응”

“그럼 나가자여”

“어, 알았어”

“아빠. 왜 안 나가여”

“어 나가야지”

“얼른 나가자여”

“아빠. 배고파여”

‘어, 그래. 샌드위치 먹자”

“얼른 나가자여”


깼는데 일어나지 않는 엄마와 아빠를 일으키려다 지친 소윤이와 시윤이는 방에서 놀았다. 이불과 매트리스 위에서 자꾸 뛰길래, 먼지가 나니 뛰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뛰었다. 덕분에 학수고대하던 주말 아침을, 아빠한테 꾸지람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게 얼른 일어나서 애들이랑 거실로 나갔으면 될 것을’이라고 누군가 얘기했으면, 할 말이 없었을 거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다 함께 식탁에 앉았다. 서윤이는 어김없이 다가와서, 아내와 내가 앉은 의자를 잡고 섰다. ‘나도 뭐하나 달라’는 표정과 함께. 식빵을 아주 작게, 쌀알보다도 작은 크기로 잘라서 입에 넣어줬다. 그렇게 작게 넣어줘도 맛이 다 나나 보다. 앞니 두 개밖에 없으면서 열심히 오물거리기도 하고.


덕분에 서윤이와 할 수 있는 게 하나 늘었다. 서윤이는 아직 ‘뽀뽀’의 의미를 모른다. 입술을 내밀어도 멀뚱히 쳐다보다가 자기 할 일 하곤 한다. 당연히 아직까지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건네는 뽀뽀만 존재한다. 식빵 쪼가리를 입술 쪽에 올려놓으면 처음에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하다가, 내가 강제로 손을 치우고 얼굴을 들이밀면 입으로 먹는다. 이렇게 서윤이가 건네는 뽀뽀를 받고 있다. 요즘 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누워 있는 나에게 서윤이가 와서 내 온 얼굴을 침으로 범벅시켜 놓는 거다. 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윤아, 시윤아. 우리 오늘 신림동에 갈 거야”

“에에? 신림동 할머니 집에여?”

“어”

“진짜여?”

“어, 대신 자고 오지는 않을 거야. 저녁 먹고 밤늦게까지 있다가 올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고. 알았지?”

“네, 좋아여”

“이따가 집에 가기 싫다고 막 울고 그러면 안 돼. 늦게까지 놀다 올 거니까, 또 어차피 내일 온다고 해도 아침에 예배만 드리고 바로 올 거니까. 알았지?”

“네”


새로 만든 2021년 달력(애들 사진으로 만든)을 드려야 했다. 그걸 이유로 겸사겸사 정기적인 비정기 방문이랄까. 집에서 자는 게 편하기도 하고, 지난번에 갔을 때 낮잠 자고 두통으로 고생한 일이 뭔가 강력하게 각인이 되었다. 또 자고 오면 주일까지 시간이 너무 훌쩍 지나기도 하니까. 그래서 안 자고 오기로 했다.


신림동에 가기 전에는 아내의 사촌 오빠의 집에 가서 여러 육아 용품을 받기로 했다. 오전에 가서 받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나왔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사느라 아내가 차에서 내린 사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같이 들었다.


“어, 지훈아. 출발했니?”

“아, 이제 막 나왔어요”

“아니 아침에 일어났더니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보일러가 안 되는 거야”

“어”

“그래서 막 냉장고를 옮기고 짐도 옮기고 그러다가 지금 사람을 불렀거든”

“어”

“보일러도 안 돼서 춥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좀 안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게. 못 가겠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거울로 소윤이와 시윤이의 반응을 살폈다. 소윤이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실망이 컸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일 거다. 소윤이도 다 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서운함에 흐르는 눈물 또한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빨리 처리하면 다시 연락할게”

“알았어요”


소윤이는 울적한 기분을 안고 아내의 사촌 오빠 집으로 향했다. 우울한 기분도 한몫했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요즘 소윤이는 조금이라도 어색한 자리에 가면 말수가 확 줄어든다.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한 마디도 없다. 오늘도 그랬다. 4살짜리 여자아이가 있는 집이라 장난감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았는데 소윤이는 누가 보면 엄청 내성적인 아이로 오해할 만큼 ‘가만히’ 있었다. 시윤이도 괜히 누나를 따라 ‘쑥스러운 척’을 했다. 시윤이는 본능을 참지 못하고 빵도 먹고 장난감에도 관심을 보이며 서서히 빗장이 풀렸다.


한 30여 분 앉아 있다가 나왔다. 나오기 전에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일이 다 정리됐으니 와도 된다는 전화였다. 아내가 소윤이에게 소식을 전했다. 소윤이는 그 집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큰 목소리를 냈다.


“시윤아! 우리 신림동 할머니 집 갈 수 있대!”


소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신나고 흥분한 수다쟁이었다. 다시 한번, 오늘은 자고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아무리 얘기하고 또 얘기한다고 해도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서 “안녕히 계세요” 할 리는 없다. 서운함에 울기는 하더라도, 다짜고짜 떼를 쓰는 건 막아보자는 정도였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가는 내내 자다가 신림동에 도착해서 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주로 방에 할머니와 함께 들어가서 놀았다. 서윤이의 방해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동생이 방해를 하더라도 동생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따돌리는 건 금지된 행동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헤아려 어느 정도 용인해 줬다. 만약 집에서 그랬으면 서윤이가 가만히 있지 않고, 막 울면서 아내를 힘들게 했을 거다. 오늘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언니와 오빠가 방에 들어가고 없어도, 자기와 함께 놀아주는 어른이 세 명이었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서윤이는 조금도 칭얼거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감탄과 탄사가 끊이지 않게 만들 정도로, ‘뭔가 아는 듯한’ 몸짓과 소리를 많이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째, 둘째 손주에게 잡혀 방에 감금된 (내) 엄마도 한 번씩 거실에 나와 서윤이랑 놀았다.


“할머니 딱 5분만 서윤이 보고 갈게”


덕분에 나도 소윤이와 시윤이 신경 안 쓰고 서윤이랑 원 없이 놀았다. 내 얼굴과 머리카락이 서윤이의 침으로 범벅이 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열심히 놀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소윤아, 시윤아. 지금 미리 씻고 딱 한 시간만 더 놀다 가자. 알았지?”


소윤이는 양치는 가기 전에 하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할머니가 과자 같은 걸 줄지도 모르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빠르게 얼굴과 손, 엉덩이를 씻고 ‘시한부 놀기’에 돌입했다. 서윤이는 그 시간까지도 기분이 좋았다. 잘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마지막 1시간은 빛보다 빠르게 지나갔을 거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고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에서 나왔다. 시윤이도 슬픈 표정으로 누나를 따라 나왔는데, 시윤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연기가 섞인 슬픈 표정이었다. 누나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자기도 그래야 될 것만 같아서 따라 하는 ‘슬픈 연기’였다. 내가 시윤이를 보며 웃었더니, 자기도 씨익 웃었다. 그걸 본 소윤이도 울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소윤이의 울음이 끊겼고, 이별의 아쉬움도 한결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실 시간이 생각보다 꽤 많이 늦어서 피곤하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냥 자고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주일 하루를 온전히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에 피곤함을 누르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소윤이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얘기했다.


“아빠”

“어?”

“다음부터는 신림동에 오면 절대 안 자고 가면 안 되겠어여”

“왜?”

“너무 서운해서 안 되겠어여. 이제 신림동에 오면 무조건 자고 가야 돼여”


운전하는 나 빼고 모두 잠들었다. 소윤아, 아빠 생각에도 차라리 자고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깼다. 역시 나 빼고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아무도 보지 못했고, 난 엄마가 싸 준 반찬과 과일을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거실에 앉아 일기도 쓰고 유튜브도 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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