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도 그립고, 출근도 감사하고

21.01.10(주일)

by 어깨아빠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먼저 일어나서 거실에 나갔다. 아마 꽤 이른 시간이었을 거다. 아내와 나는 이불 속에서 뒹굴며 질척거렸다. 거실에서 갈등의 소리가 들렸다. 성경을 읽자는 소윤이에게 시윤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뺀질 대는 소리였다. 소윤이는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최대한 예(?)를 갖춰 동생을 대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조용하길래 조금 있다가 거실로 나갔다.


“아빠아. 누나가 안 읽어져떠여어”


시윤이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나 핑계를 대면서 얘기했다.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하지만, 인간은 악하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자기변호를 위해 남을 파는 기술을 벌써 익히다니.


“강시윤. 아빠가 방에서 들었는데. 무슨 누나 핑계를 대고 있어. 시윤이가 안 읽는다고 했잖아. 거짓말하지 마. 누나 핑계도 대지 말고. 알았지?”


시윤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성경을 읽는 동안 계란밥을 준비했다. 아, 서윤이도 언니, 오빠랑 먼저 나와서 놀고 있었다. 애가 셋이니 이런 게 가능하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가 엄마, 아빠가 없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서 논다. 물론 유효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아내도 곧 일어났고, 아내와 아이들은 계란밥을 먹었다. 난 커피를 마셨고.


밥 먹고 나서 거의 바로 예배를 드렸다. 그만큼 아침을 시작한 시간이 늦었다. 아니, 늦은 것도 아니지. 주말에 그 정도면. 아무튼 예배도 잘 드렸다. 서윤이는 예배 중간에 칭얼거려서 내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리만 들으면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울고, 몸을 아치 모양으로 휘게 만들었다.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어쩔 줄 모르더니 5분도 안 돼 고요해졌다.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빨며 눈을 감았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는 바로 헌금에 대해 가르쳤다. 그전에도 알려주기는 했지만 새해를 맞아 새롭게 정비된 우리 집의 헌금 규칙에 대해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했다. 부디 돈만 쫓아가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고 나서는 뭐 또 계속 집이었다.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봤더니 서윤이가 어제처럼 기분이 계속 좋았다. 서윤이에게 쏟아야 하는, 가끔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 체력 소모가 없으니 그만큼 힘이 남았다. 그걸로 소윤이, 시윤이하고도 더 재밌게 놀았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업그레이드 메모리 게임’도 하고, 시윤이가 좋아하는 몸놀이도 하고, 둘 다 좋아하는 숨바꼭질도 하고.


오후에는 잠시 나갔다 왔다. 물론 언제나처럼 목적은 그저 ‘바람 쐬기’. 서윤이는 나가기 직전에 잠들었다. 유모차에 눕혀도 깨지 않은 덕분에 편안한 외출을 즐겼다. 한살림에 들러서 간단하게 장도 보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간식도 사고. 저녁으로 먹일 것도 사고.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갈 데가 정말 많았을 거라는 이야기와 코로나가 없어지면 가야 할 곳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고작 동네 산책에도 방방 뛰며 눈을 밟고 좋아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불쌍한 생각이 든다.


서윤이는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기 직전에 잠시 눈을 떴다. 날이 추워서 이불을 세 겹 정도 덮어줬는데 꽤 따뜻했나 보다. 잠에서 깨지 못하고 다시 스르르 눈을 감길래, 문을 열고 현관 안에 유모차를 들였다. 서윤이도 그대로 눕혀 놓고.


“금방 깨겠지”

“그래. 금방 깨겠지”


아내와 나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고, 서윤이는 거의 1시간을 넘게 잤다. 일어나서는 또 미소쟁이가 되어서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내 장난도 잘 받아줬다. 똥을 무려 세 번이나, 그것도 아주 푸지게 쌌지만 전혀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내 손에 똥 마를 아니 물 마를 날이 없는 하루였지만, 앉아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횟수가 늘어서 좋았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변비 없이 쑴풍쑴풍 잘 싸는 것도 감사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놀다가 잤다.


“아빠랑 너무 쪼금밖에 못 놀아서 아쉽다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의 백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백수가 아니면서 백수처럼 시간도 많고, 큰돈이 아니어도 먹고 살 만큼의 돈도 벌 수 있는 그런 삶은 아빠도 꿈꾸지만,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요즘은 출근이 감사한 시절이란다. 아빠, 또 일주일 동안 열심히 벌어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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