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1(월)
시윤이가 낮에는 손가락을 빨지 않는데 잘 때는 아직도 빤다. 그냥 입에 넣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한 압력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엄지손가락에 꽤 깊은 흔적이 남는다. 시윤이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생겼다. 어제 그걸로 겁을 좀 줬다.
“여보. 시윤이 엄지손가락이 너무 심하네요”
“어디 보자. 헤에? 진짜네? 이거 병원 가야겠네”
“그렇죠? 병원 가야겠죠?”
“아, 그럼. 이거 이대로 두면 안 돼. 큰일 나. 병균이 다 들어가서 안 돼. 이거 아마 주사 맞고 칼로 이렇게 잘라내야 될 거 같은데”
“그럼 엄청 아프지 않아요?”
“아파도 어쩔 수 없지 뭐. 이미 너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어”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듣던 시윤이는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긴장한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병원 간다는 게 거짓말인 거 다 안다면서 능청을 떨다가, 진지하게 진짜 간다고 하니까 조금씩 표정이 굳었다. 아내는 시윤이를 재우러 들어가서 오늘 밤에 안 빨고 손이 조금 나아지면 안 가도 될지도 모른다고 얘기해 줬다.
아내가 아침부터 시윤이 손가락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확실히 거의 안 빤 듯했다. 효과가 있었다. 서윤이 손가락 빠는 건 언제 고쳐줘야 할지 고민이긴 한데, 왠지 그냥 그대로 둘 것 같기도 하고. 왜 서윤이한테는 뭘 못 할 것 같지?
집에 세탁기 배수관이 얼어서, 아내가 그거 녹인다고 꽤 고생을 한 모양이다. 빨래를 이미 돌렸는데 탈수하기 전에 멈춘 거라, 아내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고 했다. 되다 만 빨래가 물과 함께 세탁기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꽉 막힌다. 집안일에 있어서는 의외로 끈기와 투지가 넘치는 아내는, 드라이기를 이용해 배수관을 녹이는데 성공했다. 배수관 옆에 쪼그려 앉아서 하고 그럴 공간이 안 돼서, 세탁기에 매달려 세탁기 뒤편으로 드라이기 줄을 길게 늘어뜨려 낚시할 때와 같은 모습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나도 하루 종일 애들을 그리워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나를 혹은 나와 노는 시간을 그리워했나 보다. 저녁 먹기 전에 그 찰나의 시간에도 놀자고 성화였고, 다 먹고 나서 씻고 자기 전에도 어떻게든 더 놀려고 했다. 월요일이라 더 그랬겠지. 내 체력은 아직 괜찮아서 아내의 상태를 봐 가며 아이들의 요청에 적당히 응했다.
소윤이는 공연 놀이를 하자고 했다. 나, 소윤이, 시윤이 이렇게 셋이서 공연 상황극을 하는 거다. 한 명은 연주, 한 명은 노래, 한 명은 관객이라고 했다. 자꾸 나더러 노래를 하라고 해서 싫다고 했다. 아무리 아이들과 하는 놀이여도 뭔가 신나게 노래 부를 만한 흥이 없었다. 내가 연주가를 맡았고 소윤이가 노래를 불렀다. 연주라는 게 별거 없고 그냥 서윤이 딸랑이 같은 걸 노래에 맞춰 잘 흔들면 되는 거였다. 시윤이는 관객이라 손뼉 치며 보는 역할. 그렇게 한 곡, 두 곡 하다가 지겨워서 내가 ‘아기공룡 둘리’ 노래를 불러줬다. 매우 장난스럽고 과장되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거렸고,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닫았다. 아내 말처럼 ‘이런 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그 시간에는 그 쉬운 일도 버거워지는지. 아무튼 아기공룡 둘리는 대흥행이었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아마 내일부터 며칠 동안은 또 계속 둘리를 불러 달라고 하겠지.
시윤이를 씻기면서 시윤이한테 한 번 더 얘기했다.
“시윤아. 오늘도 잘 때 손 빨지 않을 거지?”
“아빠아. 근데에 저느은 잘 때느은 뭐를 하면저 자고 지퍼여어”
“뭔가를 하면서 자고 싶다고?”
“네에. 존가락 같은 거어 빨면저어”
“그럼 손가락 빨지 말고 인형 만지면서 자면 되잖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전해주기를, 시윤이는 나름대로 엄청 노력했다고 했다. 오른손을 어쩌지 못해 끙끙대면서도 손가락을 넣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고 했다. 그 노력이 참 귀하다. 고작 다섯 살인데 엄마,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아니 그냥 병원 가는 게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애를 쓰는 그 모습이 참 어여쁘다.
오늘도 아내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묻지 않고 커피를 한 잔 사다 줬는데, 마침 나에게 커피를 사다 달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마음을 접었던 참이라고 했다.
둘리와 아이리쉬 라떼가 날 살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