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07(목)
오늘도 아내와 서윤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설마 오늘도 거실에서 자고 있나’
새벽에 익숙한 소리가 많이 들리긴 했다. 서윤이 울음소리, 나도 울고 싶다는 심정이 담긴 듯한 아내의 한숨 소리. 역시나 아내와 서윤이는 거실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아주 평화롭게. 방금 평화조약을 맺고 아무런 걱정 없이 두 발 뻗고 자는 병사들처럼, 아주 곤히. 어제와는 다르게 이불이 없었다. 차마 덮어주지 못하고 나왔다. 괜히 덮어준다고 부스럭거리다가 서윤이 깨울까 봐. 날이 춥다고 해서 보일러를 평소보다 좀 세게 틀었더니 한기가 많이 느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밤 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출근하고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눈일지도 모르지만 애들한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지난겨울에는 눈을 본 일이 거의 없었고,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다만 날씨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이 날씨에 아내 혼자 애 셋을 데리고 나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주말에 눈이 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첫 사진은 서윤이의 얼굴 사진이었다. 주방에 있는 서랍장을 잡고 서 있다가 넘어지면서 눈 아래쪽에 상처가 났다. 엄청 깊은 상처도 아니고, 애들 키우면서 그런 자잘한 상처는 숱하게 본지라 가슴이 찢어지게 아리고, 안타깝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다치고 상처가 났다는 게 달가울 리는 없다. 서랍 열지 못하게 막아 놓는 고리(?) 같은 것에 긁힌 거였다. 아내는 그걸 모두 떼어 버렸다.
점심시간쯤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애들 눈이라도 밟게 데리고 나가볼까 잠시 생각했는데 영하 14도네? 무리겠지?”
“너무 추움. 나갈 거면 10분 예고해야 함”
그러고 나서 한 2시간쯤 뒤에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꽁꽁 싸 매고 밖에 나가 눈을 밟고 노는 소윤이와 시윤이, 그동안 입은 적 없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엄마에게 안긴 서윤이.
“대단해”
“가영이 장갑 하나 사 주세요”
“헐. 여보 장갑이 없구나”
“동상 걸릴 거 같아”
한 시간 뒤, 아내는 이렇게 평했다.
“세 시간 같은 한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드럼 반주를 하러.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워했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같이 노는 시간은 길어야 10분-20분이지만, 자기들이 눕기 전에 아빠가 나가는 게 싫은가 보다.
저녁을 다 먹고 나가기 전까지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쉬었다. 소윤이는 오늘 하기로 했는데 못 한 것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그중에 옥수수가 있었다.
“엄마, 우리 옥수수는여?”
“아, 그러네. 오늘도 옥수수를 못 먹었네”
“엄마. 꼭 먹고 싶어여”
“그래?”
아내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삶아줄 것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가 소윤이에게 말했다.
“소윤아, 오늘은 너무 늦었잖아. 엄마도 피곤하시고. 옥수수는 내일 먹자”
“…..먹고 싶은데”
“내일은 엄마가 꼭 주실 거야. 오늘 밤에라도 삶아 놓으면 되지”
소윤이는 갑자기 울었다. 그냥 눈물을 글썽이는 게 아니라 엄청 서럽게 울었다. 그게 그렇게 울 일인가 싶었지만, 사실 옥수수는 월요일부터 준다고 했다. 물론 아내가 일부러 안 준 것도 아니고, 놀면서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약속을 못 지켰으니 최대한 소윤이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다. 소윤이는 울음을 거의 그쳐갈 때쯤 아내에게
“내일은 꼭 줘야 돼여”
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에 좀 화가 났다.
‘다 지들 챙기느라 정신없어서 그런 건데, 밤새 잠도 못 자는 엄마가 하루 종일 이것저것 먹여주고, 입혀주고, 챙겨준 건 기억도 못 하고 딱 하나 ‘옥수수’ 못 챙겨 준 것 때문에 지금 저렇게 얘기한다고? 오늘은 그 추운 날, 밖에도 데리고 나가서 놀고 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소윤이에게 이 심정을 거의 고스란히 전했다. 물론 막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소 쏟아낸 면은 없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아직 뭘 모르는 6살 딸이 아니라 아내의 고충을 헤아려 주지 않는 한 인격으로 대했나 보다.
교회에 갔다가 돌아올 때 영 마음이 안 좋았다. 소윤이 입장에서는 월요일부터 매일 참고 기다린 일이니까. 집에 들어가는 길에 옥수수 아이스크림을 샀다. 옥수수는 아내가 삶아줄 것이고, 나의 마음은 옥수수 아이스크림으로 전하기로 했다.
아, 참. 아내는 내가 교회에서 차를 타고 출발할 때쯤, 카톡을 보냈다.
“여보. 허탈하게도 지금 나옴”
집에 가서 아내랑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서윤이는 또 깼다. 이건 뭐 하루 1시간이 아니라 하루 1분이네 1분. 아내는 서윤이를 재우고 다시 나왔고, 아내와 나는 평일치고는 아주 늦은 시간까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