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빠랑도 자야지

21.01.14(목)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아내와 서윤이는 한 몸이었다. 아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휴대폰으로 불빛을 비춰보니 아내와 서윤이 모두 자는 듯했다. 아니, 서윤이는 열심히 먹는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조각상 같았다.


‘수유하는 여인’


요즘 소윤이가 자꾸 서윤이에게 머리띠를 씌운다. 머리카락도 없는데 머리띠가 뭐가 필요하냐고 그럴지 모르지만 반대다. 머리가 없으니 머리띠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윤이의 성별이 여자라는 걸 알릴 수 있다. 사실 그렇게 해도 긴가민가 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아무튼 밖에서야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는 굳이 머리띠가 필요 없는데 소윤이가 꼭 씌운다. 감히 성별을 의심하지 못할 정도의 큰 꽃이 달린 하얀 머리띠를 한 서윤이의 사진을 보는 게, 일하면서 즐기는 찰나의 낙이다.


서윤이는 아무것도 잡지 않고 두 발로 섰다. 한 1초 정도. 나는 직접 보지 못했고 아내가 얘기해 줬다. 소윤이, 시윤이 때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 순전히 내 감이지만, 서윤이가 제일 빠른 느낌이다. 성격도 왠지 제일 셀 것 같고. 고집도 제일 셀 것 같고. 요즘은 서윤이를 보는 사람마다 나랑 판박이라고 그러던데 그것도 불길하다. 막내라 그런 것이길 바라고 있다.


잠시 쉬었던 처치홈스쿨 온라인 모임이 오늘부터 다시 시작됐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가뜩이나 평소에도 밥 먹고 나면 재우기 바쁜데, 오늘 같은 날은 더 서두르게 된다. 순순히 따라주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고맙기도 하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난 모임을 준비했다. 아내는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서윤이만 잠들면 바로 나올 거야. 오늘은 못 기다려줘”


라고 말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흔쾌히 대답했다. 들어가기 전에는 뭐 언제나 힘이 넘치긴 한다. 막상 들어가면 마음이 바뀌는 게 문제지. 아내는 방에 들어간 지 30분 정도 지나서 나왔다. 서윤이를 안고.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서윤이는 온 얼굴에 웃음을 1톤 정도 장착한 듯, 계속 웃음이 넘쳤다. 배가 불러서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니면 평소와 다르게 밝은 거실로 데리고 나와서 좋은 건지. 모임은 거의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서윤이는 내내 함께 있었다. 기분도 무척 좋은 상태로.


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서윤이는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계속 거실에 뒀다. 울지 않고 잘 노니까 덕분에 실컷 보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밤을 새울 것 같은 기세였던 서윤이는, 아내가 잠시 자리를 뜨자 바로 아내를 찾으며 칭얼댔다. 그제서야 눈을 비비며 졸린 기색을 보였다.


아내가 다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이번에는 아내 혼자 나왔다. 그러고 나서 잠시 수다를 떨다가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난 소파에 앉아 자기 전의 마지막 휴식을 즐겼다. 그때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체감상으로는 ‘바로’ 깬 느낌이었다. 날씨 예보할 때도 체감 기온을 말해주고, 실제 생활에서도 그게 더 중요하다. 서윤이가 자는 것도 실제로 얼마나 흘렀는지도 중요하지만, 아내와 내가 느끼는 ‘체감시간’도 중요하다. 오늘은 분명히 ‘바로’ 깬 느낌이었다. 설거지를 하던 아내는 별로 들어가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다. 그럴 만했다. 아내의 체감으로는 ‘하루 종일 재우다 볼일 다 보네’라고 느낄 법하니까.


“내가 들어갈까?”

“여보가?”


억양은 되묻는 것이었지만 아내 언어 번역기를 통해 정확한 의미를 해석했다.


‘그래. 난 이제 재우는 거 그만할래. 차라리 난 그릇의 때를 벗길래. 여보가 들어가서 재워 보도록 해’


어둠을 이용해 나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는데, 서윤이는 찰떡같이 알아챘다. 그래도 워낙 졸렸는지 자주 울음이 끊기고 나에게 기대서 손가락을 빨았다. 아직 잠들기 전이었지만 왠지 눕혀도 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서윤이를 바닥에 눕혔다. 서윤이는 어디서 수작이냐는 듯 바로 눈을 뜨고 맹렬하게 울었다. 정말 날카롭고 까랑까랑하게. 결국 15분 전으로 후퇴했다.


다시 서윤이를 안고 몸에 반동을 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섣불리 만용을 부리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서윤이 엄지손가락이 입에서 빠졌고, 다른 쪽 팔을 들어 올렸다가 놔 봤는데 힘없이 추욱 떨어졌다.


서윤이를 눕히고 나도 내 자리에 누웠다. 그때 나가 봐야 할 것도 없고, 어차피 잘 시간이었다. 굉장히 생소한 풍경이었고, 기분이었다. 아내는 혼자 거실에 있고 내가 방에서 애들 셋과 함께 누워 있는 건.


아내는 늦어도 한참 늦은 자투리 자유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다 오겠다는 듯,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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