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8(월)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번호는 아내의 번호였지만, 목소리는 소윤이와 시윤이었다.
“아빠. 보고 싶어여”
“아빠아. 보고 지퍼여어”
나도 많이 보고 싶던 참이었다. 월요일에는 항상 이렇다. 시윤이는 갑자기 더 오래된 일까지 꺼냈다.
“아빠아. 그때에 우리 빠주에 갔즐 때에 늦게 왔즐 때에 그때에 엄쩡 보고 지펐자나여어. 그쪄?”
“그래. 맞아. 그때 엄청 보고 싶었지”
“저도오 아빠아 엄청 보고 지퍼쪄여어”
아빠 보고 싶다고 난리인 아이들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반가운지. 당장이라도 정리하고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요즘 출근이 복인 시대인 만큼 얌전히 업무를 지속했다.
아내의 오븐 사랑은 오늘도 계속됐다.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먹는 사진을 보냈는데, 정말 군고구마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맛있게 먹는 듯했고. 잘 때 입고 잔 잠옷을 오후 늦도록 그대로 입고 입는 걸로 보아 내내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았다. 퇴근했을 때도 모두 잠옷 차림이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아내 모두.
하루 종일 보고 싶어서 기다린 것치고는 함께 보낼 시간이 너무 짧았다. 토요일, 주일 이틀 동안에는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던 것과 비교가 되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서윤이는 늦은 낮잠을 자고 깬 지 얼마 안 돼서 기분이 엄청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안는다고 울고 그러지도 않았다. 아빠를 향한 친밀함이 상승하는 만큼 거부감도 줄어들고 있다. 고맙다.
아내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항상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더 그랬다. 낮부터 머리가 살살 아프다고 했다. 두통이 아니어도 충분히 지칠 텐데. 서윤이가 나에게 안겨서도 잘 있길래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씻겼다. 울 때 아내에게서 데리고 오고, 좋을 때 아내에게 건네야 하는데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웃으면 데리고 오고, 울면 주는 게 현실이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온 뒤에도 많이 힘들어했다. 다행히 두통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 걸 보면, 그냥 육아 피로의 누적이었다.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잘 지낸다고 답하는 게 거의 대부분인데, 진짜 매일 그렇게 평탄할 리는 없다. 애들 재우고 아내랑 이야기하다 보니 아침부터 아이들이 말 안 듣고 뺀질거린 이야기, 뺀질거림을 넘어 성을 낸 이야기, 쓸데없는 고집으로 화나게 한 이야기, 별것도 아닌 일에 서로 투닥거린 이야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 애들 손톱을 깎아줬다. 웬만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손톱을 깎아주려고 노력한다. 안 그러면 너무 길어서 지저분하니까. 마음은 그렇지만 어쩌다 보면 2주까지 갈 때도 있다. 그래서 엄청 바짝 깎는다. 하얗게 자란 부분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는 너무 짧게 잘라서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다’라고 하소연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짧게 자른다. 도저히 하얀 부분을 남길 수가 없다. 싹 깎아내야 속이 후련하다.
아빠가 손톱을 너무 짧게 잘라서 아프고 불편했던 일, 동생이랑 싸워서 엄마한테 혼났던 일, 엄마가 시키는 걸 안 해서 엄마한테 혼났던 일, 엄마가 꼬박꼬박 차려주는 밥을 매일 먹었던 일, 매일 엄마가 재워줬던 일. 좋든 안 좋든 어쨌든 함께 보낸 시간들이 아이들의 삶에 부디 좋은 양분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아내랑 이야기 한 것처럼 애들이 우리(아내, 나)를 그대로 닮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괜히 나의 안 좋은 것만 쏙 빼닮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니 실제로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섬뜩하다.
낮에 애들이 아빠 보고 싶다고 전화했을 때, 단지 기분이 좋은 게 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안도감이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항상 그렇다. 아빠라는 권력으로 감추고 있는 나의 치부가 분명히 있음에도, 여전히 나를 최고로 생각해 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요즘은 서윤이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 조그만 녀석도 ‘아빠’라는 사람한테 가면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아빠가 우리 혼내기도 하고 화도 내셨지만, 그래도 우리 손톱도 항상 깎아주셨잖아. 아빠가 또 손톱 깎아주셨으면 좋겠다”
“아빠가 주말에는 항상 우리랑 놀고 같이 어디 갔잖아. 아빠랑 또 놀러 가고 싶다”
“엄마가 우리 때문에 힘들어서 짜증도 내고 그랬지만 매일 밥도 차려 주시고 항상 같이 계셨잖아. 엄마가 또 밥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매일 우리 가르쳐 주셨잖아. 엄마한테 또 배우고 싶다”
장성한 삼남매가 이런 대화를 나누며 나와 아내를 기억하는 게 나의 작은 아니 큰 바람이다. 부족한 엄마, 아빠의 치부는 잊고 부디 함께한 시간과 사랑만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