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옷에 비해 초라한 외출

21.01.17(주일)

by 어깨아빠

어제 자기 전에 애들이, 내일 아침에는 토스트를 해달라고 했는데 빵 사 놓는 걸 깜빡했다. 다행히 소윤이와 시윤이가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침 먹고 예배를 드린 뒤에 아내는 어제 먹었던 애플파이를 또 냉동실에서 꺼내 오븐에 넣었다. 역시나 어제 크레이프 케이크 따위로는 빵 욕구를 채울 수 없었나 보다. 애플파이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아내는,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인 듯 애플파이를 데웠다.


점심에는 토스트를 먹으려면 빵을 사러 나가야 했다.


“아빠랑 빵 사러 나갔다 올 사람?”

“저여어”


예상대로 시윤이만 손을 들었다. 고생하며 옷 입는 것에 비해 너무 짧은 외출이라, 소윤이는 귀찮아할 때가 많았다. 소윤이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일부러 물어봤다. 소윤이는 손은 들지 않았지만 고민했다. 옷 입는 건 귀찮고, 나가도 빵만 사고 바로 들어올 거고, 그래도 왠지 안 나가는 건 아쉽고.


“아빠. 제가 왜 고민하는지 알아여?”

“왜?”

“아니, 저번처럼 저는 안 가고 시윤이만 갔는데 시윤이만 맛있는 거 사줄까 봐 그러져”

“아, 그래?”

“오늘도 사 줄 거에여?”

“글쎄. 그럴 생각은 없지만 나가면 또 모르지. 아빠도”


시윤이는 이미 옷을 다 입고 신발을 신을 때까지 소윤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야겠다고 했다가 안 가겠다고 했다가 다시 가겠다고 했다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소윤이는 결국 옷을 입고 따라나서기로 했다.


“아이, 누나 안 갔즈면 좋겠는데에”


시윤이는 아빠랑 둘이 나가고 싶었는지 누나가 따라나서는 걸 아쉬워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자꾸 말해서 아내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누군가를 배척하는 건 금지 행위다. 심지어 그게 훼방꾼 서윤이라도.


“여보. 그럼 서윤이도 데리고 나갈까?”

“진짜? 나야 좋지”


자유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그냥 쉬는 시간 정도라도 주고 싶어서 서윤이도 옷을 입혔다. 겨울에는 옷 입히는 게 정말 번거롭긴 하다. 그렇게 입혀서 뭐 몇 시간 놀고 들어오면 모를까 10-20분 나가자고 옷을 입히는 것치고는 꽤 힘들다.


어쨌든 셋을 데리고 나왔으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내다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에서 나왔는데,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날이 생각보다 추웠다. 식빵도 사고, 한살림에 가서 아내가 적어준 목록대로 장도 봤는데, 너무 금방이었다.


서윤이는 얌전히 잘 안겨 있었다. 나에게 매달려 다소 힘없는 눈으로 날 쳐다볼 때마다 마스크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침으로 범벅을 시켜주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서윤이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가만히 안겨 있었다.


처음에는 추웠는데 서윤이랑 붙어 있었던 데다가 계속 걸으니 오히려 땀이 삐질 났다. 그렇다고 밖에서 더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땀은 났지만 공기는 매우 차가웠고, 힘들기도 했다. 난 하루하루 늙어가고, 서윤이는 하루하루 자라나고.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서윤이는 잠이 들기 직전이었다. 안타깝게도 잠들지 못한 채 도착했다. 우리를 맞은 아내의 첫마디는 이랬다.


“어, 왔어? 빨리 왔네”


토스트도 오븐으로 만들어줬다. 피자 치즈를 솔솔 뿌려서 줬다. 애플파이와 토스트가 오늘의 점심이었다.


지난주에 아내 사촌 오빠네 가서 받아온 서윤이 장난감(‘국민 대문’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계속 차에 두다가 어제 가지고 올라왔다. 아내와 나의 예상대로 서윤이는 아직 심드렁한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더 신나서 가지고 놀았다. 오히려 서윤이가 좀 가서 놀려고 하면 자기들이 놀아야 한다며 서윤이를 피했다. 그래도 서윤이는 불굴의 의지로 전진했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기 붙어서 잘 놀았다. 둘 나름대로 역할을 정해서 상황극을 하는데, 소윤이가 엄청 깐깐한 감독이다. 시윤이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를 아주 세세하게 지시한다. 애드립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시윤이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면 자꾸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다시 시킨다. 우리 소윤이가 감독이 되려고 그러나.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졸려 보이는 서윤이를 내가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재웠다. 처음에는 집이 떠나가라 울었지만 끈기를 가지고 등을 토닥이니 졸음을 못 이기고 잠들었다. 엎드려서 울며 손가락을 빨던 자세 그대로. 그러고 방에서 나와 냉장고 앞에 대자로 누웠다. 잠시 후 아내도 내 옆에 누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대문과 함께 놀고 있었고, 서윤이는 잠시 낮잠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눈을 붙였다. 짧긴 했지만 아주 달콤한 낮잠이었다.


저녁 먹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했다. 그동안 나는 서윤이랑 놀았다. 나의 의사가 반영된 건 아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엄마가 샤워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했다. 평일 내내 엄마랑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도, 엄마랑 뭐든 더 하고 싶은가 보다. 엄마는 힘드니 아빠가 씻겨준다고 해도 엄마랑 씻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난 서윤이랑 더 놀아서 좋기도 했지만.


서윤이가 엄마의 부재를 눈치 못 채도록 쉴 틈 없이 놀아줘야 한다. 그리고 시끄럽게. 엄마 소리가 들리는데 눈에 안 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놀이고 뭐고 엄마가 있는 화장실 앞으로 기어가려고 하고, 그걸 막으면 또 운다. 다행히 오늘은 끝까지 눈치를 못 챘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난 잠시 편의점에 뭘 사러 나왔다.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여보. 빵도 하나 사다 줄 수 있나요?”


원래 아까 낮에 식빵 사러 갔을 때 사려고 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빵 가게에 식빵이 없어서 다른 가게에서 식빵을 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 아내의 빵을 까맣게 잊었었다. 사실 밤에 편의점에 갈 때도 아내의 빵을 사 올까 말까 고민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갔겠지만, 눈이 내리고 있었고 예상보다 추웠다. 게다가 마스크를 잘못 골라서 시윤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카톡을 안 보냈으면 사러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랫동안(진짜 오래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갈하지 못한 아내의 빵 욕구를 해갈할, 뺑오쇼콜라를 하나 샀다.


그래도 아내 덕분에 좋은 구경도 했다.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해서 눈발이 그렇게 굵지는 않았다. 가로등에 비치는 눈 내리는 모습이 뭔가 기분이 좋았다. 속으로는 ‘아, 내일 출근할 때도 눈 많이 오면 안 되는데’하는 낭만이 메마른 걱정을 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와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보다 들어왔을 텐데, 발이 너무 시렸다.


평일에는 눈 오지 않고 주말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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