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6(토)
어제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빠와의 주말을 엄청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해 줬다. 자기 전부터 다짐했다. 아침에 피곤하다고 시큰둥하게 반응하지 말고, 눈 뜨면서부터 아이들의 기분을 잘 맞춰줘야겠다고.
그래도 요즘에는 6시부터 일어나서 깨우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늘어지게 자도록 두는 일도 없지만. 어제 장모님이 싸 주신 불고기가 있어서, 아침부터 불고기에 쌈을 싸서 먹였다. 이제 단지 혼자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혼자 뭘 안 먹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서윤이는, 식사 시간에 더 간절히 매달린다. 예전에는 그냥 식탁 밑에 와서 소리 내고 다리 잡고 그랬는데, 이제 식탁 의자를 잡고 서서 자기도 달라는 듯 소리를 지른다. 이유식을 먹여야 할 때는 앉혀서 이유식을 주고, 그러지 않을 때는 아기과자를 준다. 아기과자도 안 흘리고 어찌나 잘 먹는지.
주말이었지만 특별한 어떤 일은 없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갈 곳이 정말 많았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자주 나눈다. 시윤이는 코로나를 발로 뻥 차서 없어지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도 했다. 그래도 어디 못 가고 집에만 있어서 우울하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난 워낙 집돌이 유형이라 애들하고 지지고 볶는 게 좋다. 물론 나도 같이 볶아지는 듯 힘들기도 하지만. 아내랑 둘이 있으면 그래도 훨씬 낫다. 뭐 난 혼자 있어본 경험이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아내랑 함께 있기 때문에 의외로 쉴 틈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시야 안에 위치하더라도 잠시 일선에서 후퇴하는 게 가능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잠시 방에 들어가거나 아이들의 눈을 피해 어딘가로 숨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부리나케 와서는
“엄마. 왜 여기 있어여?”
“아빠. 왜 들어왔어여?”
라고 물으며 나와 아내를 데리고 나가거나,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래서 배가 세게 아프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간섭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화장실이다.
아내는 오늘 갑자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오븐을 쓰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 겸용이라 그동안 전자레인지 용도로만 사용했는데, 냉동실에 있던 냉동 애플파이를 꺼내면서 오븐을 써 보겠다고 했다. 오븐 위에 잡다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걸 다 치웠다(정확히 말하면, 잠시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걸 시작으로 어제 먹다 남은 치킨도 데우고, 밤도 익히고. 호떡도 오븐으로 구워 먹었다.
점심은 따로 먹지 않고 애플파이와 과일로 대신했다. 아이들과 한가롭다면 한가롭게, 바쁘다면 바쁘게 지내던 중 아내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다.
“아, 맞다. 오늘..”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하려던 아내는 급히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혼자 막 웃었다. 나와 소윤이, 시윤이는 도대체 왜 웃는지,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궁금했다.
“엄마. 왜여? 왜 웃어여? 오늘 뭐여?”
아내는 한참을 혼자 더 웃더니 얘기했다. 지난주에 소윤이, 시윤이와 약속하기를, 다음 주에 호떡을 만들어 먹자고 했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거다. 그걸 말하려다가 그 짧은 순간에 방어 본능이 작용을 해서 입이 닫힌 거고. 아내는 스스로가 웃겼나 보다. 아무튼 아내는 지난주의 ‘호떡 약속’을 실토했고, 호떡 만들어 먹는 게 오후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아내는 반죽을 만들어서 방에 갖다 놓고 숙성을 시켰다. 1시간 정도 지나야 한다고 했는데, 소윤이는 너무 궁금했나 보다. 거의 10분에 한 번씩 이제 다 됐냐고 물어봤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식탁에 앉아 열심히 호떡 속을 채워 넣었다. 오븐으로 구운 호떡도 나름 맛이 괜찮았다. 물론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기름에 굽기도 했다.
호떡 먹고 나서 저녁 먹기 전에 잠깐 나갔다 왔다. 언제나처럼 바깥바람 한 번 쐬고, 커피도 한 잔 사기 위해서였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시윤이 자여”
방심했다. 그렇게 빨리 잠들 줄이야. 카페에 가서 커피 살 때는 아내와 소윤이가 내리고, 마트에 가서 라면 살 때는 나랑 소윤이가 내렸다. 중간에 세차장에 가서 세차도 했다. 날이 추웠지만 너무 더러워서 빠르게 했다. 시윤이는 계속 잤다.
애들은 볶음밥, 아내와 나는 라면을 저녁으로 먹었다. 저녁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세차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윤이가 말했다.
“아빠아. 세짜도 했더여어?”
“응”
“언제여어?”
“시윤이는 계속 잤잖아”
“아빠아. 더도 세짜하는 거 보고 시펐는데 깨우지 그랬더여어”
“아빠가 계속 깨웠지. 시윤이가 정신 못 일어나던데?”
“그랬더여어?”
미안해. 시윤아. 깨우지는 않았어.
서윤이는 오늘도 기분이 계속 좋았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말했다.
“소윤아. 아빠가 오해하겠다. 평일에는 안 그런데 맞지?”
“맞아여. 평일에는 엄청 울고 그러는데 주말에는 안 그런다여”
점점 서윤이랑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저녁에는 처치홈스쿨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더 신났다. 애들은 상관없는 모임이었지만 애들 재우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끝나고 재우겠다고 했더니, 늦게 자는 게 좋았나 보다. 2시간 가까이 모임을 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름대로 잘 놀았다.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고, 서윤이까지 잘 거둬서 놀았다. 서윤이는 모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졸렸는지 많이 칭얼거렸다.
마지막에 서윤이가 힘들게 해서 그런지 아내는 급격히 지쳤다. 애들 다 재우고 나온 시간이 10시가 넘었다.
“여보. 어제 영화 재미있기는 했는데 뭔가 아쉬웠지”
“맞아”
“무슨 느낌이냐면 맛이 있기는 한데 조미료 하나도 안 들어간 건강한 음식을 먹은 느낌이랄까”
“그래 맞아. 너무 잔잔했어”
아내도 나도 어제 영화가 좋긴 했는데 뭔가 다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오늘도 영화를 볼까 하다가 마땅히 볼 게 없어서 말았다. 아내는 영화 말고도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은 영역이 또 있었다.
“아, 빵을 못 먹어서 우울하다. 아까 나갔을 때 빵도 사 왔어야 했는데”
호떡도 먹고, 애플파이도 먹었지만 그건 빵류로 취급하지 않나 보다. 아내는 냉동실에 있던 크레이프 케이크를 꺼내 먹었다. 딱 봐도 엄청 맛있어서 먹는 건 아니었다. 하루에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빵의 양이 정해져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