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9(화)
낮에, 형님(아내 오빠)의 아내이자, 아내의 언니이면서 친구이자, 아이들의 외숙모인, 공식 명칭 아주머님이 집에 놀러 왔다. 뭐 제일 좋은 건 애들일 테지. 할머니들처럼 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퇴근했을 때도 여전히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무리 단계였다. 아빠(나)가 오면 가는 걸로 약속을 했는데, 막상 내가 퇴근을 하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숙모에게 밥 먹기 시작하면 가라고 했다. 밥을 먹기 시작하니 밥 먹을 때까지만 있으라고 하고. 결국 숙모는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뭐 함께 식탁에 앉아 밥과 반찬을 씹어 삼켰으니 저녁을 먹은 게 맞기는 한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다. 하필 반찬이 생선이라 더 그랬을 거다. 나는 서윤이 이유식 먹이면서 먹는다고 정신없고, 아내는 생선 발라 주느라 정신없고, 그 와중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쉬지 않고 조잘대고 서윤이는 잘 먹다 말고 울고. 그렇다고 오늘 저녁 풍경이 평소보다 도드라지게 난잡한 건 아니었다. 평소에도 딱 그 정도다.
집에 갔어도 진작에 갔어야 할 숙모는 조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참 늦게 갔다. 차로 가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니 차로 태워다 준다고 했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또 욕망을 불태웠다.
“아빠. 우리도 숙모 데려다주러 같이 가면 안 돼여?”
“음, 글쎄. 그건 엄마한테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엄마. 우리 같이 가도 돼여?”
“지금은 일단 밥 먹어. 엄마가 이따 말해줄게”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동행을 허락했다. 숙모는 조카들이 씻는 것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출발했다. 막 현관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급히 나를 부르며 카드를 건넸다.
“여보. 올 때 뭐라도 하나 사다 줘요”
아내에게 다시 카드를 건네며 꽃보다 남자(옛날 사람 티나나)의 주인공 오빠처럼 무심하게 얘기했다.
“가방에 봐봐. 빵 있어”
캬아. 찢었다.
퇴근하면서 빵 가게에 들러 라즈베리 바게트 하나를 샀었다. 빵을 못 먹은 건 비록 어제 하루였지만, 아내에게는 하루의 공백이 큰 타격이니까. 어제, 오늘 바깥공기 한 번 못 쐬고 육아에 찌든 아내에게 건넬 수 있는, 자유시간도 불가능한 현재로서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실 내가 굉장히 피곤했다. 아직 화요일인데 평소보다 더 빠르게 피곤이 쌓인 느낌이었다. 내가 이러나 아내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나의 ‘라즈베리 바게트 투척’과 관련해, 엄청난 감동을 받은 듯 찬사를 쏟아냈다. 아내는 카톡을 보냈다.
“여보.ㅠㅠㅠㅠ너무 맛있다 진짜.ㅠㅠㅠ감동이야…빵이 아니라 내 마음을 생각하고 이걸 사다 준 여보의 마음이 감동ㅜ 진짜로 빵이 맛있어서 그런 건 아님”
마지막 구절이 오히려 더 의심을 증폭시키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부부간의 사랑은 립 서비스 속에서도 꽃이 피는 법이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투자가 어디 있나.
소윤이와 시윤이는 10분 정도 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숙모에게 ‘놀자’고 압박했다. 그냥 얘기나 하면서 가면 되지 않냐는 숙모의 대답에, 자기는 더 놀려고 같이 따라온 거라며 반박했다. 결국 숙모는 내리기 직전까지 스무 고개를 하다가 갔다.
다시 집에 돌아와 앞서가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오늘도 잠옷 그대로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참 안쓰럽다. 열심히 뛰며 놀아야 할 때에 매일 집에서, 그놈의 층간 소음 때문에 마음껏 뛰지도 못하고. 이번 주말에는 사람 없는 곳을 찾아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서윤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서윤이는 업힌 채로 잠이 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가기 전에 다 씻고 나갔기 때문에 손만 씻으면 준비 끝이었다. 아내는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있는 서윤이를 조심스럽게 눕혀서 깨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방에 들어간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여보. 손수건 하나만요. 소윤이가 얘기한 건 아니고 코 훌쩍이는데 말 못 하는 거 같아서”
하루 종일 코 훌쩍이느라 고생한 소윤이가, 자려고 누웠으니 잡담하지 말고 자야 한다는 엄마와 아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말도 못 하고 코 훌쩍이는 게 유난히 갸륵하게 느껴졌다. 얼른 손수건을 챙겨서 문을 벌컥 열었는데, 아내가 서윤이를 몸으로 덮으며 눈짓, 몸짓, 손짓을 모두 동원해 나에게 표현했다.
‘여보. 조용히 해야지’
아차 싶었다. 서윤이 생각을 못 했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다니. 결국 서윤이는 깼고, 아내는 바로 수유를 했다.
“여보. 미안하네”
“아, 괜찮아. 깨면 수유해서 재우자 이 생각으로 기다리던 중이라 충격이 크지 않았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라즈베리 바게트로 어렵사리 쌓은 업적이 물거품이 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