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위안

21.01.20(수)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파주에 다녀왔다. 오늘의 요리(장모님과 아이들이 찾은 절묘한 절충점, 즉 놀면서도 뭔가 생산성을 창출할 수 있는 게 요리다)는 호떡이었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지만, 요리 후의 여러 냄새(생선 냄새, 기름 냄새 등)는 싫어하는 아내에게도 딱이었다.


오늘도 아내는, 오전에는 여러 할 일을 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파주로 출발했다. 아내가 아이들 사진을 보내줬는데, 뭐랄까 다소 세월이 느껴지는 인테리어 때문인지 아니면 애들 표정이 유독 밝아서 그랬는지 누가 봐도 할머니 집에 간 손주들의 모습이었다. 놀라운 건 그중 서윤이가 제일 아들 같았다는 거고.


아내와 아이들은 일찍 아니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왔다. 마침 장인어른이 퇴근을 일찍 하셔서 잠깐이나마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그게 오히려 더 안 좋았나 보다. 안 좋았다기보다는 괜히 아쉬움만 커졌다고 해야 할까. 소윤이는 차에 타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고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차에는 장모님이 싸 주신 짐이 한가득이었다. 여러 반찬과 밥, 그리고 여러 개의 조각 케이크. 성경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아내의 빵을 두고 하는 얘기였나. 아내의 빵이 날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되고 있다.


저녁에 시윤이만 호박영양죽을 먹었다. 소윤이와 나는 호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윤이도 호박 이유식이었는데 처음에 조금 먹더니 짜증을 냈다. 먹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닌 듯했고 이유식 말고 모유가 먹고 싶었나 보다. 오는 길에 푹 자다가 깬 시윤이는 한참 졸음을 걷어내지 못하다가 저녁을 먹으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어제 이상하게 피곤하다 싶더니 허리가 엄청 아팠다. 이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질병이 되었나 싶다. 지난번처럼 허리를 곧게 펴기 힘든 근육통이었다. 덕분에 저녁 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계속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나머지 모든 일을 다 했다. 애들 씻기는 것부터 재우는 것까지. 서윤이는 수유를 하고 나서 기분이 갑자기 엄청 좋아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하루 종일 아빠를 엄청 보고 싶어 했다는 얘기를 아내가 해줬다. 그런 것치고는 크게 반응이 없길래


“뭐야. 혹시 거짓말 아니야?”


라고 장난을 쳤더니 소윤이가 이렇게 응수했다.


“아니, 아빠가 허리가 아프니까 그렇져. 우리는 아빠랑 몸으로 놀고 싶은데 아빠가 허리가 아프니까 그렇게 못하잖아여”


오랫동안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열심히 벌어서 먹여 살리기도 해야겠지만, 허리 조금 아프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애들이랑 놀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건강해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고 난 작은방 의자에 앉았다. 수유하고 기분이 좋아진 서윤이는 방에 들어가서도 잘 생각이 없었나 보다. 아내가 서윤이를 방에 두고 나왔다. 진짜 그렇게 재워보겠다는 의지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그저 장난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내는 다시 방에 들어갔고, 서윤이는 여전히 잘 생각이 없었다. 아내가 이번에는 서윤이를 밖에 내 놨다. 안방 문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던 서윤이는, 작은방에서 몰래 지켜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나에게 기어 와서 안겼다. 한 10분 정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다시 엄마를 찾아 안방 쪽으로 기어가서는, 안방 문을 긁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서윤이를 다시 아내에게 넘겼다. 그 뒤로도 바로 자지는 않았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가 나왔다.


아내는 장모님이 사 주신 조각 케이크를 꺼내 맛있게 먹었다. 난 작은방에 있었고 아내는 거실 식탁에 나를 등지고 앉았기 때문에 먹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뒷모습만 봐도 느껴졌다. 아내가 케이크로부터 얼마나 심대한 위로를 받고 있는지. 나에게도 두 번 왔다가 갔다. 혼자 다 먹기에는 찔렸나 보다.


“여보. 먹다 보니 내가 다 먹었네. 삐졌어?”


여보. 다른 건 몰라도 케이크와 빵은 안 건드릴게. 걱정하지 말고 그대에게 주어진 몫, 나누지 말고 독점해서 먹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