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3(토)
이번 주말에는 ‘어디라도’ 꼭 나갔다 오자고, 아내랑 수요일쯤부터 얘기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한창 뛰며 커야 할 시기에 매일 집에만 갇혀 있는 애들이 안쓰러웠다. 산골로 가지 않는 이상 사람이 아예 없는 곳은 없을 테고, 또 왠지 우리처럼 참다 참다 뛰쳐나온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날씨도 좋았다. 그나마 사람이 아주 많지 않을 것 같은 곳, 아주 넓은 야외 등의 조건을 조합해 고민했다.
집에서 아주 멀지 않은, 그러나 적당히 거리가 있어 나들이 느낌을 내기에 충분한 임진각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오전에는 아침 먹고 예배드리고, 아내는 집안일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쯤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나왔다.
동네 문구점에 연을 사러 갔다. 임진각에도 연을 팔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다. 안타깝게도 소윤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연은 없었다. 독수리, 하회탈, 방패 같은 연만 있었다. 그나마 가장 소윤이의 취향이었던 건, 공작이었다. 시윤이도 같은 걸 샀다. 그다음에는 점심으로 먹을 김밥도 사고,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도 사고. 여러 곳을 들르다 보니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아빠. 몇 분 남았어여?”
“이제 한 40분 가야지”
“하아. 아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려여?”
“아, 우리가 들른 곳이 많아서 그래”
“왜 이렇게 많이 들렀어여. 빨리 가지”
“아니, 너네 연도 사야 하고, 김밥도 사야 했으니까 그렇지”
워낙 오랜만에 떠나는 나들이 다운 나들이라 즐겁게 갔다. 시윤이가 잠들 줄 알았는데 누나랑 시끄럽게 떠들고 웃느라 자지도 않았다. 도착했더니 입구에 차가 밀려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글바글한 느낌은 아니었다. 워낙 넓기도 했다.
임진각 입구 쪽에는 아주 아담하고 낡은 놀이공원이 있다(놀이공원이라고 하면 너무 거하다. 그냥 놀이기구 10개 정도 모아 놓은 곳이다). 소윤이는 예상대로 거기부터 일단 가 보자고 했다. 소윤이에게, 간다고 놀이 기구를 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윤이는 구경만 하는 것도 괜찮으니 들어가 보자고 했다. 소윤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한두 개 정도는 태워줄 생각이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단속이 되면 힘들 일이 뭐가 있겠나. 역시나 소윤이는 이리저리 눈이 돌아갔다.
“아빠. 너무너무 타고 싶은데 바이킹 타면 안 돼여?”
“소윤아. 저건 너 키 안 돼서 못 타. 대신 다른 거 하나 태워줄게. 골라 봐”
“아빠아. 저는여어?”
“시윤이도. 타고 싶은 거 하나 골라 봐”
한 바퀴를 돌며 탐색을 했다. 일단 시윤이는 키가 안 돼서 타지 못하는 게 더 많았고, 키가 아니더라도 시윤이 스스로 무서워서 겁내는 게 많았다. 소윤이는 그에 비하면 탈 수 있는 것도, 타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소윤이는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했다. 시윤이는 그건 무서워서 못 타겠다고 했다. 세 명이 동시에 탈 수 있는 거라서 그럼 엄마랑 타라고 했더니 또 엄마는 안 된다고 했다.
“시윤아. 엄마랑 타면 되잖아. 왜 안 돼?”
“엄마는 아빠처럼 힘이 세지가 않잖아여어”
뭔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내가 더 안전할 거라고 믿나 보다. 난 또 그게 타기 싫었다. 빙글빙글 도는 거라 어지러울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서운 건 괜찮았는데 빙글빙글 도는 건 못 탔다. 꼭 멀미가 나고 토를 했다. 일단 셋이 같이 타는 건 포기했다.
시윤이는 어린이용 청룡열차(그야말로 어린이용)가 타고 싶다고 했다. 뭐 타고 싶은 걸 각각 태우면 되지만, 시윤이가 혼자는 못 타겠다고 했다.
“소윤아. 그럼 소윤이가 시윤이랑 저거 기차 탈래?”
“아빠. 저건 너무 짧아여”
“그래? 그래도 재미는 있을 텐데”
“그래도 너무 짧아서 저건 싫어여. 아까 그거 타고 싶어여”
“시윤아. 혼자는 못 타겠어?”
“네”
“누나랑 같이 타면 괜찮고?”
“네”
소윤이와 시윤이, 그리고 나의 고민과 토론 끝에 결론을 냈다. 내가 시윤이랑 같이 타기로 했다.
“소윤아. 소윤이는 안 서운하겠어?”
“뭐가여?”
“아빠가 시윤이랑만 같이 타고, 소윤이는 혼자 타야 되잖아”
“조금 서운하긴 한데 괜찮아여”
“서운해?”
“아니에여. 괜찮아여”
“아니야, 서운하면 솔직히 말해도 돼”
“조금 서운해여”
“왜? 뭐가 서운해?”
“아, 시윤이랑 같이 못 타는 게여”
“아빠랑 못 타는 건?”
“그건 괜찮은데 시윤이랑 못 타서”
“아, 소윤아. 그런데 어차피 시윤이랑은 같이 못 타”
“왜여?”
“아, 시윤이는 소윤이가 타고 싶어 하는 건 무서워서 못 타겠대. 소윤이도 시윤이가 타고 싶은 건 싫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어차피 시윤이랑은 같이 못 타. 아빠는 소윤이만 아빠랑 못 타는 게 서운하지 않냐고 물어본 거야”
“아, 그건 괜찮아여. 그럼 저 혼자 탈게여. 괜찮아여”
긴 논의를 마치고 표를 사러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그럼 기차를 소윤이랑 시윤이가 타면 되잖아”
하긴, 그러면 될 일이었다. 시윤이도 누나랑 타는 게 괜찮다고 했고, 소윤이는 자기가 타고 싶은 것도 타고, 보너스로 동생이 타고 싶은 것도 한 번 더 타는 거니까.
먼저 소윤이가 타고 싶은 걸 소윤이 혼자 탔다. 표정이 생각보다 무미건조했다. 시시했나 싶었는데 내려온 뒤 소감을 물으니 재밌었다고 했다. 그다음은 시윤이가 타고 싶은 열차. 소윤이와 시윤이가 함께 탔고, 시윤이는 두 바퀴를 도는 동안 단 한 번도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표정은 경직되었고.
“시윤아. 무서웠어?”
“그 그 옆으도 기울어졌즐 때에 그때 무섭더라여어”
“왜?”
“떨어질까 봐아”
소윤이도 나름 재밌었다고 했다. 나름 즐거웠던 놀이공원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아주 늦은 점심을 그제서야 먹였다. 차에 들어가 김밥을 먹였는데 둘 다 아주 잘 먹었다. 서윤이도 밥(모유)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연을 챙겨서 내렸다. 우리 말고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사실 나는 연을 날려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꼭 방패연 만드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아 주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뭔가 만들고, 붙이고, 자르고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연 만들기는 물론이고 무동력 비행기 만들기/날리기, 프로펠러 비행기 만들기/날리기, 이런 걸 싹 다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축구, 농구, 야구 이런 거만 좋아했다. 연날리기가 제대로 될까 살짝 걱정이 됐다.
나의 걱정은 쓸 데 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워낙 잘 불어서 실을 조금만 풀어도 알아서 잘 떴다. 연 하나를 높이 띄운 뒤 얼레를 소윤이에게 넘겼다.
“소윤아. 잘 잡고 있어. 아빠 시윤이 연도 띄워주고 올게”
시윤이 연도 띄우려고 하는데, 소윤이가 바로 나를 불렀다.
“아빠. 너무 힘들어여”
“뭐가?”
“이거 자꾸 끊어질 거 같아여”
“괜찮아. 안 끊어져. 잘 잡고 있으면 돼”
“아빠. 너무 힘들어여. 이게 자꾸 돌아가려고 해여”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아직 얼레를 잡고 돌리는 게 버겁나 보다. 연을 높이 띄우니 좋아하긴 했는데 의외로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연 하나는 다시 실을 감아서 정리했고, 나머지 하나만 높이 띄워서 유모차에 걸어 고정을 시켰다.
연을 걸어 놓고 나서는 넓은 들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내와 내가 나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여보. 애들 좀 실컷 뛰게 하자”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얼음 땡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그냥 막 뛰기도 하고. 내가 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랜만에 숨이 찰 정도로 뛰었다. 서윤이는 계속 아내의 품에 안겨 있었다. 처음에 아주 잠깐 유모차에 탔지만, 금방 칭얼대며 울었다. 집에서 나올 때 나름 예쁜 외출복을 입혔는데 보지도 못했다. 이럴 때가 많다. 겉옷을 벗을 기회가 없다. 심지어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 이럴 거면 그냥 내복을 입혀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놀이 기구 탄 것부터 해서 세 시간 정도 놀았나 보다.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떠나기 직전에 잠시 마스크를 벗고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알려줬다.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불쌍한 코로나 세대여.
다시 차에 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아내와 나는 당연히 시윤이가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지 않았다. 이번에도 소윤이랑 둘이 웃고 떠드느라 신이 나서 졸릴 틈이 없었다. 시윤이야 밤에 안 자도, 자라고 하고 나오면 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자는 걸 보고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하다. 마지막에 위기가 좀 있었지만 아내와 소윤이의 열심 덕분에 끝까지 자지 않고 왔다.
오는 길에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포장했다. 시윤이가 원하던 탕수육도 샀는데, 시윤이는 탕수육을 정말 잘 먹었다. 많이 먹기도 했지만, 정말 맛있게 먹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먹었다. 시윤이는 탕수육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서윤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유를 했는데도 기분이 막 좋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식탁에 앉은 아내에게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서윤이 과자를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서 줬더니 바로 바닥에 앉았다. 이리저리 뒤집어엎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치울 일이 더 생겼지만, 대신 평온한 저녁 식사 시간을 얻었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다.
“아, 오늘이 이렇게 빨리 지나다니”
“아빠아. 벌써어 잘 지간이에여어?”
오늘 재밌긴 했나 보다. 자기 직전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토요일이 끝난 걸 아쉬워했다.
“내일도 주일이잖아. 내일도 또 재밌게 놀면 되지”
라고 말은 했지만. 얘들아, 아빠가 더 슬퍼. 벌써 토요일이 끝났다니.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와 함께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봤다. 하루 내내 느낀 어떤 쾌청함이 다시 생생하게 다가왔다.
“여보. 오늘 진짜 좋았다. 그치?”
“그러게. 애들도 엄청 좋아하더라”
“맞아. 너무 좋았어”
매일 주말같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