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4(주일)
서윤이의 머리카락 잡아당기기는 강도가 날이 갈수록 세졌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아내다. 조건 반사처럼, 아내가 안아주면 바로 엄지손가락이 입에 들어가고 나머지 손은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향한다. 사실 난 일부러 잡으라고 머리카락을 내주기도 하는데, 내 머리카락은 잘 안 잡는다. 긴 머리카락 특유의 맛이 있나 보다. 아내는 그렇게 안겨 있을 때도 아프지만, 예상하지 못하고 잡혔을 때는 더 아프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잘 놀던 서윤이가 갑자기 칭얼댔다. 졸려 보였다. 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래도 졸릴 때는 조금 울고 금방 자더니, 오늘은 끝까지 완강하게 거부했다. 뭘 거부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엄마가 아닌 아빠가 재우는 걸 거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꽤 한참 안고 있었지만, 끝까지 치달은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다시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눈도 잘 못 뜨고, 사정없이 눈을 비빌 정도로 졸리긴 했다. 아내에게 다시 건네니, 역시나 엄지손가락을 넣고 아내의 머리카락을 찾았다. 머리카락을 찾는 서윤이의 손을 막았다. 내 손을 뿌리치더니 다시 머리카락을 찾았고, 다시 막았다. 또 뿌리치고 또 막고. 몇 번을 반복했더니 짜증을 내며 울었다. 계속 막았다. 계속 더 크게 울었고.
“서윤아. 안 돼. 머리카락 잡지 마. 안 돼”
손으로 막지 않고 말로만 안 된다고 했는데도, 알아듣고는 위로 뻗던 손을 멈췄다. 물론 더 크게 울었고. 이제 서윤이도 안 된다는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단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느낌은 분명히 아는 것 같다. 그 후로도 꽤 한참 만지려는 서윤이와 막으려는 나의 싸움(?)이 계속됐다. 너무 갑작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내가 있을 때, 주말에 시도해 보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었다.
서윤이가 너무 서럽게, 오래 울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기는 해야 했다. 결국 서윤이는 울다 지쳐 잠든 것처럼, 머리카락 없이 잠들기는 했다. 잠들고 나서도 한참 동안 훌쩍거렸다. 생각해 보면 막 울 때 머리카락 잡게 해주면 좀 덜하다면서, 만지라고 먼저 내준 게 나였다. 약 주고 병 주는 것도 아니고. 너무 울리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어린 아기에게 큰 거절감을 주는 건 아닌지. 세 번째여도 매 순간 걱정과 고민이 끊이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키워 보니 이런 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너무 울면서 잠들어서 금방 깰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 잤다. 자고 일어나서 기분이 엄청 좋지는 않았는데, 고구마 말랭이 큰 걸 한참 잡고 씹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고구마 말랭이를 먹은 뒤로는 하루 종일, 자기 전까지 계속 기분이 좋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렇게 울린 게 너무 미안하고 속이 상해서 걱정이었는데, 웃어주기도 잘 웃어줬다. 서윤아, 아빠는 앞으로 고민이 많겠다. 널 막 자라게 내버려 두기도 정말 싫은데, 너 우는 것도 못 보겠어. 엉엉.
소윤이와 시윤이는 예배 잘 드리고 점심으로는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아니, 오므라이스 흉내만 낸 볶음밥이었다. 서윤이는 처음에는 장모님이 싸 주신 호박죽을 먹는다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아내는 호박죽을 먹겠다고 했다. 자기도 호박죽을 좋아한다더니, 호박죽을 그릇에 뜨고는 소금과 설탕을 마구마구 뿌렸다. 아내는 호박죽을 먹다 말고 얘기했다.
“여보. 호박죽은 메인으로는 못 먹겠다. 그냥 애피타이저 정도가 딱 좋은 거 같아”
어제 거하게 놀고 왔으니 오늘은 가벼운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오후에는 간단하게 장만 보고 오려고 했다. 점심 먹고 거실에 누워 애들이랑 책을 읽었다. 어제 읽었던 책을 또 읽어 달라고 하길래 일부러 엉망진창으로 읽어줬다. 애들은 그게 또 재밌었는지 깔깔대며 바닥을 굴렀다. 주말의 보람은 뭐니 뭐니 해도 애들 웃음이다. 책 읽기에 온 힘을 쏟은 후 그대로 잠들었다. 아주 잠깐 동안. 느즈막한 오후가 되어서 설렁설렁 밖으로 나갔다.
“여보. 서윤이 옷 입히지 말까?”
“그러게”
“아니야.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라고 해야지”
서윤이는 오늘도, 빛 한 번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꼬까옷을 또 입었다. 자연드림에 가서 장을 보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샀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꽃 피는 춘삼월의 날씨였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잠깐 공원에 있다가 갈까?”
“공원이여? 어디여?”
“글쎄”
“좋아여. 가자여”
“엄마 오시면 물어봐야 돼.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못 가는 거야. 알았지?”
“네”
커피를 사러 간 아내가 돌아왔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아빠가 공원 같은 데 잠깐 가자고 하셨는데, 괜찮아여?”
“공원? 그럴까?”
근처에 있는 천을 따라 조성된 작은 공원에 갔다. 서윤이는 잠들어서 아내가 차에 남았고 나는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내렸다. 자전거와 킥보드도 꺼냈다. 자전거와 킥보드를 조금씩 타더니 역시나 나에게 와서 얘기했다.
“아빠. 우리 같이 잡기 놀이 할까여?”
아니, 아빠는 ‘노는 거 보기’ 놀이하고 싶은데. 마음은 그랬지만, 불쌍한 시대를 살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기꺼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동참했다. 어제처럼, 열심히 뛰었다. 무궁화 꽃도 피우고, 얼음도 깨고, 무작정 뛰기도 하고. 소윤이가 정해주는 역할에 따라, 상황극도 하고. 일부러 더 망가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소리가 날씨만큼이나 좋았다. 잠깐 들른 것치고는 꽤 오래 놀았다.
원래 저녁에 애들은 궁중 떡볶이, 아내와 나는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밖에서 오래 논 덕분에 너무 귀찮았다.
“여보. 떡볶이 너무 귀찮다”
“여보. 나도”
“그냥 밥 먹일까?”
“집에 뭐 없는데”
“김에다 먹이지 뭐”
“그래, 그러자 그럼”
“우리는 애들 재우고 떡볶이 먹고”
떡볶이 먹을 생각에 신났던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떡볶이는 내일 엄마가 만들어 줄 거고 오늘 저녁에는 가래떡을 구워 먹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했다. 다행히 잘 이해해 줬다. 떡집에 가래떡이 없어서 절편으로 대체한 것까지 너그럽게.
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애들을 씻기고 난 저녁을 준비했다. 이 세상에서 버섯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마트에 가서 시식용으로 구운 걸 먹는 거다. 마트 시식용 버섯처럼 기름을 잔뜩 두르고 소금을 팍팍 쳐서 버섯을 구웠다. 김과 함께 제공될, 유일한 반찬이었다.
씻고 저녁 먹고, 자기 전까지도 유쾌한 시간이 계속됐다.
“벌써 주말이 다 갔네”
“그러게. 아빠도 아쉽다”
이번 주말에 진하게 놀았으니, 내일은 또 생각이 많이 나겠지.
서윤이는 밤에 잘 때도 머리카락을 잡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잡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아내가 슬그머니 막으니까 이내 포기했다고 했다. 아빠의 불찰이다. 서윤아. 애초에 머리카락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