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5(월)
서윤이는 오늘도 머리카락 만지려다가 아내가 안 된다고 하면 스윽 손을 내리며 안 만진다고 했다.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사실 좀 많이 안쓰럽다. 서윤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고 그랬으면 얼마든지 그대로 뒀을 텐데, 아내의 머리카락이라 어쩔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만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싸는 걸로 푸는지, 아니면 소심한 복수(?)하느라 그러는지 아침부터 똥을 두 번이나 쌌다. 주말에 찔끔찔끔 지리더니, 다행 아니 안타깝게도 월요일에 아내 혼자 있을 때 푸지게 싸다니. 이렇게 효녀일 아니 아내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주말 내내 봄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봄날이었다.
“날씨 짱. 반차 내고 왔으면 좋겠다”
아내의 카톡에 십분 백분 천분 공감했다. 구글 같은 회사였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차를 내고 왔겠지만, 구글 지도에 찍혀있는 회사일뿐이라 조용히 업무에 집중했다.
아내는 좋은 날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내 혼자 셋을 데리고 나갔으니 그래 봐야 동네 산책이었지만, 외출 시의 노동 강도는 ‘그래 봐야’가 아니었다. 유모차에 짐이 많아서 그냥 아기띠를 하고 나갔는데, 허리가 아프다며 후회를 했다. 서윤이는 자는 게 아니면 유모차에 앉아 있으려고 하지 않으니, 유모차도 자꾸 안 챙기게 된다.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챙기는 일이 이제 꽤나 익숙한 일이지만, 익숙하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두어 시간의 외출이었지만 아내는 고단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날씨가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했다. 정말 좋기는 했다. 주말을 보내고 난 다음날이기도 해서 좋은 날씨를 보니, 더욱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났다. 집에 있는 이들도 내 생각을 많이 했겠지?
허리 아픈 게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정점은 찍고 내려왔지만 이전에 비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게 훨씬 오래 걸리는 느낌이다. 문득 걱정이 됐다. 이러다 쭉 이 상태가 유지되는 건 아닌지. 병원에 가 봐야 당장 뾰족한 해결책을 얻기 어렵고, 대략 어떤 이야기와 처방을 할 거라는 걸 예상을 하면서도 병원 예약을 했다. 해가 바뀔수록 내 몸은 늙고 쇠하겠지만, 반대로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도 많아진다. 아내와 함께 오래도록 우리 애들이 크는 걸 봐야 한다.
집 앞에 있는 신경외과에 예약을 하고 퇴근하면서 들렀다. 사람이 무척 많았다. 간단히 진료만 받고 끝날 줄 알았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진료 보고, 엑스레이 찍고, 주사도 맞고, 이것저것 기계 치료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답변을 듣긴 했다. 요추 4번, 5번의 디스크가 많이 마모되고 눌려 있다면서, 정확한 건 MRI를 찍어 봐야 알겠지만 엑스레이 상으로도 썩 좋아 보이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주사를 맞으려고 엎드려 있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혹시 운동 많이 하셨어요?”
“아, 그냥 축구를 많이 해요”
“아 예전에 운동하신 건 아니구요?”
“네. 그런 건 아니구요”
“엘리트 운동을 하신 분들이 나이에 비해 허리가 안 좋은 경우가 많거든요”
“아, 네. 그런 건 아니에요”
“환자분은 체격이 좀 있으시니까. 체중을 좀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되실 거구요”
“아, 그렇죠”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핵심 원인은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늘어난 체중,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일, 줄어든 운동량. 세상에는 알면서도 못 하는 게 왜 이렇게 많을까.
집에 8시가 넘어서 왔다. 아이들은 저녁은 물론이고, 잘 준비까지 마친 상태에서 날 기다렸다. 아내는 매우 지친 표정으로, 흘러내릴 것처럼 서 있었다.
“어, 여보. 왔어”
“여보. 많이 힘들었어?”
“그냥. 이 시간 되면 지치지”
아내는 서윤이 이유식을 들고 있었다. 내가 밥 먹는 동안 아내가 서윤이 이유식을 먹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가 밥 먹는 동안 놀 시간을 얻었다. 아주 맛있게 이유식을 받아먹는 서윤이를 보면서, 둘이 꽁냥꽁냥 노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다 먹고 아내가 서윤이를 씻기는 동안 잠시 소윤이, 시윤이와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쳤다. 하루 종일 많이 듣고 싶었던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려고, 아이들 맞춤용 개그를 마구 발사했다.
정작 아내는 입맛이 없다면서 저녁을 먹지 않고, 그대로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오늘따라 애들 재우는 것도 한참 걸렸다. 서윤이와 시윤이는 금방 잤는데, 소윤이가 안 잤다고 했다. 어찌 보면 소윤이가 엄마 없이 자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엄마가 없으면 시윤이라도 깨어 있으면 괜찮은데, 시윤이까지 먼저 자면 자꾸 무서운 생각이 난다는 소윤이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다만 하루의 피곤이 쌓일 대로 쌓였을 때는, 그 마음을 온전히 기다려 주는 게 어려울 때도 많다. 그래도 아내는 힘을 내어, 소윤이를 기다려 주고 나왔다. 덕분에 날이 바뀌기 2시간 전이나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아내는 낮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만들어 주고 남은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더니 배춧국에 밥도 말아서 먹었다. 아내는 그냥 입맛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밥을 먹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둘이 소파에 앉아서 오늘 찍은 애들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게 큰 낙이다. 소윤이 보면서는 “아, 얘가 언제 이렇게 컸냐”. 시윤이 보면서는 “얘도 왜 이렇게 귀엽냐”. 서윤이 보면서는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그저 감탄사만 내뱉으며 어디 가서 내색하지 않는, 고슴도치 부부의 면모를 공유한다.
낮에 나가서 빵집에 들렀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바게트와 크림을 사서 먹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를 위해, 라우겐 스콘도 샀다고 했다(물론 지불은 아내가 했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챙겨주는 녀석들의 마음이 정말 갸륵하다. 라우겐 스콘은 먹지 않고 그대로 뒀다.
“여보. 내일 애들 줘. 소윤이랑 시윤이도 엄청 잘 먹더라”
스콘 많이 사주려면, 안 아프고 오래오래 건강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