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자기모순의 동물

21.01.28(목)

by 어깨아빠

아침에 오랜만에 시윤이와 서윤이만 일어났다면서 아내가 영상 통화를 했다. 말이 아침이지 시간으로 따지면 새벽이었다. 난 회사 근처에 도착해 차 안에서 아침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고. 항상 셋이 있는 것만 보다가 또 항상 소윤이가 최고참(?)인 모습만 보다가 시윤이가 오롯이 오빠인 걸 보니 뭔가 새로웠다. 나름 오빠라고 동생이랑 있으니 제법 듬직해 보였다. 영상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소윤이도 깨서 나왔다. 새삼 우리 애들이 일찍 일어난다는 걸 느꼈다. 아내의 하루도 얼마나 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침에 눈이 엄청 왔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집에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 생각이 났다.


‘와, 이럴 때 나가면 정말 좋을 텐데’


아내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는지 단단히 무장을 하고, 세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잠깐 영상 통화를 했다. 눈은 짧은 시간에 꽤 많이 쌓였고, 아내와 아이들은 부지런을 떤만큼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처음 밟을 기회를 얻었다. 추워 보였고, 즐거워 보였다. 서윤이는 아내 품에 안겨 잠들어서 유모차에 눕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눈밭을 구르기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아내도 서윤이로부터 자유했던 덕분에 마음껏 놀았다고 했다. 두 시간이나 밖에서 놀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아내도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했다. 눈은 금방 쌓인 만큼 금방 녹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았던 그때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놀기 어려웠을 정도로.


아내는 재미는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기운이 쭉 빠진다고 했다. 그나마 서윤이가 계속 잔 게 큰 도움이었다. 집에 와서 깨자마자 바로 수유를 해서 기분이 나쁠 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도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내는 다른 날처럼 분주하거나 여유가 없지 않았다. 원래 오늘 낮에 집에 손이 오기로 했었는데, 아침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취소됐다. 덕분에 손님 대접용으로 만든 짜장밥이 그대로 남게 됐고, 그게 오늘의 저녁이 되었다. 저녁 준비가 사라지니 아내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리 준비된 게 있어서 여유가 넘쳤다. 거기에 나도 평소보다 집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소윤이는 오늘도 편지를 써서 줬다. 매일 쓴다. 매일 쓰지만 매번 뿌듯하다. 소윤이도 나도. 소윤이는 나름대로 매일 그림을 바꿔가며 자기 마음을 담아내고 (마음이라고 해 봐야 사랑한다는 말이 대부분이지만) 난 그게 느껴진다. 누나의 그런 편지 공세를 보고 시윤이도 자주 따라 쓴다. 아니, 그린다. 아니, 휘갈긴다. 열어보면 무질서한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의 흔적뿐이지만 시윤이한테 물어보면 날마다 대답이 다르다. 시윤이의 편지도 차곡차곡 잘 모으고 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난 거실에서 모임을 준비했다. 아내도 생각보다 금방 나와서 모임에 합류했다. 온라인 모임이 끝나자 아내는 싱크대 쪽으로 가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화수분처럼 빵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보. 엄청 많이 샀네?”

“어, 오늘 작정하고 샀어”


아까 낮에 눈 맞으러 나갔을 때 동네 카페에 가서 샀다고 했다.


“아, 우유가 먹고 싶네. 나 나가서 우유 좀 사 올게”


아내를 보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덧없고 끝이 없는지 깨닫는다. 커피가 없을 때는 커피가 당기고, 커피가 있으면 빵이 당기고, 빵이 있으면 우유가 당기고, 우유가 당겨서 우유를 사러 나가서는 탄산음료도 사 왔다.


탄산음료 한 모금, 준비된 빵에 우유 한 모금을 먹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내가 귀엽다. 아내는 자러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스미 보면 진짜 살 빼고 싶더라”


인간이 얼마나 자기모순의 동물인지도 깨닫는다.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 체중 증가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변화를 꾀하지 않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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