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듯 자유 아닌

21.01.30(토)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가 없었지만, 기상 시간이 더 늦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빨랐다.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얘 일어나라고 이러는 거야”


평소에는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가 일어나서 서윤이랑 놀아주기도 했다. 덕분에 조금 더 잘 수 있었고.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없으니 쓰러져 자는 엄마, 아빠를 깨우려고 혼자 일어나 앉아 구슬프게 울었다. 졸리긴 했지만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서윤이랑 놀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가 없는 건 전혀 상관없는 듯 오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여보. 아침을 안 차려도 되는 게 어색하네”


애들이 없으니 굳이 아침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아내와 나도 아침을 먹기는 해야 했지만 굳이 쌀밥을 차려 먹고 싶지는 않았다.


“여보. 그냥 빵에다 뜨거운 커피나 한 잔 먹으면 좋겠네?”


어영부영하다 보니 아침은 거르게 됐다. 별로 하는 것 없이 계속 서윤이랑 놀았다. 서윤이도 나랑 놀았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서윤이랑 놀았다. 서윤이가 울지 않으니 집이 정말 고요했다.


“여보. 집이 진짜 조용하다”

“그러게. 이런 거 오랜만이네”


정작 소윤이와 시윤이는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지 연락도 없었는데, 아내와 내가 더 궁금했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밥은 먹었는지, 몇 시에 일어났는지. 우리가 먼저 전화를 했다. 소윤이는 성경을 읽고, 필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저께 밤에 소윤이에게 미리 얘기를 했다. 할머니 집에 가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읽기와 필사를 꼭 하라고. 엄마와 아빠가 없어도 집에서 하던 일과 규칙을 지키는 걸 연습시키고 싶었다. 소윤이에게 그 뿌듯함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윤이는 엄마,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잘 지켰다. 아무튼 요즘은 소윤이를 대할 때, 또 뭔가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서윤이가 거실에 대자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여보. 얘 뭐야?”

“아, 졸린 거 같길래 안아줬더니 잠들었네”


거실 한복판에 누워서 자는 서윤이를 보니, 마치 소윤이 처음 키울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언니와 오빠가 없으니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서윤이는 그렇게 한참을 잤다. 아내와 나도 무척 여유로운 토요일 오전을 보냈다.


조금 조용할 뿐 자유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서 그런가 아내는 외식을 하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 셋을 데리고는 도저히 갈 엄두를 내기 어려운 어딘가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밥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딸린 자식이 둘 일 때도 가서 먹기가 쉽지는 않았던, 셋이 되고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돈까스 가게에 갔다. 둘이 없고, 하나가 남았지만 차라리 둘이 더 편한 상황이 펼쳐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서윤이는 처음에 이유식을 좀 먹더니 금방 짜증을 내며 들썩거렸다. 왜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맛있다고 잘 받아먹다가 느닷없이 그런다. 앉아 있기가 싫어서 그런가. 과자를 조공했다. 다행히 식사 시간의 연장을 허락받았다.


제법 무난하게 식사를 마쳤다. 각오했던, 비인격적이고 자괴감이 드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돈까스는 돈까스답게, 볶음우동은 볶음우동답게 먹고 나왔다. 밥 먹고 나서는 장을 보고, 잠시(잠시라고 하기에는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동생네 집에 들렀다가 왔다. 그랬더니 오후가 다 지났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도 자고, 오는 길에도 잤다. 낮에 안 잤다고 밤에 잘 자는 게 아니라는 걸 숱하게 경험했지만, 낮에 너무 잘 자는 아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밤이 두려워진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집에 돌아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데려다주셨는데, 소윤이가 오는 길에 토했다는 소식을 장모님께서 전해주셨다. 카시트도 옮길 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장모님은 소윤이 옷에 잔뜩 묻은 토를 처리하고 계셨고, 장인어른은 소윤이가 앉았던 자리의 안전벨트를 열심히 닦고 계셨다. 소윤이는 어디가 아프거나, 아플 것처럼 보이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집에 올라와서 조각을 맞춰봤다. 과연 소윤이는 왜 토한 것일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했던가. 일단 파주 임진각에 가서 놀이기구를 무려 8개나 탔다고 했다. 거기에 피자, 꽈배기, 아이스크림 등의 식사 및 군것질도 잔뜩 먹었고. 결정적으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콩순이 영상을 봤다고 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영상을 자주 보지 않을뿐더러 움직이는 차 안에서는 아예 본 적이 없었으니 멀미가 났던 모양이다.


아내는 망연자실했다. 소윤이의 무절제한 하루를 듣고는. 7살에게 절제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는 내심 기대하며 보냈다. 아침의 일(성경읽기와 필사)을 들으며 은근히 뿌듯했는데, 역시 아직 멀었다는 걸 실감했다. 뭐 그건 아내와 나의 속마음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즐거운 하루의 소감을 물으며 열심히 반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행복해 보였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마찬가지였고. 장인어른이 집을 나서며 하신 말씀이 오늘의 요약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힘들었지만 행복했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온라인 모임을 하는 중간에 들어가서 재웠다. 서윤이는 재우는데 실패했고 아내가 온라인 모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업고 있었다. 난 허리가 여전히 말썽이라 서윤이를 안지 못해서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모임이 끝난 뒤, 서윤이까지 재우고 나온 아내의 얼굴이 수척했다. 맨날 셋과 씨름하다가 하나만 데리고 있었던 날인데도 노동의 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공로도 크다. 육체의 짐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다.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제멋대로 누워서 돌아다니며 자고 있었다. 서윤이의 숙면을 위태롭게 위협하면서.


그래, 이게 우리 집이지.




keyword